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20] 숨기고 싶은 집
상태바
[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20] 숨기고 싶은 집
  • 김규아
  • 승인 2026.07.24 06:05
  • 기사수정 2026-07-24 0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나는 틈만 나면 같은 말을 했다. "나 너네 집 놀러 가고 싶어."

민정이는 항상 거절했다. "우리 집 별거 없어."

"거짓말."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엄마한테도 자랑했는걸."

"뭐라고?"

"너네 집은 엄청 멋진 집일 거라고."

민정이는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야."

"아냐. 너는 그럴 거야." 세나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민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도 세나는 만날 때마다 졸랐다. "한 번만."

"다음에."

"언제?"

"...나중에." 끝까지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준비물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잠깐 집에 다녀올게." 민정이가 교실을 나서자 세나도 벌떡 일어났다.

"나도 갈래."

"금방 갔다 올 거야."

"같이 가."

옆에 있던 아이들도 장난처럼 거들었다. "야, 한 번만 좀 데려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민정이는 세나와 함께 장지동 연립 골목으로 걸어갔다. 골목 초입에 2층 단독주택이 나타났다. 세나는 눈을 반짝였다.

"여기야?" 민정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응." 세나는 활짝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대문이 열리더니, 낯선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누구 찾아?" 민정이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니에요." 대답을 마친 민정이는 얼른 몸을 돌렸다.

"이쪽이야." 어쩔 수 없이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나는 아무 말 없이 따라왔다. 골목은 언제나처럼 좁았다. 담벼락에는 빨래가 길게 널려 있었고, 금이 간 시멘트 계단 아래에는 연탄집게가 기대어 있었다. 낡은 연립은 서로 몸을 기댄 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녹슨 대문. 좁은 시멘트 계단. 오래된 연탄 냄새. 조금 전까지 재잘거리던 세나가 조용해졌다.

"잠깐만." 민정이는 거의 뛰다시피 계단을 올라갔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준비물을 챙겨 들고 서둘러 내려왔다. 세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민정이를 바라보던 웃음이 아니었다. 민정이는 그 표정을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민정이는 괜히 가방 지퍼만 몇 번을 열었다 닫았다.

"가자." 둘은 말없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였다. 세나는 조금씩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었고, 어느새 하교길이 되었고, 마침내 롤라장에도 함께 나타났다. 학교에서 집이 잘산다고 알려진 아이들이었다. 새 운동화를 신고, 워크맨을 돌려 끼고, 일제 카세트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최신 가요를 따라 흥얼거렸다.

세나와 아이들의 웃음은 롤라장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민정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롤러스케이트 끈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혼자 트랙 안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디제이 부스로 걸어갔다. 예전에 시비가 붙었던 오빠들이 웃으며 부스에서 나왔다. "공주님 또 왔네." 한 오빠가 뒤로 롤러를 타며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아이들이 웃었다. 세나도 함께 웃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어울려 온 사람들처럼.

그 날따라 트랙 위에 쏟아진 콜라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끈적한 자국이 롤라 바퀴에 밟혀 길게 번지고 있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