[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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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8
  • 김선옥
  • 승인 2022.08.26 07:16
  • 기사수정 2022-10-05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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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에 이어)

"오빠가 귀국했어요. 집에 곧 도착한다고 하네요. 두 시까지 저희 집으로 오셨으면 좋겠는데."

그의 아내가 나를 초대했다.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이영현은 너무 떨려서 직접 전화를 걸지 못한다고 한다.

이상한 생각이 들지만 나는 가볍게 넘긴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나는 외출을 서두른다. 조신한 여자처럼 차려입고 나는 그의 아내가 사는 보금자리를 향한다. 경쾌한 휘파람을 불며 달려가는 내 발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아파트에 도착하여 그의 아내가 알려 준 304동을 두리번거린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4라인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서 멈춘다. 현관의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감지된다.

안으로 들어선다. 손님이 오면 북적거려야 마땅할 안의 분위기가 어쩐지 수상쩍다. 조용하고 섬뜩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의아하다는 시선을 의식한 듯 원두커피를 내리고 있던 그녀가 설명한다.

“사무실에 나간 그이는 좀 늦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오빠는 방금 슈퍼에 다녀오겠다고 나갔고요. 해원 씨를 만나기가 쑥스러운 모양이에

그녀는 나를 보며 웃는다. 미묘한 웃음이다. 입가에 서린 웃음이 마음에 걸린다.

"한 잔 하실래요? 날씨도 추운데."

나는 그녀가 내민 커피를 마신다. 커피 향이 상큼하다.

뜨거운 액체가 위를 통과하기 직전에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다. 가시로 엮은 방으로 심장을 쥐어 싸는 느낌도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목소리가 꼭 안에서 머문다. 고통이 극심해서 말할 겨를조차 없다.

나는 헉헉거린다. 급기야 두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녀가 쓰러진 내게 천천히 걸어온다. 놀라서 빠르게 뛰어와야 하는데 걸음이 너무 느리다. 조금 전에 보았던 미묘한 웃음이 여전히 입가에 떠 있다. 그녀가 느릿느릿 걸어온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난다. 그녀는 내가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을 거리에 멈추어 선다.

"고통스럽지?"

그녀가 나직하고 무겁게 묻는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병원으로 연락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살릴 생각이 없는가. 나는 잠깐 생각한다.

"너도 당해 봐야 뼈저린 맛을 알 거야. 이제 너는 고통으로 서서히 죽게 된다고."

그녀는 내가 죽는다고 말한다. 죽이겠다는 의사를 또렷하게 드러낸 그녀에게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 안달하는 기색을 느낀다. 순간, 나는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도.

"오빠가 미국에 있다는 것은 뻥이었어. 너를 설득하려는 수단이었지. 하긴 모두 거짓으로 지어낸 것은 아니야. 오빠가 이영현이고, 네가 거덜낸 것은 사실이거든. 이제 복수할 기회를 잡은 거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너를 찾았는지 알아? 하긴 네까짓 게 뭘 알겠어. 멍청한 년. 그래 가지고 어떻게 꽃뱀 노릇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도 그 꼴이었겠지."

그녀는 오빠를 대신하여 내게 벌을 내리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달게 받아야지. 애걸하여 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일은 싫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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