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기록의 사나이’ 김성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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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기록의 사나이’ 김성한 ②
  • 투데이 군산
  • 승인 2020.10.1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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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 감독 권유로 야구 시작

군산중앙초등학교 야구부(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성한)./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중앙초등학교 야구부(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성한)./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김성한은 “상처 부위가 아물기까지 수개월 동안 겪은 고통은 악몽의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군 복무 3년의 공백 없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야구 인생에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며 개구쟁이 시절을 회상했다.

 

“평화동 농방골목, 물망초다방 앞길, 군청고개, 중앙초등학교 운동장 모두 놀이터(경기장)였죠."

"밤에는 상가 불빛과 가로등이 야간경기장 라이트 역할을 해줬습니다."

"1960년대 초 시내 초등학교 네 곳이 야구부를 창단하면서 군산에 야구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시멘트 포대와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 고무공으로 ‘골목야구’를 했죠."

"공사판에 나뒹구는 각목을 깎아서 배트로 사용했는데, 그때는 ‘공치기’라고 했습니다. 글러브를 잘 만들어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접는 순서도 잊어버렸어요. (웃음)"

"중앙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하루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는데 감독님이 부르더니 ‘정식으로 진짜 야구를 해봐라!’라며 야구부에 들어오라는 거예요."

"놀랐죠. 그렇잖아도 발바닥에 땀이 조금만 나도 미끄러지는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줄무늬 운동화 차림의 선수들을 부러워하고 있었거든요."

"멋진 유니폼과 운동화 신고 싶어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도 졸업할 때까지 주전선수로 뛰었고, 상도 많이 받았어요. (웃음)”

 

김성한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우연히 시작됐다.

5~6학년 형들의 시기와 질투어린 시선 속에 투수와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강속구와 날카로운 타격으로 주목 받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연습경기 때마다 장타를 날렸다.

전국대회에도 출전, 4강 진입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군산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전라북도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개인상을 휩쓸었다. 유소년들에게 최고 명예인 ‘전북의 별(MVP)’도 받는다.

 

이준원 교감 선생님은 평생의 은인

군산중학교 야구부 단체사진(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김성한)./사진=군산야구100년사
군산중학교 야구부 단체사진(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김성한)./사진=군산야구100년사

 

김성한의 험로는 예고돼 있었다.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것.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3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

조숙했던 그는 잘 달리던 기차가 탈선하듯 옆길로 빠지기 시작한다.

공부와 운동은 뒷전이고 문제아들과 어울려 학교 근처 만화방이나 음침한 월명공원 뒷길 등 우범지역만 찾아다녔다.

장래 희망이 조직폭력배인 불량 청소년들과도 어울렸다. 어둠의 늪을 탈출하지 못하고 헤매기를 2년여.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구원자가 나타난다.

 

“군산상고 에이스였던 김용남과 동기인데, 그 친구는 곧바로 진학하고 저는 유급 당해서 1년을 더 다녔죠."

"자괴감, 상실감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바로잡아준 분이 당시 군산중학교 이준원 교감 선생님입니다."

"하루는 저를 부르시더니 ‘재능도 있는 놈이 왜 야구를 멀리하느냐!’고 호통치시면서 집으로 가자는 거예요."

"학비를 대주는 등 저를 자식처럼 돌봐주셨는데요."

"선생님 보살핌으로 야구 배트를 다시 잡았고, 군산상고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준원 선생님은 ‘평생의 은인’이십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오늘날 조직폭력배 일원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 회고에 따르면 이준원 교감은 김성한을 데리고 살면서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한쪽에서 연습을 지켜보다 같이 퇴근하곤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김성한을 돌보고 있는 것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단다.

김성한도 자신을 돌봐준 은사가 돌아가시는 1992년까지 명절 때마다 인사를 다녔다. 결혼(1982) 후에는 아내와 함께 찾아뵈었다. 지금도 이준원 교감의 빛바랜 흑백사진이 김성한 부부의 앨범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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