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29] 인물들의 고장의 교육기관(2) -초등명문 ‘대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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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29] 인물들의 고장의 교육기관(2) -초등명문 ‘대야초등학교’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4.05.30 15:16
  • 기사수정 2024-05-30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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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전통의 매머드급 농촌학교… ‘99회 졸업생’ 약 1만6,700 여명 배출
긴 역사 속 명실상부한 인물들의 산실… 학·정· 관·재·체육계 등 골고루 활약
이길여 가천대총장· 강임준시장· 이효율 풀무원대표이사· 두재균 전 총장 등
대야초등학교 전경(항공사진). / 사진=대야초 제공
대야초등학교 전경(항공사진). / 사진=대야초 제공

백마산 푸른 줄기 노령의 기상/ 어~진이 높은 슬기 이어 받아서/ 부지런히 배우고 씩씩히 자라 /새역사 이룩하여 길이 빛내자/ 착실하게 힘껏 닦아 - 중략- 사랑과 희망에 찬 대야의 낙원 - 대야초등학교 교가 중 일부 -

1900년대 들어 군산과 옥구지역엔 당시 군산부 1개교와 옥구군 16개교 등 모두 17개교에 달하는 공립소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가 존재했었다.

근대적인 학문이 밀려들어오면서 공립과 사립학교가 존립했지만 다수의 학교들이 운영난을 겪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최악의 민족사적인 시대 상황 속에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옥구지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대야면에 신설된 대야초는 새로운 지역교육의 길라잡이가 되는 초석을 깔았다.

‘4년제 보통학교’로 문을 연 대야초는 1921년 7월1일 45명의 학생을 신입생으로 받은 후 올해까지 99회 졸업생 약 1만6,700 여명 배출했다.

3.1운동 이후 학제 개편 등으로 기존 4년제에서 6년제로 개편된 이 학교는 1924년 3월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해방 후 정국혼란과 한국전쟁 속에 또 한 번의 혹독한 시련기를 거쳐야 했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60년대 초‧중반을 넘어서부터다.

이후 50주년 및 70주년, 100주년 등을 거쳐 양‧질적인 면에서 착실한 성장을 거듭했다.

# 도약 전기 마련한 1970년대

이런 기반아래 체제 정비가 된 것은 개교 50주년 때인 1971년.

각종 학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한편, 학력우수학교를 지정받는 등 군산 최고의 초등학교로 입지를 굳혔다. 1974년 3월엔 특수학급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시기를 맞아 괄목할만한 변화는 대야초의 학교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동문들의 등장이었다. 이 학교 졸업생인 이길여 당시 길병원 설립자 겸 이사장이 정문 개축에 큰 도움을 줬고 이를 계기로 다른 동문들도 모교발전에 적극 동참했다.

1981년엔 대야병설유치원을 설립한 이 학교는 전북해양탐구 시범학교로 지정돼 과학문고 독후감 발표대회와 배 만들기 대회 등의 관련 행사를 추진해왔다.

또한, 무궁화동산 조성과 등나무 야외교실까지 만들어지면서 미래인재양성을 위해 더욱 정진을 거듭했다.

# 1990년대 대도약기… 전국 최강 ‘탁구부’ 신화창조

90년대 들어 사교육비 급증과 어려운 농촌 현실 때문에 후배들을 후원하기 위한 장학 물결이 쇄도했는데 가히 다른 경쟁학교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1992년 4월 고생대 화석박물관 설립과 전교생 급식을 실시한데 이어 교육개혁에도 앞장, 교육개혁 실천 수범학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90년대 들어 대야초가 보인 성과는 누가 뭐래도 탁구부의 창단과 신화창조로 요약될 것이다.

94년 창단된 탁구부는 창단 7개월 만에 전국 정상(개인전)에 올랐고 1997년 국내 탁구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제43회 전국종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3관왕의 위엄을 달성했다. 80여 년 개교 역사상 전국 규모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

이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학교 탁구부는 2000년 6월 전국종별대회 석권 등에 이르기까지 4관왕을 차지한데 이어 그해 전관왕 등정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탁구부는 2000년과 2004년, 2010년까지 세 번째 전관왕을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화를 창조했다. 송마음 등 유명 탁구 선수들을 배출, 스포츠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군산을 넘어 전국적인 학교로 발돋움을 했다.

# 대야초 발전의 대모(代母) 등장… 이길여 동문의 아낌없는 모교 사랑

학교발전에 한 획을 긋은 졸업생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러운 일이다.

그야말로 소설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동문의 등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단 탁구부만이 아니라 학교발전장학금과 건물건립 기증 등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설속의 그 키다리아저씨(?), 아니 대야초 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해온 대모(代母)가 이길여(21회) 가천대 총장.

이 총장이 모교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정문 신축에 이어 재신축(94년 5월)과 탁구부 창단 후원 등 실로 엄청나다. 이외에도 졸업식 장학금 후원 등 포괄적인 후원활동을 전개해왔다.

2021년 대야초 100주년 식장에 등장한 이길여 가천대총장. / 사진=투군
2021년 대야초 100주년 식장에 등장한 이길여 가천대총장. / 사진=투군

특히 이 총장은 2014년 6월 거액의 사재를 털어 모교에 가천이길여도서관을 건립, 기증하는 등 끝없는 모교사랑을 실천해왔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모교인 대야초교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대야초와 이리여고, 서울대 의대 등을 졸업한 뒤 의료법인 길병원을 설립했을 뿐 아니라 경원대 총장, 경인일보 회장 등을 역임한 국내 의료분야 발전의 최고 공로자다.

최근엔 가천대 총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그는 한국의 퀴리부인으로 불릴 만큼 사회와 국가발전의 봉사자로 지칭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봉사와 사회활동 등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대야초와 동문회 등은 이런 그의 공로를 기리는 한편 기념하기 위해 교정에 그의 흉상을 제작,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

한편 이 총장은 세계 최초로 길병원 산하 연구소를 통해 뇌 신경 지도를 제작하는 등 국내 의료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통령표창,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한국과학기자협회 우남과학진흥상,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서재필의학상 등을 받기도 했다.

# 대야초의 유명 동문들

근‧ 현대기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90주년을 넘어 개교 100주년을 넘어선 대야초는 수많은 인물들의 산실로 거듭났다. 그 분야도 교육계를 비롯한 정·관·재계 등에서 맹활약했다.

이길여 총장을 비롯한 성종림(23회) 전 원광대 교육대학원장, 김효철(30회) 전 아주대 부총장, 한수양(32회) 전 포스코건설 대표이사(전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회장), 최재승(33회) 전의원, 최병선(39회)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등이 이 학교 출신들이다.

여기에다 이병문(39회) 전 해군제독, 두재균(41회) 전 전북대총장, 강임준(41회) 군산시장 등도 이 학교를 빛냈다.

또한 이효율(44회) 풀무원대표이사, 김천환(46회) 전전북개발공사 사장, 박일관(49회) 전군산교육지원청 교육장, 한철규(50회) 한솔제지 대표이사, 황성택(54회)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이사, 이형세(55회) 경찰수사연구원장 김지호(87회) 전 탁구국가대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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