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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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7
  • 김선옥
  • 승인 2022.08.19 05:40
  • 기사수정 2022-10-05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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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⑥에 이어) 그녀의 제의는 기다릴 것이 없을 정도로 경쾌했다. 구미에 딱 맞는 떡밥이란 그리 쉽지 않다. 그녀의 말마따나 내겐 운명을 확 뒤바꿀 절호의 기회였다.

“영숙 씨에게 오빠가 있어? 이름이 이영현이라던가."

그의 아내로부터 올케가 되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 알려서 좋을 것은 없다.

“웅, 이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어. 나는 처남하고 한번도 통화하지 못했어. 아내는 가끔 통화하는 모양인데 내게는 전화번호도 가르쳐주지 않더라고. 거기서 꽤 성공했다는 말은 들었어. 처남이 이혼하기 전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던 모양인데 아내에게 그 여자를 찾아 달라고 했다던가. 그 말도 얼핏 들은 거 같아."

"찾았대?"

묻지 않아도 나는 안다. 그게 나였으니까.

그러나 그 말은 목 안으로 삼킨다. 그에게 아직 첫사랑의 여자로 아름답게 남고 싶은 마음일까.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말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여러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모르겠어 찾았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어. 아내의 능력과 집요함이라면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거야."

그의 말은 틀림없다. 그의 아내는 즉시 나를 찾았고, 그 집요함으로 내 지저분한 행적들도 낱낱이 찾아냈다. 그리고 이젠 내게 그와의 단절을 주문한다.

"그래. 우리의 관계를 알아냈으니 알 만하다."

“내 아내가 무서운 거야?"

무서운 것은 아니다. 이별을 결심한 바탕엔 그의 아내가 있다. 관계를 끊도록 요구하며 내게 푸짐한 떡을 내민 그녀는 세상에서 성공한 자다. 그녀의 의견을 참고하는 게 내게 이익이 된다는 점은 계산할 필요가 없다. 그와 이별을 결심한 배경에 그의 아내가 버티고 있고, 내가 원하는 목적이 어떤 것인가는 그에게 알리지 않는다. 잠재된 사연은 내게 꿀처럼 달지만 그에게는 익모초보다도 쓸 것이다.

"당연하지 만나는 남자의 아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뻔뻔한 여자아냐? 그런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철가면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심장까지 떨려.“

나로 인해 방치된 가정의 안주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양심도 없는 인간이다. 천하의 몹쓸 인간이란 뜻을 나는 그에게 납득시킨다.

"너를 끝까지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는 이제야 정말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그의 표정을 보니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고 여긴 것은 내 착각이었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난다.

아내가 알게 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관계를 청산한다. 딴짓을 하더라도 애초부터 가정을 버릴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치들도 사랑이란 삶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가구나 옷, 음식 따위의 기호처럼 삶의 과정에서 맛을 더하는 양념일 뿐이다.

예외인 남자들도 있지만 거의 그렇다.

그는 예외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도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정확하게 깨닫는다. 첫사랑이라고 떠벌리는 남자에게도 사랑을 지키라고 맹세를 시키지 말라. 그건 바보짓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은 골빈 인간이나 할 일이지, 남자라는 족속은 아니다.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쿨하게 헤어졌어요. 영숙 씨의 제의를 받아들일 결심이에요. 운명의 노를 다시 젓는 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해 보지요."

나는 남편과 헤어지고 만난 정길이라는 남자 이외에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은 그럴만한 사람도 없지만 일부러 외면하는 쪽이다. 남편에게 당한 수모가 다시는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에 발 딛지 못하도록 내게 금지선언을 내렸던 탓이다. 이번의 기회는 놓치기 아깝다. 내 흔적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다는 말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유혹에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 소설은 매주 금요일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 간호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1991 청구문학상(단편소설) 수상

ㆍ2000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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