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친구 K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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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친구 K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3.10.26 16:00
  • 기사수정 2023-10-2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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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보낸 첫 편지… 재야법조인된 친구 ‘인생2막’ 응원
어렵고 필요한 이에게 따스한 손잡아 주는 법조인 되길 앙망
정영욱 '투데이 군산' 대표
정영욱 '투데이 군산' 대표

얼마 전, 재조(在朝) 법조인에서 변호사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지란지교(芝蘭之交)’의 K란 친구가 있다.

친구를 생각하면 어려웠던 대학시절의 수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 등이 샘물처럼 솟아나곤 한다.

1982년, 1987년, 1989년, 1991년, 1993년, 2008년… 그리고,  2023년.

이런 연대기적인 시간들은 친구 K와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대학 입학(82년)- 나의 민주화 투쟁기(87년)- K의 사법시험 합격(89년) 및 나의 언론사 입사(91년)- K의 법조인의 길(93년), 전자발찌 제도 시행(2008년) 등등으로 친구와의 긴 인연과 동행의 시간들이었다.

2023년 10월은 그에게 매우 의미가 있는 한해다.

30년의 재조법조인 생활을 마감하고 시민의 인권과 약자 보호에 앞장설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긴 인연과 깊은 우정에도 엊그제 고향에서의 ‘로펌 영입 개업식’을 하는 친구 K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가득했다.

‘내가 뭘 해야지…’에만 고민하고 고민했다.

몇날 밤잠을 설친 끝에 천만금을 줄 수 없을 바에는 법조인으로 초심을 잊지 않도록 충언이 가득한 ‘우정’의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라고 나만의 생각으로 정리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쓰는 ‘답정너(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그 대답만 해주면 된다는 뜻의 신조어)’란 설익은 마음에 옳거니 했다. 친구와 나와의 에피소드를 간결하게 정리하며 친구 K의 앞날을 성원하고 응원하는 글을 보낸다.

친구! 어느새 가을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쯤이 아닐까, 아니면 더 왔을까?

# 1987년… 나의 민주화 참여기와 K의 법조인의 길

아무래도 그 때로 긴 시간여행을 떠나야 할 듯 싶네.

그해 연말 대통령 직선제로 향하는 매우 역사적인 한해였는데...

친구! 난 대학원생으로 고시(?) 합격을 꿈꾸면서 직선제 투쟁 등 민주화 운동을 위한 대의에 적극 참여했었고 대통령 선거와 관련 집회에 참여했다가 전주의 관통로 큰 사거리에서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54시간 가량 붙들여야 했지.

처음에는 선거법 위반 혐의여서 기소, 재판을 준비해야 할 사건으로 확대돼 함께 선배인 한 변호사님을 찾아갔지만 무료 변론은 기대할 수 없었고 집안 형편상 포기하다시피했어야 했던 상황을 기억하지.

다음해 수개월 후 기소유예처분을 받아 겨우 마무리됐지만 말이야...

그 시절 친구는 이를 분개하면서 꿈을 향해 달려가 좋은 결실을 일궈 냈고, 멋진 법조인의 길을 걷고 걸어왔지. 참으로 친구의 한사람으로 장하이 그려!

물론 나도 언론인의 길로 바꿔 30여년을 달리고 지역 언론 창달에 노력해왔고 멋지지는 않았다고 할지 몰라도 과거 엽관주의적인 단체장과 싸워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는 평도 들었다네.

우린 길은 다르지만 항상 같은 방향으로 달려왔었고 우리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지 않았나.

# 어머니, 풍진세상 살아오신 어머님을 추억하며…

자네에겐 어머님의 얘기를 하면 아픔과 서글픔이 폭풍처럼 밀려오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우리의 앞날을 생각해 몇자 적어봄세.

자네의 자당(慈堂)은 참으로 헌신적인 분이셨고, 우리들에겐 다정다감한 분이셨지. 그 때문에 자넨 이것을 읽는 순간에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또 눈물이 절로 나겠지.

숱한 팔공산 기도와 힘겨운 생업전선과 맞서면서도 아들과 아들 친구들을 위해 (알뜰살뜰 챙겨)귀한 음식들을 장만하시고 사랑을 듬뿍 주셨지.

1989년 어느 여름날이었나!

자네의 사법시험 합격 소식에 학교에서 친구의 집까지 한 후배와 함께 억수비를 맞고 1시간 이상을 걷고 집에 들어가자 자당께서 눈물로 우릴 맞으셨던 그 광경들이 여전히 생생하다네.

자당의 말년엔 지병과의 힘든 싸움에도 난 은혜 한번 갚지 못한채 그분 홀로 기나긴 이별여행을 떠나셨지. 참으로 미안하네.

그분의 귀하고 귀한 희생을 이야기하면 끝이 없겠지만 새로운 길에 들어선 만큼 곱씹고 곱씹으면 멋진 아들이자, 당당한 법조인의 길로 갈 것이라 굳게 믿어의심치 않네.

# 전자발찌 도입 혼신 노력과 결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자네의 프로필을 살펴보니 법무부에 근무하던 때인 2008년이었내 그려! 오늘날 성범자 예방 등에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전자발찌제 최초 도입’을 위해 국회의 여야 의원들에게 밤낮없이 오가며 설득했었지.

그 때문에 미온적이었던 해당위원회 야당의 간사도 감동, 오늘날과 같은 ‘전자발찌제’가 본격 시행될 수 있는 성과를 내는데 헌신했지.

난 그런 자네의 노력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네.

이제, 측은지심을 지닌 자네가 중견 법조인으로서 인권 보호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더욱 더 노력해주리라 확신하네.

자네의 귀한 선택을 항상 응원하고 격하게 기도하겠네.

10월 하순 고향에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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