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석수철 감독 ④
상태바
[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석수철 감독 ④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1.01.22 07:30
  • 기사수정 2022-01-14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1996 플레이오프 4차전 

쌍방울은 그해 돌풍을 일으키며 1996플레이오프에 직행한다.

1차전(쌍방울-현대)은 10월 7일 전주에서 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군산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쌍방울의 꼴찌행진에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사촌격인 해태를 응원하던 사람들도 술자리에서 쌍방울의 선전을 화두로 삼았다.

당시 만년 꼴찌팀 쌍방울의 선전은 전북 도민에게 운동 경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는 전주구장은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표가 매진, 전북 팬들의 뜨거운 열기를 반영했다. 그들의 소망은 내친김에 현대를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팬들의 열기 때문인 듯 한국시리즈가 아님에도 유종근 당시 도지사가 1차전에 나와 시구했고, 경찰력도 여타지역보다 많이 지원했다.

 

전주에서 벌어진 1996플레이오프 2차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환호하는 쌍방울 선수들.(1996년 10월 9일 치 한겨레)
전주에서 벌어진 1996플레이오프 2차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환호하는 쌍방울 선수들.(1996년 10월 9일 치 한겨레)

쌍방울은 팬들의 응원에 화답하듯 1, 2차전 모두 승리로 장식한다.

그러나 내리 3연패를 당해 대망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특히 5차전은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다 4회와 5회 초 각 1점씩 내줘 0-2로 뒤진 상황에서 5회 말 선두타자 석수철이 좌전안타가 터졌다.

그가 1루에 진루하며 추격의 기회를 잡았으나 후속타 불발과 작전 실패로 무득점에 그쳤다. 7회 1사 만루 기회도 살리지 못하고 1-3으로 패한다.

아래는 석수철 감독의 소회.

 

“그때 쌍방울의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 원인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큰 경기에 강한 에이스가 없었다는 의견, 투수 로테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 선수들의 타격 부진을 꼽는 사람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4차전(인천 경기)을 잊지 못합니다."

"8회 말 3루 쪽으로 굴러오는 평범한 땅볼을 제가 놓치는 실책을 범하고,그 실책이 안타로 이어져 2-4로 패했거든요. 그 4차전이 평생에 가장 가슴 아팠던 경기로 남습니다.”

 

조기은퇴 후 ‘지도자의 길’ 걸어... “야구만 가르치라면 자신 있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36회 야구월드컵 준우승 차지하고(왼쪽이 석수철)/사진=군산야구 100년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36회 야구월드컵 준우승 차지하고(왼쪽이 석수철)/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신인임에도 붙박이 내야수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석수철.

그는 1997년 1월 초 전년도 연봉 대비 80%오른 3600만 원에 구단과 재계약한다. 함께 입단한 신인들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이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호사는 거기까지였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환자 신세가 됐다. 결국,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엔트리에서조차 빠진다.

1997년 4월 1일,<연합뉴스>는 그해 프로팀들 전력을 점검하는 기사에서 “지난해 기적적인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한 쌍방울의 올해 목표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며 “만년 꼴찌 후보 오명을 벗고 어느 팀도 쌍방울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됐지만 빈약한 선수층으로 대변되는 객관적인 전력의 절대열세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다. 고질적인 내야 불안은 주전 3루수 석수철의 부상으로 오히려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석수철은 고관절 수술을 두 차례나 받고 치료 중임에도 그해 6월 1일 쌍방울-삼성 경기가 열리는 군산 월명야구장에 목발을 짚고 나왔다.

팀 동료들을 응원하는 그의 모습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시즌 내내 부상과 사투를 벌이던 그는 쌍방울이 악조건 속에서도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리고 복귀를 앞두고 있을 때 대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저는 선수로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복귀를 앞두고 있을 때 대만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2억 원에 계약했는데,대만에 지진이 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거든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남보다 먼저 지도자 생활을 하자고 마음먹고 1999년부터 성균관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죠."

"그래도 지도자 운은 좋은 것 같아요. (웃음) 해마다 우승 및 준우승을 거머쥐면서 2000년대 대학야구를 ‘성균관 시대’로 열어놨으니까요. 2009년에는 5개 대회에서 23승 1무 4패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올렸죠."

"제가 대학과 고등학교 야구지도자 생활을 15년 가까이하면서 이끈 우승과 준우승을 합하면 30회 가까이 됩니다. 엄청 많은 횟수죠."

"2005년 국제야구연맹(IBAF)주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36회 야구월드컵 준우승을 비롯해 2010년 7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대학야구 선수권대회(4위) 등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여러 차례 선임되어 좋은 성적을 거뒀고, 그 과정에서 이기는 야구를 배웠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야구만 가르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미련 곰탱이’처럼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왔고, 최종 목표는 프로구단 지도자라는 석수철 군산상고 감독.

그는 “후배들 지도에 모든 역량을 쏟아 선배들이 일궈놓은 역전의 명수,그 영광을 되찾고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선수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석수철 편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