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고 이인식 선생은?
1901년 임피면 출신인 이인식 선생은 만석 부호였던 이태하 씨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한 그는 임피초등학교를 거쳐 1916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했다.
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원칙을 선포하자 이인식은 조국독립 쟁취를 위해 연희전문 김원벽, 보성전문의 강기덕, 경성의학전문의 한위건 등과 3·1 독립만세 주체인 손병희 선생 등 33인 휘하에서 미국영사관 연락담당을 맡는다.
1919년 3월1일 탑공공원에서 33인의 3.1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자 시위군중의 선봉에 서서 시위 군중을 미국영사관 쪽으로 유도했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그는 전 재산을 처분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전달했으며 해방 후에는 교육자로서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그는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 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63년 3월 25일 전라북도 교육위원 재직 중 별세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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