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조촌동의 ‘매청마을 새마을목욕탕’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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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조촌동의 ‘매청마을 새마을목욕탕’ 들어보셨나요?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4.03.19 12:10
  • 기사수정 2024-03-19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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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시작… 공동우물과 함께 운영
공동 우물 정비하며 목욕탕이나 빨래터 등 공공장소의 건립에서 비롯
군산 목욕탕의 역사…조촌동 매청마을 30여 채 동네 목욕탕 역할톡톡
조촌동 매청마을의 옛 공동마을목욕탕(매청새마을목욕탕). / 사진=투데이군산
조촌동 매청마을의 옛 공동마을목욕탕(매청새마을목욕탕). / 사진=투데이군산

'목욕탕은 며칠에 한 번씩 가는 게 맞는지 다음 보기 중에서 고르시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초등학생이었던 1970년대 도덕과목 객관식 시험문제 가운데 하나다.

정답은 ‘일주일에 한 번’이다.

지금 생각하면 목욕탕 방문 횟수에 정해진 답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런 게 시험문제에 출제될 정도로 그 시절 목욕탕은 특별한 날 일부러 짬을 내서 가는 특별한 장소였다.

하기야 공동목욕문화를 만든 고대 로마인들도 초기엔 9일(당시 일주일 단위)에 한 번씩 목욕을 다녔다고 전해진다.

개별 욕실 아닌 공동목욕탕이 일반적인 문화권에서 가능한 얘기다. ~이하 생략

<국제신문(온라인 신문) 2023년 1월25일자 발췌>

이런 기사에 나온 것처럼 군산의 목욕탕도 이런 출발과 거의 흡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꼬깃꼬깃한 지폐들고 명절 연례행사처럼 다녔던 우리 동네 목욕탕. 그때도, 지금도 목욕탕은 동네의 사랑방이다.

전통시대 우리나라의 목욕 풍습은 여름이면 개울과 강에서 하던 ‘멱감기’나, 겨울이면 부엌에서 물을 데워서 하던 ‘목간’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늘날 형태의 목욕탕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 목욕탕의 유래

일본인들은 한국에 와서도 군대나 경찰관서 등에 목욕탕을 설치했다. 기록상 1924년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평양에 만들어졌고, 1925년에는 서울엔 첫 대중목욕탕이 등장했다.

6·25 전쟁 이후에도 위생상 이유로 목욕탕 설립이 장려됐다.

해방 이후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위생 관념이 생기면서 사설 목욕탕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욕탕영업의 허가를 위한 시설규정도 제정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샤워 문화가 생겨났으며, 1980년대 이후부터는 건강, 휴식, 놀이로서의 대규모 기능성 온천과 목욕탕이 늘어났다.

# 새마을목욕탕의 시작

군산의 조촌동 매청마을에도 특이하고 이례적인 시설이 있다.

군산 곳곳에 공동우물들이 여럿 남아있지만 온전한 형태로 지금의 매청마을에 있는 ‘새마을 목욕탕’이 바로 그것이다. 한 카페 옆에는 마을 공동우물과 함께 위치해있다.

물론 지금은 우물이나 목욕탕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

1970년 이후에는 목욕탕 건립과 이용이 새마을운동의 대상이 됐다. 읍내 장터 근처에는 장날을 전후해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하천에 작은 다리를 건설하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고, 공동 우물을 정비하며, 목욕탕이나 빨래터 등 공공장소의 건립에 활용됐다.

장(場)이 서지 않고 목욕탕 시설이 없는 산촌이나 농촌의 오지 마을에는 정부가 나서 ‘새마을 목욕탕’을 보급했다.

한편 2010년 제작한 군산 기네스에 따르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은 1963년 6월1일에 허가난 중앙목욕탕이다.

목욕업(이른바 동네목욕탕)의 수는 1990년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 20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3,000여 곳이 폐업했고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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