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20] ‘일본인 시마타니 컬렉션’ 발산초 석조 유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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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20] ‘일본인 시마타니 컬렉션’ 발산초 석조 유물군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4.01.24 07:44
  • 기사수정 2024-01-24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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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마타니에 의해 충남· 호남 등서 옮겨진 석조유물
뒤뜰의 정원 컬렉션· 시마타니 금고… 일제 착취의 상징물
보물 제234호 석등, 보물 제276호 오층석탑 등 국보급
발산초등학교 전경
발산초등학교 전경

발산초등학교 뒤 공간에 온갖 유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에 거대농장을 만들었던 일본인 농장주 시마타니에 의해 충남과 호남 곳곳에서 옮겨진 석조유물들이다. 총31기다.

이곳을 만든 이는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시마타니는 1903년 군산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술을 빚는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그는 술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시마타니는 자신의 이름을 딴 농장을 세우고 군산 땅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불과 7년 만에 시마타니 농장의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두 배에 육박하는 145만8,000평으로 불어났다.

식민지 시절에 일본인 지주가 땅을 늘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고 터무니없는 이자를 뜯는 고리대금업이나 수확량 70% 이상을 뜯어가는 소작으로 돈을 불려 땅을 사들였다. 땅을 나눠준다며 간척사업을 벌인 뒤에 손바닥만 한 소작 땅만 내주며 착취를 일삼았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됐지만 시마타니는 일본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평생을 일군 광활한 농토와 거대한 금고 속의 재물을 두고 맨몸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심지어 미 군정청에 귀화신청까지 하면서 그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고 했다. 귀화 심사 통과를 위해서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조선어 공부까지 했을 정도였다.

# 시마타니 컬렉션 … 총31기

시마타니는 지금의 발산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자신의 집 정원에 석등이나 석탑, 부도, 문인석 등으로 일종의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었다. 물론 말만 수집이라고는 했지만 강탈하거나 훔쳐온 것들이 다수였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남아있는 31점의 석물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이 보물로 지정된 발산리 5층 석탑과 발산리 석등이다.

두 개의 석물은 완주군의 봉림사라는 절터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인데, 뽑혀 와서 사마타니의 컬렉션이 된 뒤 지금껏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석탑과 석등은 본래의 자리라도 알려졌지만, 부도나 무인석, 돌로 깎은 양 등 나머지 석물들은 대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시마타니 컬렉션 중 가장 눈길을 모은 것은 보물 제234호 석등.

이 석등은 본래 익산시 삼기면에 있었던 것이다. 사각형 지대석과 원형 하대석이 같은 돌이다. 특징은 기둥 모서리를 깎아 밑으로부터 구름과 용의 무늬를 새기고, 불을 켜는 화사석(火舍石)은 4각의 모서리를 깎아 4면에 사천왕이 새긴 특이한 작품이다.

다음은 보물 제276호 오층석탑.

발산초 5층 석탑
발산초 5층 석탑

이것은 완주군 고산면 풍림사지(風林寺址)에서 옮겨진 것이다.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의 화강암석탑으로 높이 6.4m이며,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사각형 석탑인데 한 층은 없어지고 상륜부를 새로 보완했다. 하대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조각되어 있고 1층 갑석(甲石)은 4개의 판석(板石)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밖에도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6각 정자형 부도 등 다양한 유물과 무덤 앞에 세우는 석물(石物) 등 닥치는 대로 모았다.

일부는 이곳에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라진 유물들도 상당수라는 게 이 학교 졸업생들과 인근 주민들의 기억물이다. 2000년 이곳의 유물이 도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농장주 등의 횡포와 수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유물 파괴현장이란 점에서 나라 잃은 비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마타니 금고

발산초등학교 뒤뜰에는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제182호)로 지정된 ‘시마타니 금고’가 있다.

말이 금고지, 실은 시멘트로 지은 2층짜리 독립건물이다. 시마타니 금고의 정식명칭은 ‘구(舊) 일본인 농장 귀중품 창고’다.

발산초 시마타니 금고
발산초 시마타니 금고

반지하까지 치면 3층이나 되는 높은 단독 건물에는 ‘금고’보다 ‘창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지만, 엄청난 두께와 무게의 철제문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수입해 달았다는 철문은 육중하기 짝이 없는 진짜 금고문이다. 문에는 ‘MADE IN USA’ 글씨가 선명하다. 시마타니가 이렇게 육중한 금고 철문으로 닫아걸고 꼭꼭 숨겼던 것은 무엇일까.

시마타니 금고의 반 지하층에는 비상시에 대비한 음식 등을, 1층에는 농장의 서류와 현금을, 2층에는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조선의 고미술품을 보관했다고 전한다. 3층짜리 집 크기의 금고는 땅문서와 돈과 보물로 그득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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