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국민 우익수’ 이진영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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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국민 우익수’ 이진영 ④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12.28 07:45
  • 기사수정 2022-01-14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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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청소년 대표로 출전, 모교에 영광 안겨

캐나다 멍크턴시 해변에서 나창기 감독과 이진영 선수(1997년)/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캐나다 멍크턴시 해변에서 나창기 감독과 이진영 선수(1997년)/사진=군산야구 100년사

 

1학년 내내 지각 한 번 안 하고 학교와 집만 오가며 기본기 다지기에 몰두했던 이진영.

그는 1997년 여름 캐나다에서 개최된 제17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국대표 선수로 선발된다.

군산상고 2학년 때 일이었다.

 

“제17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 한국대표팀 감독을 제가 맡았었죠."

"선수 18명 중 군산상고 출신은 이진영(2학년) 한 명뿐이었습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학년이라 곤란하다고 했지만, 강력히 추천했죠.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려면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타력·수비력 등)을 거두는 것은 물론 품성과 기본기를 충실히 갖춰야 하는데, (이) 진영이만한 외야수가 없었거든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군산상고 사령탑을 맡았던 나창기 호원대 야구감독 회고다.

그는 “당시 청소년 국가대표팀은 고교 3학년과 대학 1학년 선수 중심으로 구성됐다”면서 “진영이는 나이만 어릴 뿐, 성적이나 기량은 대학생 선수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고 부연하였다.

나 감독 말처럼 선배들을 제치고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진영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살림꾼 역할을 해내며 도루왕 타이틀을 따낸다.

1997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8월 8일~17일)는 캐나다 항구도시 멍크턴시에서 개최됐다.

예선성적 4승 1패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한국은 15일 미국에 패해 4강 진출이 좌절된다.

이튿날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5~6위 진출전은 이진영이 홈런을 포함, 5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는 등 소나기 안타를 퍼부어 7회 콜드게임승(18-1)을 거둔다.

17일 벌어진 5~6위 결정전에서는 한국이 브라질을 5-0으로 누르고 5위에 오른다.

당시 대회 통산타율 1위(5할)와 4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린 봉중근(신일고)은 우승팀 쿠바 선수들을 제치고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대회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하였고 이진영은 도루상을 수상했다.

이진영은 1998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 청소년야구대회(9월 4일~13일)에도 출전, 2년 연속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대회 마지막 날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벌어진 3~4위 결정전 2회에 2점짜리 그라운드홈런을 날리는 등 중국을 7회 콜드게임(20-2)으로 물리치고 3위를 차지하는 데 일조한다. 또한, ‘베스트 9’에 들어 개인의 영예와 함께 모교에 영광을 안겼다.

그해 가을에는 제주도 일원에서 개최된 제79회 전국체육대회(9월 25~10월 1일)에서 군산상고를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 된다.

김상현(SK) 이승호(NC) 이대수(SK) 등이 당시 함께 뛰었던 선수들.

이진영은 “누구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듯 나도 가끔 그립다. 훈련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프로와는 다른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며 “어쩌다 ‘군산상고’ 관련 뉴스나 신문을 보면 꼼꼼하게 읽는 편”이라며 추억을 떠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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