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야구계의 신사’ 김준환 ②
상태바
[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야구계의 신사’ 김준환 ②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7.27 08:13
  • 기사수정 2022-01-14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산상고 주장 김준환 선수의 기자회견 모습(맨 오른쪽)./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주장 김준환 선수의 기자회견 모습(맨 오른쪽)./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이것이 야구(野球)의 묘미(妙味)···꿈꾸는 듯하다”

“참 멋있는 게임이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한여름밤 성동 원두를 대낮같이 밝힌 라이트의 휘황한 불빛 아래 야구팬들은 스탠드 떠나기를 아쉬워했다.

선제(先制), 타이, 역전, 또 역전, 무려 네 차례나 엎치락 뒤치락. 젊음만이 발휘할 수 있는 투지와 끈기의 접전이었고, 스포츠만이 향유할 수 있는 열광의 대향연이었다.

아직은 쨍쨍한 태양열이 그라운드를 쬐고 있을 오후 5시쯤. 3루 측 스탠드에는 미리미리 자리 잡기 위해 팬들이 모여들었고, 경기가 시작되는 7시 정각 약 2만 5000명의 팬들이 자리 잡았다.

라이트 쪽 외야석엔 군산상고 150여 재학생과 원정 온 시민응원단 60명이, 레프트 쪽 외야석엔 부산고 재경 동창응원단이 들어차 열띤 응원전으로 플레이볼.

부산에서는 장거리 전화가 본부석으로 잇따라 부산 시민의 관심을 드러냈고, 군산상고는 ‘스마일 피처 잘한다’는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1회 말 선제점을 뺏긴 부산고는 3루 측 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한 3회 초 안타 공세로 타이(1-1)를 만들자 황금사자기 쟁탈은 또 한 번 파란을 예고하듯 승리의 여신은 좀처럼 어느 쪽에도 미소를 던지지 않았다.

실로 7년만에 정상에 도전하는 부산고와 호남야구 중흥의 사명을 짊어지고 우승의 문턱에서 분투하는 군산상고 팬들은 두 패로 나눠져 여름밤 무더위를 압도하는 열기를 품었으나 8회 부산고의 대량득점으로 승세는 부산고 쪽으로 기우뚱.

그러나 승리 일보 전 부산고의 편기철 투수가 갑자기 난조를 보이자 스탠드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봉수야”(부산고 선수), “기철아”가 연발. 아슬아슬한 순간을 대변했고, ‘극적인, 너무나도 극적인’ 역전 우승이 호남선 열차에 탔을 땐 승자도 패자도 모두 울어버렸다.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순간 군산상고 응원단은 일제히 그라운드에 쇄도, 땀과 먼지와 눈물에 얼룩진 군산상고 나인을 등에 업고 열광 또 열광- 역시 게임은 승자의 것이었다.  넓은 야구장은 군산상고 일색으로 변하고 격전의 핵지대인 피처마운드에는 승리팀 감독, 교장, 주장 등이 차례로 7월의 밤하늘에 전신을 높이 떠올려지는 즐겁고 벅찬 순간순간이 엮어지기도 했다. 야구협회 임원들도 이 경기를 두고 야구의 ‘정수’를 본듯해 후련하다며 아직 이같이 ‘멋있는 경기’를 본 일이 없다고 한마디씩. (1972년 7월 20일 자 <동아일보>)

군산상고가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고 우승까지 거머쥔 그 날. VIP룸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가던 이용일 당시 경성고무 사장은 황금사자기 대회를 주최한 동아일보 김상만 사장을 만난다. 그의 소회를 들어본다.

“고향은 버릴 수 없는 거더구만"

"돌아가신 김성수(동아일보 창업주) 아들(김상만)이 동아일보 사장이었단 말이야. 그분이 대회장이었지. 황금사자기를 동아일보에서 주최했으니까."

"그때 나는 경기 끝나고 1층으로 올라가고 그는 2층에서 내려오다가 나를 만났단 말이야."

"그때 그가 내 손목을 꼭 잡으면서 ‘이사장 고마워!’라고 하는 거야."

"자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향에서 우승했다 이거지. 눈물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눈물이 글썽한 것처럼 보이더라고..”

이용일은 “그때 한국의 고등학교 야구는 인기가 최상이었지만 서울, 부산, 대구 지역 학교들의 축제였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고등학교 야구는 들러리였단 말이야. 그러니 김상만 사장이 감격할 만도 하지. 그의 고향이 전북 고창이었으니까.”라고 부연했다.

 

"‘역전의 명수’는 시민의 저항정신과 끈기의 결집체"

KIA타이거즈-한화이글스 경기가 열리는 월명야구장에서 만난 문동신 전 군산 시장./출처=군산야구 100년사
KIA타이거즈-한화이글스 경기가 열리는 월명야구장에서 만난 문동신 전 군산 시장./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지난 6·4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문동신 군산시장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 9회 말 역전 우승의 쾌거를 이루던 1972년 7월 19일 밤 서울운동장에서 경기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동창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했었다.”라며 그날의 감격을 되살렸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저는 군복무시절 부대 야구단 투수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어 야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69년 2월 대위로 예편하고 농어촌진흥공사에 입사하여 계장으로 재직할 때 황금사자기 결승전이 열린다고 해서 경기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강송식 동창과 서울운동장에 응원하러 갔죠."

"군산상고가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는 순간 두 사람은 기쁜 나머지 더그아웃에서 뛰어내렸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군산 시민의 조직문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는데요, ‘역전의 명수’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라 전설처럼 내려오는 시민의 저항정신과 인내, 포기하지 않는 끈기 등의 결집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 시장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항거했던 백제 오성인의 애국충절과 호남 지방에서 최초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3·5 만세운동), 옥구농민항일항쟁(1927) 등의 항거 정신이 결집하여 끈기와 투혼의 역전의 명수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계속)

※ 등장인물 나이와 소속은 2013~2014년 기준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