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59] 옛 군산교도소와 금광초‧ 신풍동사무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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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59] 옛 군산교도소와 금광초‧ 신풍동사무소 주변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02.15 12:48
  • 기사수정 2022-02-15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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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공세권+ 숲세권’ 금광삼성아파트… 옛 군산교도소 이전(1988년 11월) 후 건립
인재의 산실 금광초… 김의겸 의원‧ 은성수 전금융위원장‧ 고홍길 전 의원 등 배출
군산 최고(最古) 아파트 월명아파트 건축된 지 43년째… 노후화 등 대책 마련 여론도

 

동국사와 담장 사이에 있는 곳이 금광초등학교다.

대학로에서 금광초를 지나 월명공원을 끼고 있는 ‘월명아파트’와 ‘금광삼성아파트’는 한때 최고의 주거 여건을 자랑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공세권과 숲세권’을 갖춘 핵심권에 위치하는 공간이었다. 이 아파트들은 금광초와도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근대기에는 어땠을까.

오늘날은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과거의 원도심권과 인접지역이라 할 수 있으나 요즘에 보면 군산대에서 가까운 군산교도소와의 심리적인 거리감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월명동과 영화동 등 주거지‧ 행정타운과 다소 거리를 뒀고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일종의 기피 또는 위험시설(?)이라 할 수 있는 군산교도소가 들어서기에 적정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이나 오늘날까지도 그런 시설과 주민들과의 어느 정도 안전을 둘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을 것은 분명하다.

이곳에서 조금 지나면 신풍동주민센터가 위치해 주민들의 편익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투데이 군산 DB
투데이 군산 DB
투데이 군산 DB
투데이 군산 DB

 

# ‘인재의 산실’ 금광초등학교

[금강수 억센 물결 내려다보며 월명산 맑은 정기 한곳에 모아

양양한 앞날의 높은 희망을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어린 학도들

아담하게 이루어진 사랑의 전당 금광초등 우리 학원 광명하도다.]

-김원식 작사‧ 김승환 작곡

금광초등학교의 교가다.

1953년 4월 개교한 금광초는 내년이면 7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작년까지 졸업생만도 1만4,75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역사와 졸업생 때문에 이곳에서 배출된 전국적인 인물은 제법 많다.

분야별로 보면 정치인과 금융계, 행정 관료, 체육인, 언론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군들을 배출한 지역 명문학교다.

특히 관심은 끈 인물은 얼마 전 열린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의겸(58) 의원.

금광초와 민주당, 고대 등을 졸업한 그는 한겨레 정치사회담당부국장 및 선임기자 등을 거쳐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최근에 열린민주당과 합당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김금옥(56) 전 청와대 비서관과 고홍길 전 국회의원, 최동진 전 시의원, 신수철 본보 편집국장(새전북신문 등에서 언론인 활동) 등도 이곳 출신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은성수(61)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군산고와 서울대 등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 재정부 등에서 근무한 재정 및 금융전문가다. 그는 한국투자공사사장과 한국수출입은행장 등을 거쳤다. 최근 금융위원회 위원장 퇴임 후엔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와 함께 군산시청에서 시민봉사자로서 중간관리직으로 활동해온 인사도 적지 않다.

정진수 전 군산시의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김종필 교육지원과장, 김중규 박물관관리과장, 정대헌 환경정책과장, 황은미 열린민원과장, 김문숙 삼학동장, 양주생 전북도 새만금개발과장(서기관) 등이 그들이다.

이 밖에 프로야구 등에서 투수로 맹활약한 조규제 선수도 이 학교 출신이다. 쌍방울과 기아 타이거즈에서 활동한 그는 군산상고와 연대 등을 졸업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구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 박광태 총동창회장과 이규완 서해환경 전무 등도 학교발전에 힘쓰고 있는 동문이다.

한편 프로야구 불세출의 포수였던 박경완(전주고 졸업)도 전주로 이사하기 전에 금광초에서 4학년까지 다녔단다. 포수 최다 출전기록과 포수 최초 300홈런 등을 기록한 그는 90년대 후반 프로야구 현대왕조를 이끈 대스타였다.

금광 삼성아파트
금광 삼성아파트

 

# 가장 오래된 월명아파트와 최고 공세권(公勢權)의 금광 삼성아파트

공동주택의 형태로 군산에 등장한 곳 중 군산의 최고 역사를 자랑한 월명아파트. 이 아파트는 1979년 준공됐고 5층 건물로 8개동 총 240세대로 이뤄졌다.

당시 개념은 정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공원과 숲을 낀 아파트로 제법 인기를 누렸을 법하다.

하지만 최근 노후화와 함께 재건축 등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본격적인 공원에 대한 개념이 대두되는 1990년 11월 준공된 곳이 금광삼성아파트.

이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인근 주민이나 촌로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수십 년 전에 군산교도소가 존재했었단다.

# 현대적인 교화시설 등장 … 조선시대 동헌의 감옥- 형무소- 교도소 변천

조선시대엔 임피현과 옥구현에 죄수를 가둔 일정한 수감시설이 존재했었다. 동헌의 한편에 자리잡았을 것이지만 그 형태가 남아 있지는 않다.

개항 후에는 각국 조계지 안에 일본인 경찰서와 옥구감리서의 조선인 경무서가 함께 공존했단다.

김중규의 군산역사이야기에 따르면 1904년 군산항 재판소가 설치되어 수감자의 수용시설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제가 한일강제합병 직전에 조선인 경무서와 일본인 이사청의 경찰서에 병합한 후 독립적인 재판소와 감옥이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시설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생긴 것이 광주감옥 군산분감.

1910년 7월10일 금광동 삼성아파트 일원에 설치되어 군산교도소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 물론 아쉬운 것은 기피와 혐오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은 애써 피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함석 형태의 일본식 건물과 기와의 조선식 건물이 공존했단다.

그 시절 월명동과 영화동 시가지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상황 때문에 흰색의 형무소 건물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었다는 게 김중규 작가의 얘기다.

군산교도소는 해방 후인 1946년 3월 군산형무소로 승격됐다가 1961년 12월 전국적인 조직개편과 함께 군산교도소로 개칭됐다.

지금의 옥구읍 옥정리로 이전한 시기는 1988년 11월이다. 수형자와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상고심 포함)를 수용함과 동시에 제1, 2심리치료센터와 장애인 재활직업훈련관을 운영하는 시설이다. 법질서 확립을 통해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수용자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국가시설이다.

# 신풍동 주민센터… 팽나무의 전설(?)= 오랜 동네의 상징물

월명산 자락의 중심에 있는 신풍동은 3개의 법정동(신풍동. 송풍동, 문화동)을 관할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신풍동은 군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대학로변과 석치산 밑자락에 수백년을 버티고 있는 군산상고 정문 주변에

군산상고 앞 수백년 된 팽나무. / 사진= 군산시청 제공
군산상고 앞 수백년 된 팽나무. / 사진= 군산시청 제공

 

 ‘팽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현대와 고전이 살아있는 동네이다.

팽나무는 키 20m, 줄기 둘레가 두세 아름이 넘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지만, 항상 소금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도 끄떡없다. 그것도 두툼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이 되어도 울퉁불퉁하게 갈라지지 않는 얇고 매끄러운 껍질을 갖고 그대로 버틴다.

남부지방에서 부르는 팽나무의 다른 이름은 ‘포구나무’다.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 포구(浦口)에는 어김없이 팽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는 탓이다. 나무의 특성은 물론 자라는 곳을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는 ‘포구나무’가 팽나무란 정식 이름보다 훨씬 더 정겹다.

팽나무는 곰솔과 함께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나무로 유명하다. 내륙지방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바닷가에서 심고 가꾸는데 가장 적합하다.

이 지역을 상징처럼 존재했던 팽나무는 본래 5그루가 있었다는 게 촌로들의 전언이지만 태풍과 고사목 등으로 사라지고, 1그루만 남아 오랜 지역의 전설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신풍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옥구군 북면의 지역으로 서낭당이 있었으며 ‘서낭당이 뜨는 새로 풍성해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풍이라 명명됐다.

1910년 10월 1일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옥구군 미면 신풍리로 편입되었다. 1932년 10월 1일 일부가 군산부에 편입되어 해망, 천장, 송산, 신풍, 풍남의 5정으로 됐다.

1946년 동명 변경에 따라 해망동, 송산동, 신풍동의 3동으로 고쳤다. 1952년 7월 14일 송산동을 문화동으로 고쳤다가 1954년 9월 10일 문화동을 문화, 송산, 금풍의 3동으로 나눴다.

1973년 7월 1일 옥구군 미면의 신풍리 전역을 편입하여 나운동과 소룡동을 신설하는 동시에 송산동과 금풍동을 통합, 송풍동으로 명명했다.

나중에 법정동만 신풍동, 문화동, 송풍동 3개의 동을 통합해 만든 것이 신풍동.

신풍동(신풍동 주민센터)은 2003년 3월7일 주민센터의 기능 전환에 따라 마련된 주민센터의 공간을 문화·복지·편의 시설로 꾸며 주민의 편익과 복리증진, 그리고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기 위한 시설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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