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최대의 횟집 금동 ‘군산 회집’ 38년 만에 문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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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횟집 금동 ‘군산 회집’ 38년 만에 문 닫았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7.09 15:56
  • 기사수정 2020-07-10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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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회집 창업자 최인식사장 작고 후 경영난 속 약 40년 만에 문닫아
금동 냉동창고 개조한 후 1982년 개업… 벚꽃길 100리 영화 누려
지역부동산 전문가들, 브랜드 가치 등 저평가 지적도
​군산의 대표적인 횟집인 군산회집이 38년만에 문을 닫았다./투데이 군산​
​군산의 대표적인 횟집인 군산회집이 38년만에 문을 닫았다./투데이 군산​

 

동양 최대 회전문 식당이었던 군산회집이 최근 코로나 19 확산으로 38년만에 문을 닫아 지역사회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금동소재 군산회집은 ‘횟집 경영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故) 최인식 회장이 1982년 개업한 군산과 전북을 훌쩍 넘어 전국 최대규모 횟집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이 횟집은 금동의 한 냉동창고를 개조, 직원 100여 명에 8층 규모(연건평 3300여㎡)를 갖추며 전국적인 브랜드가치를 지닌 유명 횟집이었다.

이 곳은 80~90년대 전주~군산 벚꽃길 100리의 최고 수혜 업체였고 지역횟집들의 롤 모델이었다. 이 시절에 군산회집은 한꺼번에 1000여명의 손님이 활어회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업을 이뤘다.

심지어 서울 역삼동에 지점을 둘 정도였다.

하지만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군산회집도 안타깝게 코로나 19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됐다.

 

군산회집 입구에 적혀 있는 "38년간 주신 사랑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내부 수리중이라고 적혀 있다./사진=투데이 군산​
군산회집 입구에 적혀 있는 "38년간 주신 사랑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내부 수리중이라고 적혀 있다./사진=투데이 군산​

 

물론 수년 동안 계속된 어려운 지역 경제 상황도 원인이 됐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일격을 당해 결국 손을 든 것이다. 이 시기가 코로나 19 확산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를 시행한 정점이었던 4월이었다.

이 곳의 주된 손님은 과거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었던 까닭에 코로나 사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특단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다.

군산회집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창업주 최인식 회장이 작고한 수년 전부터 내부 시설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왔고 지역경제상황도 사태를 악화시켜왔다.

게다가 창업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현재 건물주는 수도권에서 요식업 사업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군산횟집 영업에 애착을 보이지 않아 향후 영업 재개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경영난 등 일반적인 폐업과 달리 군산에 대한 무관심과 냉철한 사업 분석 결과 등에 따라 자발적으로 문을 닫은 것이라 귀띔했다.

이 인사는 현재의 군산회집의 시장가치를 보면 단순히 약 40~ 50억원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그 본질을 잘 알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곳은 수십 년간의 축적된 브랜드 가치와 함께 바다와 인접한 자연경관, 엄청난 주차장 확보, 충청권과 연결된 동백대교 개통효과 등을 고려하면 매우 저평가된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얘기다.

한편 외식업 경영자 가운데 최초의 박사학위(경기대)를 받은 군산횟집 창업주 고(故) 최인식 회장은 호원대 식품외식조리학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을 뿐 아니라 전국외식산업 포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군산횟집 요리문화의 선구자역할을 했던 그는 경기대 건축과를 졸업한 후 서울 등을 거쳐 군산에 안착, 오랫동안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 왔던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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