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7] 판자벽 사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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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동 연립 3부: 민정이의 세계 #7] 판자벽 사이의 빛
  • 김규아
  • 승인 2026.04.24 05:53
  • 기사수정 2026-04-24 0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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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는 다음 날도 밤거리를 배회했다. 집 안의 숨 막히는 정적보다 어제 학교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기괴한 웃음이 덜 무서웠다. 저만치에 어제의 그 말랭이 아이가 서 있었다. 한 번, 두 번 시선이 엇갈리더니 민정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속 뒤를 쫓는 그 아이. 민정이는 걸음을 재촉했다. 따라서 빨라지는 발소리. 결국, 따라잡혔다.

잔뜩 긴장한 민정이에게 아이가 불쑥 물었다. "너 옷이 왜 그러냐?" 작아진 옷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살점, 해진 소매와 얼룩들. 민정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툭툭 던졌다. 아버지, 새엄마, 그리고 새엄마가 데려온 아이. 밥상에서 밀려나는 자리와 하지도 않은 일로 맞았던 날들. 말은 끊기듯 이어졌고, 중간중간 거친 욕이 섞였다. 민정이는 듣고만 있었지만, 어느새인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갈래?" 따라붙은 또 다른 아이의 제안에 민정이는 홀린 듯 판잣집 골목으로 발을 들였다. 골목은 좁았다. 길을 따라 대문 없는 방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골목 끝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가 문 하나를 열었다. 방은 둘이었다. 얇은 판자 하나가 방을 나누었고, 그 가운데 형광등 하나가 걸려 있었다. 불을 켜자 옆방도 같이 밝아졌다. 민정이는 그 광경이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연탄불 위에서 물이 끓었다. 라면 냄새가 났다. 아이는 아랫목 밍크담요 속에 묻어두었던 스텐 밥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쉰내 섞인 김이 약하게 올라왔다. 시어빠진 김치와 라면, 그리고 쉰 밥뿐이었지만 아이들은 허겁지겁 그것들을 집어먹었다. 어른 하나 없이 낯선 소녀와 어린 여동생, 그리고 경계했던 말랭이 아이와 먹는 밥상이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라면 국물을 쏟았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고 그냥 손으로들 쓱 닦아냈다.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민정이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날 선 시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눈치 볼 일이 없다는 사실에 불쑥 웃음이 났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영문 모를 웃음을 따라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로 앉아 수다를 떨었다. 소녀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배다른 여동생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속삭였다. 불행의 결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나누었다.

문득 예전에 이 아이들을 보며 겁을 먹던 순간이 떠올랐다. 멀리서 볼 때는, 다른 세계의 이방인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마주한 그들은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완벽한 온실 안에서만 살았다면, 민정이는 여전히 이 아이들을 무시무시한 괴물로만 여겼을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한 날카로운 가시만 보았던 민정이는, 삭막한 벌판으로 내던져진 후에야 비로소 이들의 무른 속살을 보게 된 것이다.

누군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그래도 웃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민정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불이 잠시 깜박였다. 이쪽 방과, 저쪽 방. 구분 없이 똑같이 비추는 빛이 깜박이며 잠시 점멸하자 다 같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민정이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밤은 깊어갔지만 방 안은 여전히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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