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기록의 사나이’ 김성한 ④
상태바
[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기록의 사나이’ 김성한 ④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10.23 08:43
  • 기사수정 2022-01-14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산상고 야구부 단체사진(가운데 줄 맨 왼쪽이 김성한)./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야구부 단체사진(가운데 줄 맨 왼쪽이 김성한)./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김성한은 1978년 군산상고 졸업생 중 ‘군계일학’이었지."

"이곳저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는데, 배성서(동국대) 감독이 가장 욕심을 내더라구."

"내가 ‘동기생 다섯 명도 함께 데려가라’고 했지. 그랬더니 입장이 난처하다며 총장을 만나보라는 거야."

"그 해 동국대 총장이 영남대에서 옮겨온 이선근 박사였거든. 나하고 인연이 깊은 사이였지."

"그래서 찾아가 ‘숨어 있는 준재들이니 동국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요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주더군···.”

 

서울상대 야구부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야구인들을 찾아다니며 군산상고 선수들의 진학과 취업에 온 힘을 기울였던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 회고다.

그는 “그해부터 동국대와 군산상고 사이에 각별한 인연이 싹트게 됐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김성한 수석코치 얘기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은행을 최종 목표로 서울의 명문대에 가려고 죽어라 고생했는데, 영남대(감독 배성서)로 가라는 거예요."

"서울에서 연·고대 배지 달고 여학생들과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해보고···."

"머리를 박박 깎은 시골 촌놈이지만 왜 그런 꿈이 없었겠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가겠다고 버티면서 술 마시고 행패 부리다가 개복동 파출소에 끌려가 몽창 뚜드려 맞기도 했죠. (웃음)"

"그때 마침 배성서 감독이 동국대 감독으로 옮기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리궁둥이 타법’, 배성서 감독에게 전수받아

김성한과 함께 동국대에 진학한 군산상고 출신 선수는 송승호, 박전섭, 김형종, 최병춘, 김승래 등이다.

이들은 1학년 때부터 ‘역전의 명수’ 저력을 보여준다.

하위권을 맴돌던 동국대가 1978년 대학야구 봄철 연맹전에서 신입생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일약 6강의 결승리그에 오른 것.

그러자 배성서 감독은 1, 2학년 선수들(군산상고 출신 6명 포함)을 주전으로 기용하고,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투지의 팀워크를 구축, ‘80년대 동국대 전성기’ 기틀을 다진다.

1981년 7월. 전국으로 생중계된 제2회 한·미 대학야구선수권대회 스타는 김성한(타격상), 윤학길(다승), 박종훈(홈런상) 등.

그해 대회는 한국대학 선발팀이 역대 최고 성적(5승 2패)으로 우승, 대학 야구사에 의미가 깊다.

특히 기대를 모았던 김정수(고려대), 이만수(한양대), 김일권(한양대) 등은 부진했고, 22타수 10안타(4할 5푼)를 터뜨린 김성한은 리딩히터로 유망주에서 벗어나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다.

타격에 자신감이 붙은 김성한은 ‘오리 궁둥이 타법’을 배성서 감독에게 전수받는다.

강속구에 대비, 더욱 빠르고 파괴력 있는 스윙이 필요했던 것.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단점을 보완하다 보니 독특한 자세가 취해졌다.

타석에 들어선 그가 타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하체를 뒤로 빼면서 배트를 뒤로 눕혀 들고, 투수를 노려보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오리 궁둥이.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는 80년대 중반부터 그의 아이콘이 된다.

(계속)

※ 등장인물의 나이와 소속은 2013년 기준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