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잔소리를 달고 사는 편이었다.
“몸 좀 가만히 둬라.”
“걸을 때 춤 좀 추지 마.”
그렇다. 난 흥이 많다. 음악이 한 번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신나는 힙합, 진득한 재즈, 리듬 앤 블루스 등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그저 내 귀에 좋은 리듬이 들려오면 내 몸은 알아서 흔들린다. 마치 ‘생각’보다 ‘반응’이 먼저인 사람처럼. 파나마에 온 뒤, 이 성향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어느 날 퇴근길, 매일 지나치던 복합 터미널 중앙에서 사람들 틈 사이로 처음 듣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아에에ㅡ오오ㅡ”
타잔의 ‘아아아ㅡ’ 소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리듬감 있고 길게 끌리는 소리였다. 내 발은 어느새 그쪽으로 향해 있었고,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자 형형색색의 치마가 한 번에 시야를 채웠다. 바로 파나마의 전통 음악, 탐보리토(Tamborito) 공연이었다.
# 파나마의 심장 박동, 탐보리토(Tamborito)
탐보리토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유럽풍 멜로디와 아프리카계 리듬이 섞여 만들어진, 파나마 사람들의 대표 전통 음악이다. 그래서인지, 춤도 딱 ‘전통춤’이라기보다 유럽식 포크댄스와 아프리카식 동작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느낌이었다. 여자들은 넓은 스커트를 반원 모양으로 펼쳐 돌리고, 파나마니안 모자를 쓴 남자들은 리듬에 맞춰 스텝과 손짓으로 그 주변을 맴돈다. 북이 중심이 되어 규칙적인 박자를 쌓아 올리면, 다른 퍼커션들이 촘촘하게 그 사이를 채운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살로마(Saloma)였다. 살로마는 파나마 농민들 고유의 발성 또는 문화적 표현으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노동에 활력을 주기 위해 사용한다. 단어 없이 길고 멜로디컬하게 지르는 독특한 외침. 나를 멈춰 세운 바로 그 소리였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노래와 외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음성. 난생 처음 듣는 유형의 음악이었기에,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뭐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울림이었다.
그 소리에 매료되어 한참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핸드폰을 들어 영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면 속 남성 무용수가 갑자기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는 거다. 화면으로 보고 있던 탓에 현실감이 없었는데, 그 영상 속 사람이 진짜로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당황해서 영상을 끄자마자, 이미 나는 데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무용수 손에 의지한 채 조심스레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날은 그저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그 평범함을 몇 초 만에 축제로 바꿔 놓는 힘, 그게 파나마의 탐보리토였다.
# 저항의 리듬으로 춤추는 콩고(Congo)
기관 80주년 행사가 있어 전 직원이 전부 호출되었던 날이었다. 쨍한 햇볕 아래, 우리는 줄지어 서서 조금은 지루한 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때 시야 한쪽에 낯익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옷차림의 남녀 무용수들이 들어왔다. 스커트는 훨씬 화려했고, 색감은 선명했고, 남자 무용수의 복장은… 솔직히 처음엔 콘셉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각설이를 연상시키는, 천들을 무질서하게 붙여놓은 의상이었다.
그 순간, 내 옆의 동료가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며 속삭였다. “앞쪽에 서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새로운 것이라면 일단 재밌어 하는 외국인 인턴(나)에게 그 말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금세 경고의 의미를 알게 됐다. 무용수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앞쪽 직원들을 하나 둘 무대로 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데려가는 것도 아니고, 빠르고 경쾌한 북 소리에 맞춰 발을 굴리고 허리를 흔들며, 아주 적극적으로. 그제야 왜 앞에 서지 말라는 건지 바로 이해했다. 이건 탐보리토가 아니라, 콩고(Congo)였다.
콩고는 탐보리토와 달랐다. 훨씬 거칠고, 리듬은 직진적이며, 춤은 관객과 무용수의 경계를 없애 버린다. 북소리가 시작되는 순간, 무대가 아니라 주변 전체가 흔들리는 축제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이 춤은 흑인 아프로-파나마인 공동체의 문화인데, 그 중에서도 노예 신분에서 도망쳐 저항했던 사람들의 후손에게서 이어져 내려왔다. 왕과 천사, 악마가 등장해 선과 악, 노예와 스페인 지배자 사이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의식과 축제, 연극적 요소가 얽혀 있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무용수들의 의상도 강렬하다. 붉고 파란 천을 겹겹이 두르거나, 헝겊 조각을 이어 붙인 옷을 입는다. 처음 보면 낯설고 거칠게 느껴지는데, 그 모습은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려한 깃털, 과장된 장신구, 일부러 흐트러뜨린 옷차림이 모두 그 역사와 연결된다.
콩고 춤은 힘을 숨기지 않는다. 땅을 강하게 밟아 울림을 만들고, 팔을 크게 휘저으며 리듬을 부순다. 무용수들은 관객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춤이 시작되면, 누구든 손을 잡아 자기들 사이로 끌어들인다. 일종의 초대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나도 그들 사이로 끌려 들어갔던 것처럼.
파나마에서는 음악이 나오면 다들 자기 자리에서 일단 움직인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 나라의 음악을 틀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나마는 그 반응이 참 솔직하고, 참 힘이 있다. 어느새 그 흐름 속에서 춤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곳의 리듬에 스며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