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50] 시외버스터미널과 에이본호텔…‘기억의 잔영들’
상태바
[군산을 걷다 #50] 시외버스터미널과 에이본호텔…‘기억의 잔영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12.16 12:26
  • 기사수정 2022-01-17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 최고 주류업체 ‘백화의 향기’…현대메트로타워 등 마천루아파트 우뚝
에이본 호텔의 전신 군산관광호텔의 건축 비화… 나포출신 임춘원 전의원
직행버스‧ 고속버스정류장 등 번화가…옛 약속다방의 공수부대원 탈영사건

중앙로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하면 해망로가 시작된다. 시청 방향으로 더 가면 번영로로 향한다. 인근에는 팔마성당과 옛 경마장, 군산관광호텔 등이 있다. 물론 옛 경마장은 역사 속 흔적만 남아 있다.

해망로가 시작되는 곳에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 군산 근대 및 현대교통문화를 선도했던 공간이다.

이곳의 경계는 대명동과 경암동, 경장동이 마주하는 곳이어서 위치에 따라 ‘동(洞)’도 바뀐다.

 

㈜군산공용버스정류장이 소유하고 있는 경암동의 직행버스터미널은 1976년 7월 건립됐고 1일 평균 이용객 4000여명, 연간 이용객 15만여 명에 달한다. 노선은 전주와 익산 등 40여개에 이른다.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이고 면적은 약 8,000㎡다.

또 전국1일 생활권화를 이끈 주역 고속버스터미널도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한다.

금호산업(주)의 소유인 이 터미널은 2층 건물로 이뤄졌다. 이 건물은 1975년 1월 준공됐고 부지는 약 870㎡이다. 1일 평균 이용객은 1,000~ 1,500명 안팎이며 연간 45만여명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호고속과 중앙고속, 천일고속이 서울노선을 1일 50회를 운행하고 있다. 과거 이곳과 인접한 곳에 군산관광호텔이 위치한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오랜 역사 때문에 도심 속 노후된 시설로 군산의 낙후 상징공간처럼 보는 이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이전 논란과 함께 낙후문제라는 굴레는 현재진행형이다.

# 백화공장 부지… 한 때 군산 군산의 상징적인 공업지대

백화는 원도심의 시발점인 월명‧ 신흥동지역에 초기 산업적인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상당수 시설들은 적산(敵産), 혹은 해방 이후 미군정 등에서 불하받은 공장과 그 부지들이다.

현대메트로타워가 위치한 곳에는 과거 백화소주공장이 있었고 1990년대 중반까지 굴뚝의 형태로 남아 있었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폐공장 시설과 굴뚝이 있어 지역이 어두운 회색을 띠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잇단 아파트 입주로 침체를 벗어나 다소 활기를 찬 모습이다.

70~90년 말까지 시기에는 주변지역이 폐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한때 군산 대표 산업단지로 위상을 톡톡히 했던 곳이다.

옛 백화공장 부지 주변에는 현대메트로 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 사진=투데이군산
옛 백화공장 부지 주변에는 현대메트로 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 사진=투데이군산

 

현대 메트로타워는 향토기업 (유)현대주택건설이 수년 전 군산시 대명길 인근에 33층 규모로 이뤄진 총 4개동이 존재하고 있다. 이곳은 수송‧ 미장지구와 5분 거리에 이를 정도로 접근성 뿐 아니라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때 도내 최고층 아파트로 위상 때문에 입주예정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던 곳이었다.

또 예식장이었던 오페라하우스와 메트로 2차아파트 단지는 백화주정공장이 있었지만 백화 전성시대를 지나 폐공장으로 남아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는 한동안 웨딩타운으로 많은 고객들이 이용했지만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곳을 인수한 업체가 천년가 아파트를 건축했고 다른 아파트단지도 연이어 들어섰다. 이들 마천루 아파트 때문에 70~ 90년대와 달리 대도시와 같은 별천지를 보는 듯하다.

[군산을 걷다] 시리즈 중에서 신흥동 백화공장 관련내용을 다뤄 언급했지만 당시 경영진은 고급주 시장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양주시장에 참여하면서 소주공장을 반납했다. 사업다각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영실패와 소주시장 반납이 가져온 사업 쇠락은 백화의 운명을 단축하는 단적인 표징 중 하나였다.

# 공수부대원 탈영사건

1984년 11월 14일 군산시외버스터미널 앞(맞은편) 지하건물인 약속다방에 탈영공수부대원들이 종업원들을 인질로 삼고 대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공수부대원들은 탈영한 뒤 회현면 일대 볏짚더미에 숨어 지내다가 민가에 하룻밤을 지낸 뒤 약속다방에 난입, 종업원들을 인질로 삼고 대치하던 중 이날 밤 10시50분께 특공대원에 의해 사살됐다. 일부는 진압과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들 탈영병을 검거하기 위해 근무하던 군인들이 검문검색과정에서 무시하고 달리던 차에 총격을 가하면서 일부 시민이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졌단다.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던 시청 동장으로 퇴직했던 고 최영 시인(당시 시청 근무)도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일부 신문에 관련된 자신의 추억을 담아내기도 했다.

# 군산관광호텔과 임춘원 어떤 관계

경장동 소재 군산관광호텔을 얘기하면서 임춘원(1938~ ) 전의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고교를 다니던 시절엔 군산관광호텔은 짓다가 부도나고 다시 건축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었다. 이 때문에 준공과정도 오래 걸렸고 영업도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인도 수차례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기 군산관광호텔을 인수한 사람이 임춘원 전 의원.

임 전의원은 나포면 장산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학원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임 전의원은 사업성을 고려함은 물론 다른 정치적인 목적(?)으로 1986년 군산관광호텔을 26억원을 주고 전격 인수했다. 일부 인사들에 따르면 군산과 옥구 등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기 위한 사전 포석차원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당시 김봉욱씨와 지역구 출마를 놓고 신경전은 물론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가 얼마 후 지역구를 서울 서대문구로 옮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매각했고 식품부와 커피숍 등을 나눠 경영하던 중 경영난으로 2005년 간판을 내렸다.

세빌스 코리아가 지난 8월 매입한 후 리모델링을 통해 일반숙박시설로 사용하다 관광호텔로 사업 계획을 승인받았다가 운영하다가 몇년 전 에이본호텔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 활발한 영업을 하고 있다.

 

군산관광호텔에 초기에 영입된 B씨는 백화에서 임원을 지난 경력을 높이사 그가 자신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으나 그곳에서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면 군산관광호텔을 운영했던 임춘원은 어떤 사람이었나.

나포면 출신인 그는 재야인사이자 12~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사무총장, 원내 부총무, 부대변인, 당무위원 등을 지낸 원로 정치인이었다.

1960년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앞에서 우리나라 입시학원의 효시격인 상아탑학원을 설립, 성공한 경영의 귀재였다. 당시 학생수 8,000여명에 강사수 250여명으로 작은 종합대학보다도 그 규모가 클 정도였단다. 당시 매월 순익만도 8,000만원이상으로 그 당시 재벌들을 제치고 은행예금 순위 전국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사상계에 심취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고 장준하 선생에게 운영자금을 남몰래 대주던 것이 빌미가 돼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되면서다.

그는 유신시절에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렸고 장준하 선생의 비밀 연락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정치에 뛰어들었다. 6월항쟁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등에서 맹렬히 활동했다. 이후 DJ의 재정 및 경제분야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했으나 92년 대선을 앞두고 그와 등을 졌다.

그 후 반대진영에 있던 YS에게 다가가 그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고 당선 후 그의 아들 김현철씨를 권력에서 배제하라는 작업하다가 그와도 결별, 결국 신한국당도 탈당하게 된다.

양 진영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진 그는 3김 청산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 미국에 망명하는 등 정치일선에서 퇴장했다.

# 직행버스터미널과 인연… 경암동 포장마차촌의 추억

고교시절부터 직행버스터미널을 이용한 적이 있다. 고교 3년간 매일은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3년과 21년 출‧퇴근 기간을 합하면 얼추 23~ 25년 정도는 됐을 것이다.

이곳을 오가던 고교시절에 중단되어 있던 대형건물이 오늘날의 에이본 호텔 건물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 지난 다음에야 곡절 끝에 준공됐고 건축과정의 우여곡절만큼이나 주인도 자주 바뀌었다. 군산관광호텔로 영업 중이던 때에는 당시 유종근 전북지사가 군산방문을 이유로 묵었는데 옆방의 샤워소리까지 들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실 건물이었다.

그 시절, 이곳을 지나면서 흉측스러운 중단 건물을 보면서 지났던 생각이 떠올라 새삼 40년 세월의 무상을 느끼곤 한다.

이곳과 인접한 곳에는 한때 군산 주당이나 타지 사람들에게 낭만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이 경암동 포장마차촌.

누구에겐 낭만의 공간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소란의 대명사였고 민원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이곳은 주택가 주변에 위치, 주취자들의 난투극과 고성방가 등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본래 이곳은 88 올림픽을 앞두고 시내 곳곳에 영업 중인 70여 곳의 불법포장마차촌을 경암동 고속버스터미널 옆 하천 복개부지(경포천의 실개천 복개구간)로 집단 이주한 뒤 2003년 겨울에 환경미화 등을 이유로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금동 도선장 주변 80여 곳과 하제횟집단지 7곳 등의 불법포장마차시설도 폐쇄시켜 군산 포장마차의 낭만은 사라졌다.

당시 이 업무를 담당했던 윤붕희 계장은 “불법과 폭력 등으로 지탄을 받아온 이들 포장마차촌은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었으나 많은 민원에도 손을 대지 못하다가 김길준 시장 시절에 고발조치와 업주 설득 등을 통해 평화롭게 마무리했다”고 술회했다.

오가는 직행버스와 터미널에서 친구와 지인들도 만났고 많은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냈다.

때론 군산~ 익산, 혹은 군산~ 전주 등으로 오가는 시간 동안 사계절의 변화를 절감하는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벚꽃길을 오가는 4월 중순 전후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고 ‘낭만갑’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얼마동안 출퇴근을 계속할지는 몰라도 오가는 시간이 나에겐 젊음의 상징과 같은 날들로 남아 있을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