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야구계의 신사' 김준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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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야구계의 신사' 김준환 ①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7.23 08:33
  • 기사수정 2022-01-14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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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9회말 끝내기 안타 날린 군산상고 김준환 선수가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홈인하고 있다./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9회말 끝내기 안타 날린 군산상고 김준환 선수가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홈인하고 있다./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황금사자기, 호남선 열차에 싣고 군산으로 향하던 날

1970년대 한국 고교야구.

사람들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했다.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라고도 하였다.

동아일보와 대한야구협회가 공동주최한 황금사자기 쟁탈 제26회 전국지구별초청 고교야구쟁패전 결승 9회 말에서 군산상고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전국고교야구 패자(覇者)로 군림하는 데 성공한 1972년 그날 이후부터다.

역전이 역전을 낳고, 파란이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 진출팀은 영남의 강호 부산고와 창단 4년의 신출내기 군산상고였다.

조명탑의 칵테일 라이트가 휘황하게 비추는 1972년 7월 19일 오후 7시 서울운동장 야구장.

군산상고는 1회 말 김봉연의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으나 3회 초 1점, 8회 초 3점을 내줘 1-4,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9회 말 공격에서 6번 타자 김우근의 안타와 핀치히터 고병석, 9번 송상복의 연속 포볼로 1사 만루,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다.

다음 타자는 1번 김일권. 그가 몸에 맞는 포볼로 나가면서 2-4로 따라붙는다. 계속되는 1사 만루 찬스에서 2번 타자 양기탁이 황금 같은 안타를 때려 4-4 동점을 만든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 김준환의 극적인 끝내기 좌전안타로 5-4 역전승.

흙과 땀으로 범벅된 선수들은 붉은 자주색 바탕에 포효하는 사자를 수놓은 금빛 찬란한 황금사자기와 순은제 대형 우승컵(4kg)을 호남선 열차에 싣고 군산으로 향한다.

당시 군산상고 진용은 최관수(감독), 송경섭(부장), 선수= 김준환(주장·2루수), 김일권(유격수), 양기탁(중견수), 김봉연(1루수), 양종수(포수), 김우근(좌익수), 조양연(우익수), 정효영(3루수), 고병석(PH), 송상복(투수) 등.

이 대회에서 양종수는 최우수선수상, 송상복은 우수선수상, 양기탁은 수훈선수상, 최관수 감독은 지도상을 받았다.

군산상고의 선제득점, 타이, 역전, 재역전 무려 네 차례나 엎치락뒤치락.

이날 경기는 한국야구 100년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최고의 명승부로 남아 42년이 지난 오늘에도 야구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총알 같은 굿바이 안타로 2시간 40분에 걸친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고, 고교야구 역사를 바꿔놓은 김준환(군산상고 야구부 3기) 선수.

2003년부터 원광대 야구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그의 소감을 들어본다.

손을 들어 전주 시민의 환영에 답하는 김준환 선수./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손을 들어 전주 시민의 환영에 답하는 김준환 선수./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그때 제가 핀치에 몰렸었죠.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인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투수 손목을 주시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공이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는 어느 선수가 나갔어도 안타를 쳐냈을 겁니다."

"최관수 감독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하셨고, 선수들은 꼭 이겨야 한다는 각오와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승리도 극적이었지만, 분에 넘치는 환영과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군산상고의 영광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다.

창단 초기에는 아침을 거르고 연습에 임하는 선수도 있었고, 모래를 구입할 돈이 없어 연탄재로 야구장을 고르면서 의기투합했다.

김준환 감독은 “비가 내리면 운동장이 질퍽거렸는데, 선수들과 학생들이 연탄재를 두 장씩 들고 등교할 정도로 열의에 차있었다”면서 “40년도 더 된 까마득한 옛이야기지만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열정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래는 그날의 현장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복(伏)더위 씻은 백열의 결전··>·

<3도(都)는 흥분 속에 묻혀 승자도 패자도 울었다>

<군상, 황금사자기 쟁취하던 날>

<시민들 춤추며 ‘만세’- 군산>

<통분···TV마다 ‘만원’- 부산>

황금사자기를 놓고 군산상고와 부산고가 서울운동장에서 마지막 대결을 벌인 19일 밤, 군산과 부산 두 항도는 벅찬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통분에 엇갈려 한여름의 무더위도 잊었다.

이날 저녁 7시부터 군산 시민들은 일손을 놓고 모두 라디오와 TV 앞에 몰려들어 거리는 말 그대로 완전철시. 시내 중심가 TV 상회와 다방 등은 TV 관중으로 꽉 들어찼다. 밤 9시 반경 황금사자기가 군산으로 돌아가는 순간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고 얼싸안고 춤을 추며 승리의 환희에 열광했다.

 

군산-호남야구 신기원의 축제

해망동 해망양로원의 정정호(60) 노인 등 40여 명은 야구경기를 제대로 모르면서도 “군산상고가 이겼다”는 소식만 듣고 거리로 몰려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군산상고 교무실에서 TV를 지켜보던 학생 200여 명은 승리가 결정된 순간 일제히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만세와 교가를 불렀다.

이날 중앙로 평화동 등 도심지 술집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밤늦도록 흥분에 들떠 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20일 새벽 2시 30분 서울에 응원 갔던 시민 학생 150여 명이 전세버스 3대를 타고 시청 앞에 도착하자 잠자던 시민들까지 나와 이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부산-TV에 찻잔 던진 팬도

시내 중심가인 중앙동과 광복동 일대 다방은 TV 중계를 보려는 손님으로 초만원을 이뤘다.

길가 공용주차장에 세워둔 자가용차의 카 라디오로 중계를 들으려는 군중이 차 주변에 웅성댔다.

중앙동 H살롱에서 술 마시던 시민 6명은 야구결승 중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호스티스 이야기를 듣고 술자리를 박차고 이웃 텔레비전이 있는 다방으로 몰려가버리기까지 했다.

시민들은 부산고교가 4-1로 우세해있던 8회 초까지는 계속 환호성을 지르며 섭씨 32도의 무더위를 잊었으나 종반에 부산팀이 불리해지자 울분을 터뜨렸다.

9회 말 4-5로 역전되는 순간 광복동 B다방의 한 시민은 텔레비전을 향해 찻잔을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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