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문화공간으로 이름난 군산 시민회관 제1전시실이 석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두 전직 대통령을 애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객들의 향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가 설치된 것.
22일 오후 김 전 대통령 분향소가 있는 시민 문화회관 제1전시실을 찾았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해마다 작품 전시회를 열어 친근감이 가는 장소인데, 존경하는 대통령 분향소로 변해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100일도 안 되어 두 번이나···.
분향소에는 전북도지사, 군산 시장, 시의장 등 기관 및 단체장들이 보낸 조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 '군산시 장애인 연합회장'이 보낸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장애인 복지에 얼마나 힘을 기울였는지 설명하는 것 같아서였다.
분향소에 들어서니 차분하고 엄숙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면 있는 얼굴도 여럿 보여 어색한 감이 덜했다. 시간에 쫓겨 안부를 묻고 너스레를 떨 시간도 없이 조문객을 만나보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보다 흥분과 노여움이 덜한 것 같았다.
조문객 1
자매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기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중 나이가 가장 많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박연순 63세)에게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아는 대로 한마디 해달라고 당부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위혀서 일생동안 몸을 바치셨잖아요. 그런 양반이 마지막 가시니까 너무 서운해서 왔어요. 그 얘기를 애들 한티도 많이 해줍니다. 매사에 정직하고 평생을 몸바친 대통령 본을 받으라고요. 그리고 그분을 보믄 너무 좋고 감동스러워요."
옆에 있던 동생(55세)은 직장(법무사무소)에 다닐 때 사무소 소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군산에 올 때마다 나가서 박수를 치고 고함을 지르고 와서는 악수도 하고 큰소리도 치고 왔다고 자랑했다면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조문객 2
급우들과 분향 마치고 나오는 이연경(여고 2학년) 학생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제부터 알기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선거 벽보를 보고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하는 얘기를 듣고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혹시 밉게 보였다거나 감동받았던 적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미워 보인 적은 없고, 어렸을 때라서 의미는 잘 몰랐지만, 북한 평양에서 김정일하고 남북정상회담 하는 것을 TV로 보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전율을 느꼈다며 수줍게 웃었다.
조문객 3
손자 손목을 잡고 나오는 할아버지(76)를 잠시 만났다. 3·1절에는 태극기, 광복절에는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에서 고성 지르는 할아버지들과 비교되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느냐고 묻자, 일본에서 납치되었을 때(1973년 8월)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관심을 두게 되었고 하나라도 알고자 했다고 말했다.
"손자를 데리고 오신 걸 보면 뭔가 가르쳐주려고 오신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제일 존경하는 양반이었는데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며 “노벨평화상도 타고 노력도 하고 대한민국의 거목”이라고 부연했다.
# 한 철에 두 전직 대통령 조문은 불행중 불행
이유야 어떻든 여름 한 철에 민주화의 기틀을 다진 전직 대통령 두 분을 조문한다는 것은 불행 중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두 분의 죽음이 조·중·동과 손잡고 전직 대통령의 단골 삼계탕집까지 세무조사 벌였던 이명박 정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더욱 걱정되고 분노하게 한다.
그래도 시민들은 차분한 가운데 분향을 하며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있었는데, 고인이 워낙 연로하고 1개월 넘게 병석에 누워있어서 그런지 서거 소식을 듣고 놀랐고 황망하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차분했고 노 전 대통령 때처럼 눈물을 보이는 시민도 많지 않았다.
군산시청 직원들과 의회 의원들, 민주당 당직자 등이 돌아가면서 도우미 역할도 하고 조문객들을 받고 있었는데, 19일 오전 8시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 22일 오후 5시 현재 3,000명 가까운 시민과 학생들이 분향을 마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검은 양복을 입고 조문객을 받던 군산시 의회 이래범 의장은 23일 오후 2시 서울 국회 앞마당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군산에서 29명이 올라갈 것이라며 발인식 마치는 오후 5시까지는 분향소를 개방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