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수 관장과 군산체육관 下] "군산 복싱 업적 기리는 운동 전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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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관장과 군산체육관 下] "군산 복싱 업적 기리는 운동 전개해야"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11.04 10:13
  • 기사수정 2020-11-06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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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체험박물관 뿐 아니라 기념사진‧ 권투 영화‧ 드라마 촬영지 적극 활용
가장 급한 것은 시설 개보수‧ 관련 자료(신문‧ 영상 내용) 확보가 관건
고 채금석 선생의 사례 벤치마킹해야… 전국대회 만들거나 관련시설 활용 등
한국 복싱의 산증인 김완수 선생./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한국 복싱의 산증인 김완수 선생./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생존할 때에 많은 위인이나 지역 명망가들조차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사례는 적지 않다.

특히 운동선수 출신 유명인들의 경우는 더욱 재조명하는데 시일이 더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행히 채금석(작고) 선생의 경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을 뿐 아니라 그 행적이 널리 알려져 그래도 그 업적과 정신을 이어줄 노력들이 상당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런 결실들이 그의 축구인생과 정신을 잇자는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날 ‘금석배’라는 전국 중고축구대회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채금석 선생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 김완수 관장의 복싱 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절실하고 필요한 때라 할 수 있지만, 관련 운동 분야를 제외하고 그를 기리자는 여론으로는 확산되지 못해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김완수 관장은 아마복싱의 큰 지도자일 뿐 아니라 과거 대한민국체육대상까지 받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역할이 컸던 살아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이에 따른 그의 행적을 남은 각종 유물과 군산체육관을 보존하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관심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그를 스토리텔링을 해야 내용 중 하나는 김완수 선생의 복싱인생과 제자들의 이야기와 군산체육관과 얽힌 뒷이야기 등을 더 늦기 전에 보존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체육관 출신 수련생들은 홈 커밍데이(졸업 30주년)을 열고 있을 정도다/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체육관 출신 수련생들은 홈 커밍데이(졸업 30주년)을 열고 있을 정도다/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스토리텔링 2… 김완수 관장, 복싱의 메카 군산 이미지 심어

김완수 관장은 복싱체육관을 설립한 이후 박구일, 서상영, 황영일, 이원석, 김세일 등 전국적인 복서들을 발굴하고 조련한 인물이다.

이런 공로로 김 관장은 복싱인 최초로 신동파(농구) 등과 함께 1968년 제6회 대한민국체육대상을 수상했다. 또 제1회 아시아 아마복싱대표팀 코치와 대한아마복싱연맹 이사 등으로 활약하는 등 한국아마복싱의 중흥에 이바지한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이곳에서 연마한 복서들은 박구일(작고: 제5회(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라이트월터급 금메달), 이원석(아시아선수권 플라이급 금메달 : 65년 프로 전향, 밴텀급 동양챔피언), 서상영(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제5회(66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 68년 멕시코 올림픽 대표), 황영일(65년 아시아선수권 밴텀급 금메달) 등이다

또한 곽동성(제6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 밴텀급 우승‧ 당시 한국간판 복서인 황철순과 대결에서 판정승)‧ 김현호(82년 아시아선수권 슈퍼헤비급 금메달‧ 제9회(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동메달)‧ 김의진(82년 아시아선수권 라이트 미들급 금메달)‧ 오영호(제13회 킹스컵 국제복싱대회(1987년)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 전진철(제11회(90년) 북경아시안게임 동메달: 군산제일체육관 관장) 등이 전국구급으로 뒤를 이었다.

이곳 출신 복서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만 금메달 13명과 은메달 6명, 동메달 3명 등 모두 20여 명의 메달리스트들을 배출했고 전국복싱대회에서 약 400명에 달하는 입상 성적을 기록했단다. 이는 2000년 기준(군산시사)이다.

이 같은 엄청난 성적을 올렸던 것은 근성있는 선수 육성, 이른바 짠물 권투를 통해 헝그리 복서들을 길러냈던데 기인한다는 게 제자들의 추억이다.

군산복싱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광선도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권투에 입문했지만 중고시절 서울로 근거지를 옮기는 바람에 긴밀함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출신 복서들은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군산과 서울 등 전국에서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단다. 이곳을 거쳐 간 수련생들은 약 1만5000여명에 이른다.

80년대 활동한 김성대 사범./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80년대 활동한 김성대 사범./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스토리텔링 3… 고 이영춘 박사 등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

김완수 관장이 그의 제자 또는 수련생 등으로부터 여전히 회자는 이유는 그의 자애로운 리더십 때문이라는 게 그의 제자 및 주변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는 항상 제자들과 함께 했을 뿐 아니라 운동 성적과 관계없이 항상 존칭을 쓸 정도로 사각링의 신사였고 모범적인 사범이자, 스승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인 최보덕 여사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제자들을 존중했다”면서 “그 때문에 70세가 넘은 제자들이 고향을 방문할 때면 여전히 그를 찾고 있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고 쌍천 이영춘 박사는 그 정신적인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생존에 계실 때 그에 대한 물질적인 지원과 따뜻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분이라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도 충분하다 하겠다.

그러면 김완수 선생과 그의 복싱인생의 주된 공간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출처=올드보이 블러거 도승진(lucadsj)

 

보통의 개인 기념관은 그의 소장품, 즉 사진과 글‧ 사용했던 물건(트로피와 글로브, 옷 등)을 보관 관리하는 내용에서부터 일대기 사진 및 기록물 등도 전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런 내용들도 매우 의미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제자들의 관련 물품(사진 등) 기증 등이나 김완수 관장과 관련 내용 등을 기탁받은 것도 시급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체육관이 시민이나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70년대풍 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 등의 복싱포즈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이벤트 공간 조성, 복싱 영화와 드라마 등의 촬영공간 활용도 시도할 내용물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면 복싱 역사를 해설할 가족이나 관계자들의 증언과 당시 우승(금메달) 등의 역사적인 자료 확보는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 중 하나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에다 가장 필수적인 군산체육관의 개보수가 아닐까 싶다. 약 60년 가까운 건물이어서 노화돼 자칫 건물 존립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려 있어 더욱 그렇다.

제자 및 시민들은 “이곳의 역사적인 의미를 살리려면 그 당시 신문과 방송 등의 내용 수집은 물론 이곳에서 배출한 복싱 선수들까지 망라한 복싱기념박물관을 만드는 것까지 계획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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