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스크린여행-⑥옛 군산세관 등] 스크린 속 시간여행 공간
상태바
[군산스크린여행-⑥옛 군산세관 등] 스크린 속 시간여행 공간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6.09.25 06:03
  • 기사수정 2026-09-26 0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드라마 감독들, ‘살아 숨 쉬는 야외 세트장’ 사랑 듬뿍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 수많은 시대극 배경
군산세관/사진 제공=군산시
군산세관/사진 제공=군산시

“찰칵! 찰칵!”

세상의 소음이 툭 끊어지고, 문득 수십 년 전 어느 오후의 공기가 폐부로 스며드는 곳. 골목마다 시간이 단단하게 엉겨 붙어 박제된 도시, 군산이다.

일제강점기의 서늘한 상처와 근대 건축의 고혹적인 미감이 기묘하게 겹쳐진 이곳은, 대한민국 영화· 드라마 감독들의 카메라가 가장 먼저 렌즈를 맞추는 ‘살아 숨 쉬는 야외 세트장’이다.

화려한 신작 영화의 스틸 컷처럼, 혹은 빛바랜 흑백 필름처럼, 군산의 거리는 우리를 스크린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 옛 군산세관 & 내항 : 아픈 역사와 낭만의 연안 도보길

붉은 벽돌의 이국적인 자태가 서해의 해풍을 맞으며 묵묵히 서 있다.

사적 제545호 옛 군산세관. 대한제국의 황혼기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일제가 조선의 쌀과 자원을 어떻게 약탈해 갔는지 지켜본 가장 솔직하고 아픈 목격자다.

세관을 지나 내항으로 발길을 옮기면 서해안 특유의 거친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잔교가 물결에 따라 아스라이 흔들린다.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2011)를 비롯한 수많은 시대극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다 위를 떠있는 철제 부두는 쌀을 수탈당하던 민족의 애환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서해 노을과 어우러져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낭만을 자아낸다.

이곳이 깊은 건축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면, 그 뒤편으로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세관을 둘러본 후 발길이 닿는 ‘카페 정담’은 고즈넉한 근대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여행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기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아울러 군산 내항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식의 즐거움, 즉 군산의 개성 넘치는 로컬 맛집과 먹방여행은 여행의 허기를 달래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생생한 추억을 선물한다.

특히 이곳 골목 구석구석에서는 군산의 아픈 역사를 문화와 예술로 치유하고자 시민들의 뜨거운 정성과 노력으로 탄생한 지역 대표 캐릭터 ‘먹방이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시민 중심의 펀드 조성과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탄생한 '먹방이’는, 과거 군산이 겪었던 쌀 수탈의 아픈 역사 속 ‘미곡항(米穀港)’의 기억을 위트 있게 재해석하여 탄생했다. 단순히 관 주도의 홍보를 넘어,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모으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낸 토종 캐릭터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귀여운 미식가 강아지 모습의 ‘먹방이’가 골목마다 여행자를 반겨주며, 무겁기만 할 수 있는 근대 역사 탐방 길에 산뜻한 활력과 따뜻한 미소를 더해준다.

# 해망굴 : 스크린이 품은 애틋한 온기와 서늘한 빛

해망굴/사진=군산시 제공
해망굴/사진=군산시 제공

도심의 분주함을 피해 조금 더 깊숙한 골목으로 스며들면, 군산의 환상적인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해망굴의 빛과 그림자: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당도한 해망굴. 일제강점기 수산물과 인력을 수송하기 위해 월명산 자락을 뚫어 만든 이 반원형 인공 터널은 영화 <열혈남아>를 비롯한 수많은 누아르와 드라마의 단골 로케이션이다. 축축한 콘크리트 벽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터널 끝 반대편 세상에서 비쳐 오는 한 줄기 빛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시차의 문처럼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여행자 팁 : 시간 여행자의 카메라

원도심 군산의 풍경은 단순히 ‘옛것을 보존한 박물관’이 아니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수십 년 전의 누군가가 흘렸을 눈물과 웃음의 파편을 주워 담게 된다.

이번 주말, 스마트폰의 알림 잠시 꺼두고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 고쳐 메어보자. 스크린 속 그늘과 눈부신 햇살이 공존하는 도시, 군산이 당신을 향해 조용히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고 있으니.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