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26]대야·개정면의 母교회 ‘지경교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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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26]대야·개정면의 母교회 ‘지경교회’(1)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4.04.19 10:37
  • 기사수정 2024-04-19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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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역사…1900년 10월→ 1904년 예배당 확장→ 1953년 개칭
이곳 출신 유명인들… 항일운동가· 정치인· 목회자 등 다수 배출
항일운동가의 산실… 이순길 및 이요순 남매, 고규영, 강대옥 등

지경교회는 1900년 가을 전위렴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몇몇의 신자들이 모여 대야면 중만자 초가 세 칸에 둥지를 틀고 태동, 현대사의 질곡을 감당해온 교회이다.

지경교회를 통해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전북 여러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많은 목회자와 각계 각층에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교회.

군산 지경교회의 서막은 최흥서 장로(대야면 지경리)가 1896년(광무 원년) 4월 10일 전킨(W. M. Junkin: 한국명 전위렴)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으면서부터다.

# 지경교회의 시작과 뿌리

최흥서는 보부상 조선달로부터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놨다.

그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구암동산의 군산선교부까지 30리 길을 오가며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키워가면서 만자산에 교회의 터전을 준비한다.

만자산교회는 1900년 10월 9일 중만자에 초가(3간)예배당을 건립하고 예배를 시작하며 문을 연다.

교회 역사를 보면 이 교회는 1903년 최흥서를 초대 장로로 세웠다. 1904년 오늘날의 교회 부지를 매입, 예배당을 확장했다. 그후 1907년 부위렴(윌리엄 불: 1876~ 1941) 선교사가 당회장으로, 1909년 김필수 목사(당회장)로 각각 부임 이후 교회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교회는 1953년 지경교회로 이름을 바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8년 8월 발산교회가 분립했으며 1978년에는 지경유치원을 개원했다. 1979년 대복교회(장좌 마을)가 신축· 분립됐다.

지경교회는 1999년 5월 새성전 착공 예배를 드리고 2000년 6월에 입당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는 개정과 대야지역에 다수의 교회 설립에 도움을 주거나 자교회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 어머니 교회란 평가를 받고 있다.(지경교회에 대한 주된 내용은 디지털군산문화대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기독교헤럴드, 지경교회 홈페이지 등을 참조 및 인용했다.)

# 지경교회와 항일지사

지경교회는 개정 및 대야지역의 모교회란 역사성 때문에 이곳 출신의 이요한 장로(5대 전북지사)와 그 형제 및 남매 등 지경교회 교인들은 군산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정부수립 등에 앞장섰다.

특히 이 전북도지사의 남매들은 기독교 신앙과 투철한 항일정신을 실천, 항일운동에도 앞장섰거나 해방 후 제헌의원과 전북도지사 등을 거친 인물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 지사의 막내 남동생인 이요순(1902~ 1937)지사와 제헌의원· 군산 최초의 전북도지사 등을 지냈던 큰 남동생 이요한(작고)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순길(1891~ 1958) 여성독립지사는 선교사의 세례를 받은 부모님의 신앙영향으로 자신도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입문했단다. 이순길 지사의 부모는 1896년(지경교회 연혁· 호남 최초선교사 전킨 선교사(서종표 편저) 등 참조)에 전킨 선교사로부터 군산구암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은 인사들이 나중에 오늘날의 지경교회(옛 만자산교회) 설립에 적극 참여한다.

그는 유아기에 크게 아팠으나 드루 선교사로부터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후에 집안의 기독교 분위기에 멜볼딘여학교와 서울 정신여학교(정신여고 전신: 6회 졸업)를 졸업한 그는 미션스쿨의 교사생활과 독립운동단체인 ‘송죽회’와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혈성단애국부인회’ 등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이순길 지사는 혈성단애국부인회 등과 같은 조직의 각 지부에서 갹출된 의연금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는 역할에도 앞장서기도 했다. 이른바 독립운동단체의 비밀조직책으로 은밀하게 활동해왔다.

그의 막내 남동생인 이요순 지사의 항일운동 행적은 그동안 직접적인 후손들이 없어 역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그의 외손 정은섭씨는 이 지사의 항일운동을 발굴과정에서 이요순 지사의 항일운동 기록들을 찾아내 2022년 11월 대통령 표창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요순 지사는 영명학교 재학 중 3.1운동 독립만세운동은 물론 일어선생 거부 동맹휴학 등 뿐 아니라 새로 편입한 고창고보에서도 일본인 교원배척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이런 이유로 일경에 체포돼 무자비한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들 뿐 아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항일운동 및 순교에도 헌신했다.

애국자가 많은 교회이다. 한강 이남에서 맨 먼저 일어난 1919년 3월 5일 군산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김준실, 강홍선, 이순길· 이요순 등 교인들이 구속돼 고통을 받았다. 김준실은 군산 3.5만세운동 때 궁멀예수병원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적극 참여, 투옥되기도 했다.

수원고등농림에 재학 중인 고규영 애국지사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한 뒤 김제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집에 온 지 7일 만에 사망한다. 후에 건국훈장 애족장(2008년)을 추서받았다.

강대옥 애국지사 또한 전주고보 2년 재학 중에 광주학생의거의 후속 모임을 전주에서 준비하다 경찰에 구금되고 고문받았다. 이후 보성전문에 입학하여 학업과 축구선수를 하던 중, 고문 후유증이 재발돼 2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단다.

이곳 출신 중에는 해방 후 정치발전 등에 앞장 선 이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사는 이요한(작고) 전 지사다. 제헌의원 뿐 아니라 전북도지사를 역임했다. 이후 강임준 시장, 김동구 도의원 등은 지역정치인으로 과거에 활동했거나 여전히 활동 중에 있다.

이밖에 한국전쟁 중에는 이 교회 장로와 교인들이 다수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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