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56] 남초와 풍문초, 그리고 중화요리 명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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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56] 남초와 풍문초, 그리고 중화요리 명가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01.25 11:14
  • 기사수정 2022-01-25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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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남초… 조계현 전 기아타이거즈단장‧ 김일권‧ 정명원 등 한국프로야구의 산실
풍문초… 팔마산 둥지 틀며 고 심영자 최초 여성프로모터 등 수많은 인재 배출
군산짬뽕의 대명사 복성루와 지린성… 전국 미식가들 쇄도

[우리들의 뿌리는/선창가 비릿한 내음과/뱃고동의 애수로부터 뻗어나가/월명공원의 수시탑을 따라 올라가다가/아직도/공원 문턱에 버티고 있는/이끼 낀 기와지붕의 절간에서/잃어버린 목탁소리를 기웃거린다.

침묵하다가 아예 벙어리가 되어버린/일들로부터 해방된/벌거벗은 자유를, 진실을 말하려고/얽히고설킨 속을 벗어나/좀 더 밝은 세계를 향해가던/기슭 대나무 숲/목마른 기막힌 이야기는/윙윙거리는 바람소리로만 남는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항구의 저녁/더러워진 거리를 뛰다시피 달려오다가/허름한 선술집/팔자타령이 묻어나는 작부의 노래와/처와 자식으로 낑낑대는/싸구려 봉급쟁이들의 한숨을 대신한/젓가락에 엉켜 붙은/소매자락으로 적셔내는 세월을 듣는다.

팔마재 분수대 곁에서/밤마다의 축제를/소리치며 깔깔거리고 웃는/10시의 시계탑 밑으로/고개 숙이고 걸어 나오면/어느 날 부터인가/우리에게/아무 것도 원(願)하여 본 적 없는/애미, 애비의 슬픈 얼굴을.

이제/우리들의 뿌리는/오색찬란한 분수대 곁을 지나/어둠만 남는 광장로터리를 돌아/치닫을 수 없는 사람들이/박수소리처럼 오게 될/번영로의 짙은 안개를 따라/마지막/단 한번 마지막으로/생명을 걸고 피어나는/코스모스의 향내에 취하여/깨워도 모르는/깊은 잠을 잔다/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던/아주 깊은 잠을....]

김선옥(군산시 개정동 신경정신병원)님의 시 ‘우리들의 뿌리’ 이 시는 대한간호협회 발행 <간협신보>게재. 간협신보는 2009년 간호사신문으로 개칭됨

옛 경성고무가 위치한 곳에서 미원로와 월명로가 교차하는 미원 4거리 쪽으로 발을 옮기면 군산초등야구의 탯줄과 같은 남초등학교가 있고, 인근에는 작은 골목길로 향하면 팔마산을 등지듯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풍문초등학교다.

미원사거리 주변에는 과거 경성고무는 물론 방직회사, 철공소 등과 같은 공장들이 즐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유명 중국집들도 적지 않았다.

이곳에서 활발하게 가동했던 공장은 옛 우민주철과 영진공업사.

장재동의 우민주철도 처음엔 경성고무 인근에 위치해 있다가 오식도동 군산지방산단으로 이전한 후 경영악화로 옛 세풍그룹에 인수됐다.

오늘의 한일아파트가 있었던 영진공업사가 1965년 5월까지 영업했으나 라이벌 회사의 스파이 공작 등으로 문을 닫고 다른 회사에 합병됐다. 그후 한일아파트는 1989년 5월 120세대 규모로 준공됐다. 이곳 근처에는 시내버스정류장과 직행버스정류장, 옛 흥남동사무소 및 파출소 등도 존재했었다.

유명 중화요리 전문점은 전국 5대 짬뽕집으로 알려진 ‘복성루와 지린성, 수성반점 등이다.

# 풍문초등학교… 군산시청 중견간부 다수 배출

군산풍문초의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군산풍문초의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팔마산 정기 서려 이룬 이 땅에, 오늘도 한결같이 슬기를 모아, 서로가 도와 살며 근면을 닦고, 내 나라 일꾼 되어 힘을 길러서, 길이길이 빛내어라 우리의 전당, 장하다 그 이름 우리의 풍문."

1964년 개교한 풍문초등학교의 교가다.

풍문초 출신인사들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풍문초 출신 중 고인이 됐지만 전국적인 인물 중 한사람은 여성프로모터였던 고 심영자 회장.

심 전 회장은 프로복싱이 부흥하던 70‧ 80년대 국내 최초의 여성 프로모터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복싱계의 대모라 불렸다.

그녀는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한때 세계 챔피언 6명이 동시에 탄생하던 그때 그 시절 극동의 전호연 회장, 동아의 김현치 회장과 함께 트라이앵글을 구축하며 프로복싱의 한축을 담당했던 여성 프로모터였다.

1943년 5월 군산태생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풍문초, 중앙여중, 대전 호수돈여고, 경기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여고시절 무용을 전공한 재원이었지만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셋째 오빠와 친분이 있던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생각지도 않은 배우의 길을 걷는다.

당시에 꽤 관심을 끌었던 ‘죽도록 사랑했노라’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맡았던 것을 필두로 ‘홍도야 우지마라’, ‘딸들의 결혼', ‘이대왕검’ 등 총 17편의 영화에 출연, 중견배우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KBS 텔런트 소속으로도 고수미라는 예명으로 활동해온 그녀는 전양자, 사미자, 김형자, 박경자(박주아의 본명) 등과 친자매처럼 지냈던 탤런트였다.

이후 1966년 서울 상대를 졸업한 사업가 문덕만과 결혼하며 은막을 떠났지만 둘째 오빠와 친분이 있던 복서 김성준과 인연으로 그를 적극 지원, 1978년 9월 30일 WBC 라이트 플라이급 정상에 오르는데 일조를 하면서 복싱과 인연을 맺는다.

83년 10월 ‘88 프로모션’을 설립하고 선수 양성에 힘을 써 장정구, 문성길, 최요삼 등의 세계 챔피언들을 다수 배출해 주목을 받았던 복싱개척자였다.

고 심영자 회장 이외에도 군산시 발전에 힘을 써온 인사들도 적지 않다.

조찬금(4회 졸업) 총동문회장을 비롯한 황대성‧ 고대성 전과장, 서순만 전 옥산면장, 김주홍‧ 노창식 과장, 진숙자‧ 남귀우 동장 등 군산시청 전‧ 현직 사무관들이 이곳 출신이다.

# 군산짬뽕의 대명사 복성루와 지린성… 수성반점도 오랜 역사 자랑

군산만큼 다양한 중식당이 포진한 고장도 별로 없을 거라는 점이다.

한국전쟁 때 대거 군산으로 피난 온 화교들이 군산 중화요리의 밑그림을 그린다. 이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인사들의 노력까지 곁들여지면서 군산의 중화요리는 더욱 풍성하고 발전하게 된다.

전국적인 맛의 고장으로 등극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미원로와 미원사거리를 지나면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중국집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미원동의 수성반점(1975년 5월 개업)과 복성루의 창업자들은 형제들로 처음엔 동업하다가 나중 형제 중 한 사람이 복성루를 독립했다가 다른 이에게 넘기는 과정을 거쳤다. 짜장과 짬뽕 등을 요리해온 수성반점은 2세 체제로 안착,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고추짬뽕· 짜장면’으로 유명해진 ‘지린성’, ‘푸짐짬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복성루’는 한때 족히 1시간 정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작고 허름한 분식점 같은 복성루가 다른 짬뽕과 차이점이 있다면 돼지고기를 수북하게 올려준다는 것.

먼저 매운 짬뽕 맛집으로 소개된 ‘복성루’는 전국 5대 짬뽕집으로 손꼽히고 있는 유명 맛집이다. 이곳의 짬뽕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바로 풍성한 해산물.

해산물 이외에도 돼지고기 고명을 따로 얹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군산의 매운맛으로 유명한 인근의 지린성에서도 특별한 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바로 매운맛이 일품인 ‘고추짜장’.

매운맛으로 사랑받는 ‘고추짜장’은 비주얼부터가 남다르다. 커다란 냉면 그릇이 넘치도록 들어있는 푸짐한 양에 고기와 각종 채소, 새우까지 큼직한 재료들이 듬뿍 들어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짜장면은 매운맛이 일품. 청양고추가 큼지막하게 들어간 고추짜장면을 처음 맛보는 미식가들은 매운맛에 완전히 매료돼 새로운 짜장면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지린성’의 고추짬뽕, 고추짜장면은 외지 사람들도 찾아와서 먹는 음식이 됐다. 곧바로 도축해서 오는 생고기로만 만드는 탕수육은 인기 메뉴 중 하나다.

# 군산야구의 최고 명문 군산남초

군산남초등학교는 1947년 4월 군산사범학교 부속학교로 개교했다가 1962년 3월부터 개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학교가 들어선 부지는 본래 모시산 자락 밑에 저수지가 있었단다.

이런 특징 때문에 질퍽한 학교 운동장을 다지기 위해 그 시절 재학생들은 등굣길이면 집에서 가져온 연탄재와 모래 등을 수없이 뿌려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산이라는 형태는 거의 사라지고 모시공원으로 변해있지만.

이곳 출신으로 유명인사는 문순희 전 군산교육장, 이정학 서울대 교수 등을 비롯한 유명 야구선수 등이다.

특히 군산남초 야구단은 1970년대부터 50년 동안 전통의 맥을 이어오며 고교야구의 인기가 절정일 당시 스마일 피처 송상복, 프로야구 원년 도루왕 김일권, 조계현 전 기아타이거즈 단장 등 수많은 야구계 스타들을 배출한 명문이다.

또 한때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선수들도 이곳 출신이다. 그들이 장호익, 고장량, 한경수, 백인호, 정명원, 이승호 등이다.

서울 올림픽 복싱 플라이급을 제패했던 강펀치의 소유자 김광선과 개그맨 박명수씨(재학 중 서울로 이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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