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떠날 때마다 많이 듣는 말이 있다.
“혼자 여행하면 안 무서워? 심심하지 않아?”
이런 질문들은 참 난감하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내 혼자 여행 경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럽에서 어학연수 하던 시절 왕복 비행기 표 60,000원에 혹해 무작정 스페인 여행을 떠난 것이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어느새 나는 혼자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남들은 보통 혼자 여행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루 종일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진을 찍는 여행. 물론 혼자만의 시간과 생각이 필요해 떠난 여행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여행은 조금 다르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 Just say hi! – 호스텔에서 친구 사귀기
혼자 여행을 떠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숙소를 호스텔로 잡는 것이다. 특히 공용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더 좋다.
일단 호스텔에 도착해 간단히 짐을 풀고, 방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Where are you from?”을 몇 번 남발하다 보면 어느새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한 명쯤 생긴다.
호스텔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많고, 대부분 여행 중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말을 섞을 수 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한 첫날, 밤 8시쯤 호스텔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방문을 열자마자 룸메이트 두 명을 만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됐다.
저녁 메뉴는 페루에서 유명한 치차론 샌드위치(Pan con Chicharrón). 바삭하게 튀긴 두툼한 돼지고기와 고구마, 양파 살사를 빵 사이에 넣어 먹는 페루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익숙한 맛이면서도 고구마의 달콤한
맛이 매력적인 샌드위치였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들은 나에게 다음 날 일정을 물었다. 나는 큰 계획은 없지만 페루에서 서핑이 유명하다길래 한번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한 명이 크게 반응했다. “오, 나도 서핑 좋아해. 우리 같이 하러 갈래?”
옆에 있던 다른 한 명도 말했다. “나는 서핑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같이 하자!”
그렇게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다음 날 서핑을 하러 가기로 했다.
# 모험과 무모함은 한 끗 차이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상하게 용감해진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도 “뭐, 한번 해보지” 하게 된다.
그렇게 다음 날 룸메이트들과 서핑을 하러 간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서핑이 처음인 Mike는 강습을 받기로 했고, 서핑 경력이 많은 Lee는 로컬 강사 없이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서핑을 몇 번 해본 적은 있지만 처음 보는 바다에서 혼자 서핑을 할 만큼의 실력은 안 됐다. 그렇다고 강습을 받기에는 레벨에 맞는 강습을 받아야 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결국 Lee와 함께 강사 없이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날씨는 흐렸고 조류도 꽤 셌다. 그래도 Lee는 좋은 파도가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 신호를 주었고, 몇 번의 라이딩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아침도 거르고 비 오는 바다에 들어온 터라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평소보다 크고 여러 개의 파도가 연달아 들어오는 세트(set waves)가 들어왔고, 우리는 파도를 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수상 레스토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Lee는 나에게 레스토랑에서 멀어지도록 패들을 하라고 했다. 이미 지친 팔로 꾸역꾸역 패들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그가 외쳤다.
“나 보드를 잃어버렸어!”
보드와 서퍼를 연결해주는 리쉬 코드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보드를 잃어버렸다. 결국 그는 헤엄쳐서 내 보드까지 왔다.
그때서야 우리는 알아챘다. 우리가 수상 레스토랑 아래 돌기둥 바로 앞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돌기둥 아래에 갇히게 되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우리는 돌기둥에 정신없이 부딪혔다. “침착해. 괜찮아. 패닉 오지 말고 그냥 보드 꽉 잡고 있어.” Lee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했다.
몇 번이나 돌기둥에 부딪히고 나서야 Lee는 파도가 빠져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나를 돌기둥 밖으로 밀어줬고, 나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침 우리를 발견한 로컬 서퍼가 잃어버린 보드까지 찾아줬고,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평소보다 용감해질 때가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해보지 뭐.’ 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험과 무모함은 한 끗 차이다.
특히 서핑이나 트레킹처럼 안전과 관련된 활동은 현지 강사나 가이드와 함께하는 것을 추천한다. 여행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살아서 돌아와야 하니까.
# 혼자라고 해서 혼자 놀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한 도시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이 몇 주 뒤 전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페루에서 혼자 여행을 하던 어느 날, SNS에 페루를 언급하며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너 쿠스코(페루의 한 도시)에 있어? 나도 내일 쿠스코에 도착해!”
그는 카르타헤나 편에서 언급했던 홍콩계 영국인 친구, Vitor였다. 그렇게 우리는 두달만에 쿠스코에서 다시 만났다.
혼자였다면 아마 가격을 보고 지나쳤을 것 같은 고급스러운 스테이크 집에 함께 가 저녁을 먹었다.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여행을 했는지, 또 어디로 떠날 예정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상하게 빨리 가까워진다.
평소라면 며칠, 몇 주가 걸렸을 관계가 여행에서는 하루 만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같이 여행을 하고, 어느 순간에는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페루에 있는 내내 고산병 때문에 꽤나 힘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몸에 힘도 없어서 여행을 즐긴다기보다는 하루하루 버티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결국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한식당을 찾게 됐다. 한식을 먹으면 그래도 좀 기운이 나지 않을까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한국인 어른들이 단체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남미 패키지 여행을 오신 분들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드렸고, 그중 한 부부가 내 테이블에 함께 앉게 됐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두 분 역시 남미 패키지 투어 중이셨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가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두 분은 아들들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들들도 젊었을 때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그때마다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도 여행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젊은 청년을 만나면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어요.”
그날 먹은 김치찌개가 특별히 맛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날 내가 정말 지쳐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 한 끼가 몸보다 마음을 먼저 따뜻하게 해줬다.
돌이켜보면 혼자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가끔은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 생긴다.
평소라면 절대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여행과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을 잠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혼자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혼자 떠났지만, 혼자 여행한 적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