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4월 23일)은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가슴도 콩닥콩닥 뛰었다. <오마이뉴스> 제8기 시민기자 기초강좌 모집에 등록할 것이냐, 김대중 전 대통령이 14년 만에 고향 하의도 방문한다는 데, 따라나설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전직 대통령 취재 택하고부터 뛰기 시작한 가슴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40% 밑도는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다. 하지만,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으며, 철벽처럼 꽉 막혔던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전직 대통령 동행취재는 영광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군산 구도심권에 있던 기차역이 금강하굿둑 부근으로 이전하고 처음 이용하는 날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예매한 KTX 고속열차표(익산-함평)에 5호차로 표시되어 있었다. 순간 '출발 전부터 행운이 따라주는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대통령 일행은 6호 차에 탑승하고 있어서였다. 열차(군산-익산)를 타고 가면서도 1시간 후쯤 만날 대통령 내외 모습이 그려졌다 사라지곤 하였다.
# 익산역에서
오전 10시 13분 군산역을 출발한 기차는 10시 40분쯤 익산역에 도착했다. 함평행 고속열차 출발 시각이 11시 5분이어서 기다리는 동안 가져간 책 꺼내 읽었다. 하지만,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
김대중(DJ) 대통령 일행이 탑승한 열차는 정시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기차에 올랐다. 좌석에 앉아 윤철구 비서관에게 전화했더니 반가워하며 5호 차로 오시라 했다.
흥분된 가슴을 쓸어내리며 5호 차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객실 중간쯤 좌석에 다정하게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2005년 어버이날과 신년 단배식, 환영 행사 등에서 몇 차례 뵌 적은 있지만, 떨리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다.
주치의와 박지원 의원, 김옥두 전 의원을 비롯한 비서관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객실 분위기는 차분했으나 한가롭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윤 비서관은 중국인민 외교학회 초청으로 5월 초 중국을 방문, 베이징대학에서 강연하게 될 김 전 대통령의 신변문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 비서관 옆에 앉아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명함도 주고받았다. 윤 비서관에게 "대통령님 관련 기사는 쟁쟁한 기자들이 많아 쓸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 요즘엔 기억력도 전만 못한 것 같아 고민"이라 했더니 "기사를 읽어봤는데 작은 일 하나도 자세히 기억하고 계시던데요"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 기사를 대부분 읽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서였다.
윤 비서관이 "대통령님 뵈었나요?“라고 묻기에 잠시 고개만 숙였다고 했더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윤 비서관은 대통령 내외에게 다가가 후광마을 다음카페 운영자이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조종안 선생이라 소개했다. 표정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후 짧은 대화와 함께 대통령의 육성 메시지까지 녹음기에 담을 수 있었다.
"여러분께서 내가 어디를 갈 때나, 또 평소에도 나를 잊지 않고 항상 성원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그러한 성원으로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모두가 건강하시고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짧은 멘트이지만, 카페 회원들에게 존경하는 대통령 육성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었고, 중요한 목적 하나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만족스러웠다. 대통령의 육성 메시지와 1박 2일 일정을 사진과 글로 남기려고 무리해 가며 나섰기 때문이었다.
박지원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휴대폰으로 들어온 뉴스를 설명했다. 그는 “삼풍백화점 무너진 것은 박정희 책임, 성수대교 가라앉은 것은 전두환 책임, 외환위기의 65%는 김대중 책임이라고 우기는 YS는 무척 편하게 사는 양반”이라며 대변인 시절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라고 따졌던 일화를 얘기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 나비의 고장 함평에서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감상하다 문득 '정들자, 이별' 글귀가 떠올랐다. 긴장이 풀리고 웃기도 하면서 대화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곧 함평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익산-함평은 1시간 5분가량 소요 됐는데, 고속으로 질주하는 열차가 원망스러웠다.
함평역에는 박준영 전남 지사를 비롯해 지역 기관장들과 군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대통령 내외를 향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목포의 눈물>과 <고향의 봄>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함평역 광장에서 간단한 환영식이 열렸다. 건물 곳곳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녹색의 땅 전남'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민주당 당원으로 보이는 주민들은 각종 환영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열렬히 환영했다.
마이크를 잡은 대통령은 약간 쉰 목소리로 "저는 일생동안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 덕택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약 7분 동안 하였다.
환영식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 남도의 토속 음식인 짱뚱어탕 먹었다.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 후 대통령 일행은 나비축제 열리는 함평엑스포공원으로 이동했다. 대통령 부부는 이석형 함평군수 안내로 친환경농업 전시관, 다육식물관, 국제 곤충관 등을 둘러보고 나비곤충생태관 앞 화단에 21년생 팽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 했다.
함평 나비대축제(기간 4월 24일~5월 10일, 주제 ‘나비=희망’)는 생태환경에 대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행사로 알려진다. 특히 세계 각국의 화려한 나비와 신비한 곤충,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생태 현장을 돌아볼 수 있어 곤충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생태 현장과 전시관을 돌아본 대통령은 어린이들과 함께 나비 날리기도 하고, 구경 나온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이어 대통령은 "축제장이 매우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꽃들이 참 아름답다. 이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성과일 것"이라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 목포에서
나비 축제장을 둘러본 대통령은 오후 3시쯤 정치적 고향인 목포로 향했다. 필자는 기자 전용 버스에 동승해서 이동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무안’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순간 1971년 5월 총선 앞두고 지원 유세 다니던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도로(목포-무안)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함평에서 목포 시내로 진입하기까지는 30분 남짓 소요됐다. 만찬 열리는 신안비치호텔로 이동하는 거리 양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목포방문 환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어 목포 시민들의 환영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했다.
대통령 일행은 오후 4시 못 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주변 경관이 아늑하고 예스럽게 다가왔다. 만찬은 6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5시 조금 지나면서 만찬에 참석할 환영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는 김홍업 전 의원 얼굴도 보였다. 이후 호텔 로비는 환영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만찬에 앞서 목포 시립국악원 꿈나무들의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 목포대 음악과 김철웅 교수의 <청산에 살리라>와 가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이중창, 그리고 시립합창단은 <그리운 금강산>, <만남>, <고향의 봄> 등을 불러 분위기를 무르익게 했다. 이어 <신라의 달밤>을 <목포의 달밤>으로 개사해서 불러 박수를 받았고, 민족의 한이 서린 <목포의 눈물>을 환영객들과의 합창으로 축하공연 피날레를 장식했다.
공연 끝나고 정종득 목포시장의 환영사와 대통령의 고향 방문에 대한 인사가 있었는데, 70년대 유신 정부 시절과 80년대 신군부 시절 온갖 고초를 당했던 일들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환호와 함께 우렁찬 박수가 터지기도 했다.
만찬은 8시 조금 넘어 끝났고, 숙소로 이동하는 대통령 일행을 따라갔으나 여객선터미널 부근에서 하룻밤 묵는 게 비용도 적게 들고 몸도 편할 것 같았다. 해서 윤 비서관에게 내일 아침 8시 50분까지 터미널에 도착하겠다고 말하고, 6년 전 하의도 답사 때 묵었던 여관을 찾아갔다.
"아주머니, 하룻밤 자는 디 얼만가요?"
"맻 분인디요?"
"저 혼잡니다."
"혼자라, 그라믄 3만5천언만 주씨요. 방이랑은 깨끗항께."
"하이고, 너무 비싸네요. 6년 전 하의도 들어갈 때도 이 여관에서 묵었는디, 좋아서 또 왔으니 3만 원만 합시다."
"6년 전 하의도 갈 때도 왔었다고라. 음~ 그르믄 그렇게 하씨요."
"그럼 내일 아침 7시 30분에 깨워주셔야 합니다. 컴퓨터 인터넷도 할 수 있지요?"
"컴퓨터 있는 방은 4만언씩 받는디라, 그냥 3만 5천언만 주씨요."
"아이참 아주머니도, 저 아래 여인숙 간판 보고도 이곳 찾아왔으니, 컴퓨터 있는 방에서 3만 원에 하룻밤 묶읍시다."
"아 그릉께 4만언씩 받는디 5천언 깎아준다고 안 허요."
"......"
아주머니의 친절을 무시할 수 없어 숙박료 치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컴퓨터가 구형이라 화면이 느리게 뜨고, 사진 한 장 편하게 공유할 수 없었다. 나갈까도 생각해 봤으나, 내일을 위해 일찍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