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및 군인… 김재주 전 춘천지방법원장‧ 심승섭 예비역 대장
기타… 화가 심상윤‧ 황현택 전 교장‧ 조부철 전시의원
나포는 다른 면지역에 비해 인물군이 적은 편이다.
지역적으로 군산 시내권과 떨어져 있는데다 과거 임피현의 변방이라는 지역적인 특성과도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독자적인 면으로 승격되었고 행정구역 개편과정에서 군산과 이웃 익산지역으로 흩어진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객주가 있을 정도로 나름의 지역 상권이 컸던 나포이지만 금강의 뱃길이 폐쇄되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지역적인 불리함에도 알려진 인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인물로는 애국지사 심재순 선생(1899~ 1939)과 해방공간에서 서울과 군산지역에서 언론사들을 창간한 김종량(1962 작고), 화가 심상윤(1877~1948), 일제강점기 육영사업가 김호겸 선생(1889~ 1948) 등이 있다.
# 일제강점기 및 해방공간의 지사들… 심재순 애국지사, 언론인 김종량 등
ㆍ애국지사 심재순 선생
나포면 부곡리 출신 심재순 선생은 임피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영명학교(군산제일고 전신)를 중퇴했다.
이후 경성부기학교를 다니다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인쇄소 등을 전전했다. 일본에서 일하던 중 1927년 11월 말 옥구군의 이엽사 농장의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항일의식 및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격문을 작성하고 300매를 인쇄, 소작인들에게 투쟁할 호소했다. 이 격문을 인쇄해 집안 심호택과 신현국, 심상호, 황봉규 등에게 발송했고 이를 신현국이 농민들에게 배부했다.
또 1928년 1월에는 도쿄에서 고향사람 김병우에게 신간회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독려하는 한편 항일운동의 방법론을 제시한 문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친이 별세하자 귀향했다가 체포돼 1년간 옥고를 치렀고 다음 해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출옥 후 1939년 9월1일 고향에서 별세했다.
2005년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ㆍ김호겸(1889~ 1948)
충남 서천군 기산면 출신인 김호겸은 일제강점기에 나포면 원서포리로 이주한 천석꾼 지주로 일제강점기에 군산 지역민 구휼과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이 시기에 건축한 그의 집이 오늘날의 김준규 고택이다.
1948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역사회에 봉사했다. 한국전쟁 때 주민들에게 원한을 산 지역의 지주들은 죽임을 당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지만 김호겸과 그의 식솔, 그의 재산은 온전했다.
성산초교(당시 성산공립보통학교 1923년 6월 개교)와 나포초교(당시 나포공립보통학교 1935년 4월 개교)에 풍금을 기증하는 등 육영사업에 앞장서 인재양성에 앞장섰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가 중일전쟁을 위해 조선의 공출미 수탈에 혈안이 되자 지주 계급들에 대한 압박 강도가 높아졌다. 지주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양식 외에는 식량을 전부 공출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친일이 아닌 자에게는 더욱 엄격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벌여놓은 지역민들에 대한 교육, 구제, 적선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해 일본인에게 미움을 사 고초를 겪었단다.
한편 김호겸의 자손들은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재주 춘천지방법원장(사법과 2회) 등 법조인과 병원장, 교수 등 사회 각 분야에 인재들을 배출했다.
ㆍ언론인 김종량(1962년 작고)
나포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했다. 일본 광도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현대양식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떨쳤고 해방 후 건축업에서 언론인으로 전향했다.
서울에서 한성일보와 세계일보 등을 창간하고 신문사 전문경영인의 길로 들어섰다. 1947년 군산으로 낙향, 일간지 군산신문을 창간했다. 오늘날의 군산우체국 뒤에 사옥을 둔 군산신문은 타블로이드판 4면으로 발행했고 취재차량으로 지프 차도 한 대 보유했을 뿐 아니라 기자 공채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선도적인 언론사였다.
법원과 시청 등에 출입기자제도를 도입했고 창간기념으로 제1회 남녀문예현상공모행사를 개최했다. 특히 제1회 현상공모에는 소설가 채만식 선생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을 영문으로 작성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동산학원 이사장을 지냈던 그는 1962년 2월 뇌일혈로 사망했는데 군산에서 보기드물게 학교장으로 영결식을 치렀단다.
ㆍ가석 심상윤(1877~1948)
가석 심상윤(1877~1948)은 나포 출신의 서화가. 초서에 능했던 심상윤(沈相允)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서예가로 1878년(고종 15년) 나포면 부곡리(富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윤필(允弼)이고, 호는 가석(可石)이다. 세종의 장인인 안효공 심온(沈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심기택(沈基澤)이다. 벼슬은 종사랑 참봉(參奉)을 지냈다. 심상윤은 박학다식하고 필법이 뛰어났으며, 석봉체와 전서(篆書)로 유명했다. 옥구와 군산 일대에 병풍과 비문, 현판의 편액이 많이 남아 있다.
# 해방 후 나포출신 인물
ㆍ심승섭 전해군참모총장
나포 출신인 심승섭(62) 전 해군참모총장은 군산고와 해군사관학교(39기)를 졸업한 뒤 해군정보작전참모부장, 1함대사령관 등을 역임해 합동 및 해상작전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9월 중장으로 진급한 지 약 1년 만에 대장으로 파격 진급한 후 2018년 제33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됐다. 2020년 대장으로 예편한 후 세종대 공과대학 교수로 부임했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주호주대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신을 해군참모총장으로 발탁했던 문재인 정부의 국방정책을 비판한 뒤 윤석열 정부에 합류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ㆍ황현택 전 교장
황현택 전교장은 임피중과 군산고, 전주교육대를 졸업했다. 그는 교직생황을 하면서 1991년 동화 ‘바다소녀의 꿈’으로 등단, 2003년에는 표현문학 ‘시’ 당선했다.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전북예술문학 도지사상, 군산시민의장, 전북하림문학상, 전북해양문학상, 전북아동문학상, 대한민국지역사회공헌대상, 교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군산신흥초 교장을 지냈었다.
ㆍ기타 인물
조부철 전시의원은 과거 나포농협조합장을 지낸 뒤 군산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 및 부의장 등을 거쳤다
조 전의원의 친형인 조부광 칼럼니스트는 호원대· 군산대 강사 및 부광종합건설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오래전에 무소속으로 군산시장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한편 임피면의 시리즈에서 다루지 못한 분이 한글학자 무돌 김선기 선생(1907~ 92)이다.
임피면 읍내리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문교부 차관, 한글학회 이사 등을 역임한 언어학자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원으로 활동했고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1937년 영국으로 유학, 런던칼리지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돼 연희전문에서 해직됐다. 강제징용돼 북한의 탄광촌에서 일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1946년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복직한 뒤 연대 문과대학장 서리를 역임했다. 4년 뒤 서울대 문리과대학(언어학과)로 옮겨가 학과의 기틀을 잡았다.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활동했을 뿐 아니라 한국언어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8년 문교부 차관 취임으로 잠시 학계를 떠났다. 1960년 5월 관직에서 물러나 농장을 경영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1963년 자유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후 명지대학원장을 역임하다가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되어 1988년까지 강단에 섰다.
명지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1975)를 받은 그는 1978년에는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으며, 한글날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