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 애환 서린 군산~장항 도선장 역사 속으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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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년 애환 서린 군산~장항 도선장 역사 속으로 사라져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4.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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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0년 군산과 장항 오간 추억의 공간 사업자 적자 누적 ‘철거’
忠‧湖의 인연 만든 교류의 장… 2009년 12월 말 사실상 운명 정해져
월명유람선측 “코로나 19 속 견디기 어렵다” 포기 결정
금동의 옛 도선장이 이용률 저조와 코로나 19 여파 등으로 철거됐다. / 사진= 투데이군산 DB
금동의 옛 도선장이 이용률 저조와 코로나 19 여파 등으로 철거됐다. / 사진= 투데이군산 DB

 

군산과 장항 주민들의 애환이 서린 금동 도선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선장을 공유수면 사용허가를 받아 활용하던 월명유람선측은 최근 계속된 코로나 19속에 만성적인 적자를 견디지 못해 이곳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코로나 19가 남긴 아픔이었다.

양지역의 중장년층이라면 도선장의 추억거리는 금강물을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일 것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군산과 장항 간 도선사업은 1934년께 시작됐지만 그 이전에는 우리의 전통 나룻배들이 오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째보선창에서 내항의 발전 흐름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졌을 것은 분명하다. 87년의 역사만큼 군산과 장항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추억의 공간이요, 교류의 창구였다.

장항에는 도선출장소를, 군산시는 금동에 도선사업소를 설치하고 여객선을 운영해왔다. 일반적으로는 장소가 몇 차례 바뀌었다지만 옛 도선장이 우리에겐 더 친숙한 공간이다.

이곳의 건립 시기는 1984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37년만에 사라진 것이다.

한때 군산으로 유학온 '장통생(장항통학생)'들은 기상이 악화되면 통학선이 뜨지 않아 인근 여관이나 친구‧ 친척집으로 전전하는 등 숱한 추억이 묻어나오는 곳이 바로 도선장이다.  

여객선이 한창 오가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장항항은 곧잘 승객들로 붐비곤 하였는데, 그중에는 멀리 전북의 내륙권과 충청도 북쪽으로부터 오가는 수학여행 학생들이 한몫을 했다.

당시 군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서해방송도 ‘파도를 헤치며’란 프로그램을 통해 양지역의 도선 운항시간 등을 알렸을 정도였다.

그 전성기엔 객선이용객만도 1만 명 가까울 정도 늘어났고 운항시간 간격도 20분 안팎이었단다.

군산과 장항(서천)을 오가던 일도 1990년에 완공한 금강하굿둑 때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육상교통이 추억의 장통선을 과거로 밀어낸 것이다.

그래도 20년 가까이 용하게 버텨냈다.

승객이 급감하면서 2009년 11월 1일, 무기한 운항 중단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여객선 운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유람선으로 대체했다가 그마저도 비응도항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도선장의 기능은 유명무실해졌다.

교통수단의 대변화 때문에 옛 추억도 여기까지였다.

이 과정에서 군산시가 처음엔 직영하다가 1984년에 군산시와 서천군이 공동 투자하여 설립한 ‘금강도선공사’로 운영권이 넘어갔으나 정부의 지방공기업 매각 방침에 따라 2001년 1월 향토기업 월명토건이 인수, 운영했었다.

월명토건은 얼마 후 도선사업에서 손을 떼고 유람선에 주력했다.

한때 성업이었지만 본사가 있는 비응도동으로 이전한 뒤 활용도가 떨어진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확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달 말 철거에 들어가 이달 초 완전 마무리했다.

월명유람선의 한 관계자는 “관계기관 협의한 뒤 공유수면 점‧ 사용에 대해 안전 문제와 이용상 한계 등을 고려, 철거를 결심했다”면서  “계속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무척이나 아쉽지만 추억의 공간을 헐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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