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16] 이영춘 가옥과 쌍천의 유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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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16] 이영춘 가옥과 쌍천의 유산(하)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3.12.14 12:32
  • 기사수정 2023-12-14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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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명소’ 이영춘 가옥… ‘이 박사 거주· 관리 이용 인연’있는 공간
각종 영화드라마 촬영지 각광… 대하 드라마 모래시계 등 주요 장면
간이역 개정역은 흔적없이 사라져 아쉬움만 가득
이영춘 가옥. / 사진=투데이군산
이영춘 가옥. / 사진=투데이군산

개정동 군산간호대학 캠퍼스에서 조금 들어가면 옛 개정병원 본관 언덕 위에 위치한 서양식 대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범상치 않는 외형이외에도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아 관광명소로도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건물은 본래 1920년경 군산지역의 일본인 대지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가 농장관리를 위해 지은 별장주택이었다.

# 이영춘 가옥 1920년대 대표 건축

한식· 양식· 일식의 건축양식이 복합된 주택 양식

1935년 군산으로 이주한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 개정병원장이었던 그가 그대로 생활하면서 생을 마감한 인연 때문에 오늘날 ‘이영춘 가옥’으로 불린다. 현재는 학교법인 경암학원의 소유로 2003년 10월 전북도 유형문화재 200호로 지정됐다.

구마모토는 일제강점기 소작인 2만여 명에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규모의 농지를 소유한 전국 최대 일본인 대농장주였다. 그는 군산간호대학의 터에 농장을 세우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서울에서 군산으로 내려왔을 때 일 년에 몇 차례씩 별장처럼 사용했던 곳이었다.

이곳은 조선총독부 관저 건축비와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보아도 화려한 집으로 보이는 이영춘 가옥은 1920년대 건축돼 한식, 양식, 일식의 건축양식이 복합된 근대 주택 양식이다.

특히 ‘미터(m)법’을 적용해 건축한 우리나라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외부 형태가 당시 유행하던 유럽 주거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평면구조는 일본식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양식 응접실과 일식 다다미방, 한식 온돌방 등이 결합된 절충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온돌방이 들어선 것은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면서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고 일식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한 데 따른 것.

이영춘 가옥은 목조 1층 건물로 기단과 벽난로 굴뚝은 호박돌을 쌓아 만들었다. 외벽은 황토와 회를 섞은 심벽으로 구성하고 그 하부에 백두산 낙엽송을 절반으로 켜서 짠 걸침턱 맞춤의 귀틀이 덧대어져 있다.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에 천연슬레이트를 얹어 마감했다.

현관 안쪽의 거실에는 티크목 쪽 패널이 깔려 있으며 내부의 기둥과 안방사이 심벽은 회로 마감되었는데 창 등에서 일본식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엌 다용도실, 화장실 등의 바닥은 모두 장마루로 마감됐다. 작은 숲속을 옮겨 놓은 듯 잘 조성된 정원과 호박돌로 쌓아 인상적인 벽난로 굴뚝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같은 아름다운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에선 이곳의 과거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 있다. 주연 중 한 사람인 강우석(박상원분)과 장선영(조민수분) 부부가 이곳을 신접살림을 한 곳이어서 관련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이영춘 추모비. / 사진=투데이군산
이영춘 추모비. / 사진=투데이군산

이영춘 박사의 부인 김근련 여사… 모세스영아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쌍천 이영춘(1903∼1980) 박사의 부인 김금련씨가 2006년 8월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영춘 박사는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농촌보건운동의 선구자였다. 이처럼 사랑의 인술을 펼친 이 박사의 의료봉사 뒤에는 묵묵히 뒷바라지한 김씨가 있었고, 14남매를 길러야 했던 일도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들을 돌본 모세스영아원을 맡아 사회봉사 활동을 했고, 군산 YMCA와 한국부인회 전국여전도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군산지역 농촌계몽운동과 여성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대한어머니회 제1회 훌륭한 어머니상(1965)과 제15회 전북대상(1990), 제10회 전북애향운동본부 대상 등을 수상했다.

모세스영아원

모세스 영아원은 1957년 8월 군산시 중앙로 2가 140번지에 설립됐다.

1958년 5월 도지사의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60년 7월 재단법인체를 등록했다. 1963년 7월 김금련 원장 취임하였고 1970년 3월 새 원사인 개정동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

2003년 1월 전경숙 원장 취임했다. 2005년 4월 사랑의 열매 차량지원사업(승합차 지원)을 시행했다. 2006년 6월 이사회를 개최, 2007년 4월 모세스 영아원 아동 정원을 변경했다. 보다 나은 시설 환경을 제공하고자 아동숙소 리모델링 공사 등을 마쳤다.

옛 개정역은?

군산화물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대야역과 군산화물역 사이에 있었다. 1924년 6월 1일 배치간이역(역무원이 있는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74년 무배치간이역(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격하됐다가, 2008년 여객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코레일 전북본부 소속으로 개정면 아동리에 있다.

이영춘 박사 조형물과 옛 개정역사 부지. / 사진=독자제공
이영춘 박사 조형물과 옛 개정역사 부지. / 사진=독자제공

이 역의 시작은 아마도 구마모토 농장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고, 후에 이영춘 박사가 대야와 다른 지역으로 왕진하기 위한 주요 교통수단으로 기차를 활용하기도 했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폐선된 군산선의 철도마저 사라졌다.

# 옛 개정병원 경영난 끝에 폐업… 봉정요양원 2004년 10월 탄생

옛 개정병원을 리모델링한 봉정요양원. / 사진= 투데이군산
옛 개정병원을 리모델링한 봉정요양원. / 사진= 투데이군산

수십여년에 걸쳐 군산지역에서 참의술을 펼친 쌍천 이영춘 박사의 숭고한 이념이 깃든 옛 개정병원이 노인전문 요양시설로 거듭났다.

옛 개정병원은 1945년 이영춘 박사에 의해 해방과 함께 개정중앙병원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개정병원은 305병상과 16개 진료과를 갖고 있는 2차 진료기관이다.

개정병원은 수십년간 군산지역의 대표종합병원으로 입지를 굳혔으나 경영난 끝에 문을 닫았다. 오랜 노사간 갈등에 이어 인수자가 제대로 문도 열지 못하고 학교법인으로 넘아갔다.

이후 학교법인 경암학원 군산간호대학은 2002년 개정병원을 법원 경매를 통해 인수한 리모델링 후 요양원으로 2003년 5월 개원했다. 이곳은 2004년 10월 봉정요양병원으로 재개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43병상 규모의 병원이다.

한편 월명종합경기장(경기장로)과 군산간호대(쌍천로)를 잇는 도로가 최근 개통됐다.

월명종합경기장~ 간호대 6차선 도시계획도로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총사업비 103억원을 들인 길이 850m, 폭 30m로 이뤄졌다.

시는 그동안 지역 균형발전과 정주여건 개선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통행안전 및 편의·교통정체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했다. 도로가 개통, 운동장을 찾는 시민들과 사정동 등 인근 주민들의 불편이 크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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