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삼일만세운동과 양기준·양기철 형제
상태바
[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삼일만세운동과 양기준·양기철 형제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3.17 09:22
  • 기사수정 2022-01-14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야 만자산교회 남신도 단체 사진 1904년./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대야 만자산교회 남신도 단체 사진 1904년./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대야 만자산교회(지경교회 전신) 남 신도들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시기는 1904년.

가마꾼으로 보이는 두 조선인과 모자 쓴 서양인(전킨 선교사) 옷차림이 시대를 반영한다.

사진 속 인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표정은 물론 신발에서조차 궁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구한말 군산 지역 농촌이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옹색하거나 가난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뒷줄 왼쪽에서 4번째가 전킨 선교사, 오른쪽에서 3번째가 양응칠 구암교회 초대 장로이다.

그리고 앞줄 오른쪽에서 2번째·3번째 사내아이가 양기준·양기철 형제다.

두 형제는 양응칠 장로 아들로 당시 양기준(군산 최초 야구인)은 아홉 살, 양기철은 여섯 살이었다. 신문물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양응칠 장로는 훗날 두 아들을 영명학교에 입학시킨다.

 

양기준·양기철 형제 독립만세운동 앞장서 참여

거국적으로 저항했던 기미년(1919) 독립만세운동.

군산 지역은 그해 3월 5일 처음 궐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세운동은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구암병원 직원들이 모여 서래장날로(6일) 계획했으나 교사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바람에 시위가 하루 전날(5일) 시작되어 ‘서래장터(설애장터) 만세운동’ 혹은 ‘3·5만세운동’으로 불린다.

그해 5월까지 지속됐던 3·5만세운동.

3월 한 달에만 군산경찰서 방화사건(12일),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 자퇴서 제출(14일),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23일), 시민과 학생 횃불시위(30일), 재판소 앞 만세시위(31일) 등이 일어났다.

연인원 3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였고, 피해자는 총 195명(사망 53명, 실종 72명 등)으로 순국자도 전북에서 가장 많았다.

당시 일본 경찰은 다시는 만세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사람은 방면한 대신 끝까지 조선 독립을 부르짖는 사람은 감옥을 살게 하였다.

양기준(梁基俊) 역시 끝까지 굴복하지 않아 징역을 산 케이스로 그가 대구 감옥에서 수형생활 할 때 그의 부친이 머나먼 대구까지 면회 다니면서, 차입금을 수도 없이 넣어주었으나 출소 며칠 전 눈깔사탕 한 개 입에다 넣은 게 전부였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의 동생 양기철(梁基哲)도 만세운동에 앞장서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해 영명학교 졸업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양기철 학생은 급우들과 ‘졸업은 조국 독립 후로 미루자!’고 결의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대구 감옥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당시 양기준(24)·양기철(21) 형제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신한민보 기사(제목 군산영명학교 전체가 활동)./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신한민보 기사(제목 군산영명학교 전체가 활동)./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필자는 <군산 야구 100년사> 출간 후에도 계속 추적한 끝에 양기준·양기철이 친형제라는 것과 두 형제의 대구 복심법원 판결문(국가기록원), 재미 한인 단체가 발행하는 1919년 7월 12일 자 <신한민보> 기사(양기철 학생이 양응칠 장로 아들임을 확인), 양기준의 한지의사 면허 교부서(1932년 조선총독부) 등을 찾아내 후손에게 전하였고, 감사의 인사도 받았다.

“우리 세대는 '군산' 하면 '야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 군산의 야구 역사를 담은 책에 할아버지(양기준) 존함 한 줄 올려주신 것도 영광이고 감사드릴 일인데, 할아버지께서 군산 지역 3·1운동의 주동자 중 한 명으로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셨던 내용까지 확인을 해주셨습니다.

그간 할아버지 옥고 사실은 얼핏 들은 바 있으나 그 내용을 모르고 있던 차인데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대구형무소 복역 사실과 선고문(대구 복심법원 판결문)까지 확인 및 입증되어 독립 유공 서훈을 받게 될 듯합니다.

(아래 줄임)”

군산의 야구 관련 자료를 찾아나셨다가 잊혀가던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세계 강국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식민지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으며, 강렬한 독립투쟁 정신 고취와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원동력이 됐던 삼일독립만세운동.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시위에 앞장섰다가 나란히 옥고를 치른 양기준·양기철 형제가 한없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