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와 하제2] “이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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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와 하제2] “이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 김규영
  • 승인 2026.10.30 17:51
  • 기사수정 2026-11-02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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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송경동
사진=송경동

가을비가 종일 멈추지 않고 내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옥서면 하제마을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600살 팽나무가 내려다보는 너른 자리에 천막을 세운다. 고르게 다져진 땅이 아니니 평평한 곳을 잘 골라야 한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는 한 사람씩 기둥을 붙들고 버티어 선다. 비가 많은 날에는 천막 위에 고인 빗물을 때때로 비워주어야 한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하고 빗물이 튀지 않게 비닐로 꽁꽁 싸매어둔다. 습기에 예민한 음향기기들은 꼭 노래가 한창일 때 먹통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어떤 음향 문제도 전투기 소음만큼 귀를 괴롭히지 않으니까.

사진=김규영
사진=김규영
사진=김규영
사진=김규영
사진=김형우
사진=김형우

그리고 음식, 나눠 먹을 음식이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한다. 미리 씻고 다듬어 준비한 재료와 양념을 옹색한 간이 부엌에 풀어놓고 뚝딱뚝딱 빠른 손으로 조리한다. 뭉근히 끓어오르는 어묵탕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오겠다고 약속한 김제의 동학농민혁명 구미란 전적지 원평집강소에서 준비한 어묵탕이 찰밥과 새우젓 얹힌 수육이 바삭하게 지져내는 부침개와 김치, 그리고 떡과 함께 대기 중이다. 덕분에 매번 음식을 준비하는 청주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두부김치찜 하나만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떤다. 푸짐하게 쪄낸 가을 옥수수와 고구마가 식지 않았는지 확인하며 뚜껑으로 잘 덮어둔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대표님이 직접 주워온 햇밤을 연신 구워내니 10월 팽팽문화제는 구수한 냄새로 은은하다.

사진=김규영
사진=김규영

팽팽문화제가 올해 10월로 70번째가 되었다. 폭설로 차가 오갈 수가 없었던 때를 빼놓고 꼬박꼬박 달마다 만나왔다. 그 사이에 팽나무는 전라북도 기념물이 되고, 국가지정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제573호)이 되었다. ‘우영우 팽나무’처럼 드라마에 나온 것도 아닌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처진 어깨로 고향마을 떠나던 시절에는 어디 꿈이나 꿨던 모습일까.

2020년 10월 첫 번째 ‘팽팽문화제’는 ‘하제/팽나무지킴이대회’였다. 사람 떠난 집을 가차없이 부수어놓았던 흉흉한 마을에 팽나무마저 언제라도 베여 동강날 것 같아 염려스러웠던 때였다. 수 십년에 걸쳐 마을 쪽으로 철조망을 몇 번씩 새로 세우며 기지를 확장하던 주한미군은, 급기야 철조망에 바짝 붙여서 탄약고를 만들기에 이른다. 위험하지 않느냐 했더니 안전을 위해 4㎞ 이내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집 비우고 나가라 했다. 새로 땅주인이 된 국방부가 미군에게 이곳을 넘겨버리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주한미군의 사용을 위해 한국 내의 토지나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여(供與)’가 그것이다.

문정현 신부/사진=김규영
문정현 신부/사진=김규영

2009년부터 하제마을의 강제이주가 시작되었다. 빽빽하게 들어찼던 집들이 허물어지고 성글어지니 마을 깊숙이 살던 최고령 거주자의 존재가 드러났다. 600살 팽나무였다. 1997년 군산 미공군의 활주로 사용료 5배 인상 요구에 항의하며 우리땅찾기 운동을 시작한 문정현 신부는 서울,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을 지키려고 온몸으로 싸우다 20여 년 만에 군산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이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라고 호통을 친 존재가 있다. 하제마을 600살 팽나무였다.

팽팽문화제가 열리면 팽나무도 흐뭇한지 호통보다 자애로운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세상 물정을 몰라 이제야 왔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낸다. 그 품에 안겨 보았기 때문인지, 팽팽문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품도 넉넉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일찍부터 늦게까지 머물며 일손을 돕는다. 양말과 기념품, 책을 구매하여 후원금으로 보탠다. 풍물치고 낭독하고 기록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아 팽팽문화제를 함께 만들어간다.

황석영 작가/사진=김규영
황석영 작가/사진=김규영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이번 달 팽팽문화제를 준비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문화예술인과 사회단체에 대한 지원과 연대사업을 펼치는 길동무의 공동이사장 김판수 선생이 문정현 신부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공동이사장이자 한국문단의 원로 평론가인 염무웅 선생이 팽나무와 문신부를 주인공 삼아 소설 『할매』를 집필한 황석영 작가를 소개했다. 황작가는 팽나무 비나리 제문을 읽고 소지하였다. 그는 궂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팽나무 앞에 모여든 수십 명의 염원을 전달하는 무당이었다. 길동무의 상임이사 송경동 시인은 ‘다시, 오래된 미래에 대하여’를 낭송하였다. 무안에서, 해남에서, 제주에서 온 예술가들이 굵은 빗줄기를 마다않고 아낌없이 노래 품을 내어놓는다. 누가 이들의 새벽걸음을 재촉해 군산까지 오게 했을까.

팽팽문화제가 열린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시의 지원을 받고 있나요?” 당황하여 걸음까지 멈칫거렸다. “왜 지원을 받지 않나요? 마땅히 시의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주한미군의 확장을 반대하는 지원, 마을과 생명을 지키는 지원이라면 마다할 까닭이 있을까. 행여 인건비, 대여비, 재료비 등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품에 삯을 책정하는 금전을 받으라는 뜻이라면 모욕에 가까운 물음이겠으나, 차분히 불쾌의 감정을 가라앉힌다. ‘진심(眞心)’의 세상을 알지 못하여 물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내 눈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기 전에는 ‘진심(眞心)의 공동체’의 구현을 상상도 못하지 않았던가.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땅으로 떨어지는 하늘의 물을 맞으니 한몸이 된 것 같다. 이 땅에 뿌리 내린 600살 팽나무가 염원하는 소리에 우리 목소리를 얹는다. 공항 말고 갯벌을, 전쟁 말고 평화를, 자본 말고 생명을!

팽팽문화제는 매월 21~27일 사이의 토요일 오후 3시(동절기 2시)에 하제마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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