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에서 개최된 최초 야구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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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에서 개최된 최초 야구경기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3.20 08:19
  • 기사수정 2022-01-14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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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기독청년회 야구경기 동아일보 기사(왼쪽)와 전군야구대전 매일신보 기사(오른쪽)/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구암리 기독청년회 야구경기 동아일보 기사(왼쪽)와 전군야구대전 매일신보 기사(오른쪽)/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에서 개최된 최초 야구 경기는 1921년 7월 5일 군산소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구암리 기독청년회 야구단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군산은행팀(群山銀行軍)의 우승쟁탈전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예보 기사는 “군산 구암리 기독청년회 야구단은 본래 군산 운동계(체육계)에서 명성이 자자하며, 각지에 유학 중이던 회원들이 하기 휴가를 맞아 고향을 방문, 팀에 합류하여 의미를 더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 시기(1921년 7월) 구암리 기독청년회 임원진은 고문 김정복(金正福), 회장 박연세(朴淵世), 부회장 이양규(李良珪), 총무 이수현(李守鉉), 서기 송기주(宋基周), 임종우(林宗祐), 회계 김창윤(金昌允), 심학윤(沈學允), 덕육부장 유재남(劉載南), 지육부장 고문중(高文仲), 체육부장 최준호(崔俊鎬), 사교부장 김창윤(金昌允)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21년 7월 30일 치 <매일신보>는 ‘전군야구대전’(全群野球大戰)이란 타이틀 기사에서 “전주체육협회 야구부는 군산체육협회 야구부의 제의에 응하여 31일(일요일) 정오부터 전주 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행할 예정이라는데, 전주에서 야구 경기는 실로 초유의 일인즉 당일에 성황을 이룰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도하였다.

그해 가을(10월 15~17일)에는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와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야구대항전이 열렸다.

개최 장소와 경기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미션계열 학교 친선경기인 점으로 미루어 영명학교 운동장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숭일학교 역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1908년 2월에 설립했으며 1915년 광주 지역에서 최초로 야구를 도입한 학교였다.

<한국 야구사 연표>(22쪽)는 ‘1925년 9월 27일 전주고보 대(對) 이리농림의 야구 경기를 전주에서 개최, 전주고보가 3-2로 승리한 이 경기는 지방 학교가 최초로 학교끼리 맞선 대교(對校) 경기의 효시’라고 기록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듯 1921년 그해 군산에는 야구팀이 3개(영명학교, 구암리 기독청년회, 군산은행 등) 이상 활동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암리 기독청년회 야구팀은 군산 체육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는 <동아일보> 보도는 이미 1910년대부터 군산에 야구가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군산 영명중학교 건물./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 영명중학교 건물./출처=군산야구 100년사

 

또한, 영명학교-숭일학교 대항전은 호남 야구사에 지방학교끼리 맞붙은 최초 대교 경기이자 원정경기의 효시 아닌가 싶다.

‘영명(永明)’의 한자 풀이는 덕과 학업을 쌓아서 온 누리를 밝게 비추라는 뜻.

따라서 교과목에서는 덕육(德育)을 특히 중시하여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 청소년들의 지육·덕육과 더불어 체육, 예능 보급에도 힘썼다.

특히,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활 계몽운동·문맹퇴치운동·미신타파운동과 더불어 민족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영명학교는 1922년 5월 보통과 학생 100명이 익산 황등으로 원족(소풍)을, 고등과 학생 100여 명이 백제의 고도 부여로 수학여행(2박 3일)을 다녀올 정도로 현장학습도 활발하였다.

아침 기차로 군산에서 출발한 학생들은 강경에서 하차,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강경상업학교 축구팀과 시합을 가졌다. ‘부여 팔경’과 은진미륵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논산청년회 팀과 축구 경기를 펼친 것으로 알려진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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