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을 빛낸 역전의 명수들(나창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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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을 빛낸 역전의 명수들(나창기③)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7.13 09:25
  • 기사수정 2022-01-14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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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수 감독은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다. 언제나 선수들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왔고, 마음으로 가르쳤다.
야구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그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과 전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야구를 정착시킨 것도 그였다.'
(조종안 기자)
동대문구장에서 군산상고 선수들과 포즈를 취한 최관수 감독(가운데)/사진=군산야구 100년사
동대문구장에서 군산상고 선수들과 포즈를 취한 최관수 감독(가운데)/사진=군산야구 100년사

 

나창기 감독은 그를 “야구감독이기 전에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하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최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욕설은 물론 거친 말을 한 번도 내뱉지 않은 '덕장'이셨죠."

"최고로 화났을 때 '이 녀석이···' 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선수 개인별 성향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도 뛰어난 분이었죠. 저도 그분 권유로 투수에서 2루수로 전환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고집을 부리고 계속 투수를 했으면 선수생명이 짧았을 테고, 지도자도 못 했을 겁니다."

"제가 2학년(1970) 추석명절 때였어요. 집에 못 간 선수 몇몇이 막걸리를 마시고 시내에서 소동을 벌였죠."

"사태가 심각해지자 최 감독님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선수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야구 배트를 넘겨주며 엎드리는 거예요."

"놀란 토끼가 된 우리는 바라만 봤고, 감독님이 '나를 때리지 않으려면 모두 유니폼을 벗어라, 나도 학교를 떠나겠다!'고 하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 같은 감독님'을 때렸죠."

"그때 송경섭 부장님이 달려와 멈출 수 있었고, 교실은 울음바다가 됐죠. 영화에도 소개됐던 그 얘기는 지금도 동문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최 감독이 얼마나 훌륭한 스승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그 사건이 선수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경험으로 다져진 최 감독의 지도력은 1971년 가을 전국체전을 시작으로 1972년 황금사자기, 1976년 대통령배 등을 제패하며 호남 야구의 중흥을 예고한다.

특히 부산고와의 결승 9회 말에서 대역전극을 펼쳤던 황금사자기 우승은 ‘역전의 명수’를 탄생시켰고,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한국 고교야구 역사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군산상고 잔디구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 안내하는 나창기 감독/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잔디구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 안내하는 나창기 감독/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자신의 모교,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하다

1971년 전국체전에서 기회에 강한 2루수로 명성을 떨치며 모교에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나창기 선수는 이듬해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제일은행 야구단에 들어간다.

김우열, 이종도, 김차열, 차동열, 권두조, 김종모 등 쟁쟁한 멤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981년 제일은행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나창기는 그해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선수로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프로팀의 입단 제의도 거절한다.

“프로야구 출범을 1년여 앞둔 1981년 당시 저는 제일은행 소속으로 직책은 대리였습니다."

"그해 실업연맹전에서 제일은행이 우승하였고, 저는 우승의 주역으로 도루왕도 차지하면서 잘 나갔죠. 그때 프로야구 입단 제의 소식이 들리는데, B급으로 대우해준다고 해서 ‘그러냐며’ 구경만 했죠."

"장래를 보장할 수 없는 프로팀에 가겠다고 안정된 직장을 버릴 수 없잖아요. 상고 졸업생 전체에서 성적 상위 5~10% 이내에 들어야 은행에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나창기 선수는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연희동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그때 마침 군산상고 야구부가 위기에 처한다. 선수와 학부모가 감독 선임을 두고 옥신각신하였고, 급기야 야구부 해체위기까지 몰린다.

이때 ‘군산상고 야구를 부활시킬 사람은 나창기뿐’이라는 이용일 KBO 전 총재대행의 강력한 추천을 외면할 수 없어 모교 지휘봉을 잡는다.

“이용일 총재님은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분이죠. 군산상고 선수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고요."

"해외출장 때도 꼭 야구부를 돌아보고 출발하셨고, 귀국해서도 군산에 도착하면 운동장에 오셔서 상황 파악과 선수들 격려하고 회사로 가실 정도로 애착이 강하셨죠."

"제가 군산상고 감독을 할 때도 그분이 경기장에 모습만 드러내도 선수들에게 힘이 됐습니다. 그분이야 잠시 구경삼아 오셨겠지만, 우리에게는 바람막이가 됐던 것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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