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90] 법조타운(1)…전주지법 군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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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90] 법조타운(1)…전주지법 군산지원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12.01 16:01
  • 기사수정 2023-04-1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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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촌동 현청사 96년 12월 이전… 약 100년간의 월명동 시대 마감
군산· 익산시 재판관할구역…옛 관사 2018년 등록문화재 지정
민변 창립 김종훈 변호사·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 김정원 헌재 사무차장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사진=투데이 군산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사진=투데이 군산

전주지법 군산지원과 전주지검 군산지청 등으로 접근하려면 번영로쪽과 군산시청 등과 연결되는 법원로로 들어서야 가능하다.

조촌동과 구암동 등을 끼고 있는 군봉공원과 장군봉은 풍수지리학적인 요인인지 몰라도 다른 지역 법조타운처럼 어김없이 법조타운이 들어서 있다.

야산들의 군집지역인 ‘군산(群山)’에 무슨 명당일까 싶지만 월명동에서 조촌동으로 이전한 후 이곳을 거쳐간 판사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군산에 사법기관들이 잇따라 들어선 것은 격동기인 조선말 갑오경장과 관련이 깊다. 근대적인 사법체계가 어느 정도 완비된 이후 법원과 검찰청, 경찰서 등이 하나씩 둘씩 선보였다.

군산시 법원로 68 (조촌동)에 있는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원래 월명동에 위치해 있다가 군산시의 도시계획이 본격화되면서 1996년 행정타운이 새로 조성됐다. 군산시청 등이 이전하면서 군산지원과 군산지청 등도 자연스럽게 조촌동으로 옮겨가 신법조타운을 형성하게 된 것.

조촌동 880번지에 위치한 군산지원은 지하1층, 지상 5층의 신청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고 군산시와 익산시를 재판관할구역으로 두고 있다.

전주재판소는 1895년 5월10일 시작됐다가 4년 후에는 전라북도 재판소, 광주지법 재판소 전주구 재판소(1908년 1월 1일), 광주지법 전주지청(1912년4월1일), 전주지법(1922년 7월1일), 전주지방심리원(1947년 1월1일) 등으로 변모를 거듭했다.

정부수립 이후 전주지법(1948년 6월 1일)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전주지법 군산지원(1981년 2월1일)으로 안착한다.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 월명동 청사시대는 군산의 근현대사의 애환을 거쳤고 군산의 영광이 어느 정도 유지되던 시기였다. 옛 건물을 어느 새롭게 리모델링한 뒤 월명동주민센터와 유치원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월명동에 위치한 군산지원의 구 관사가 2018년 등록문화재 제726호로 지정됐다.

군산출신 법조인들… 대법관· 유명 법조인 등의 산실

방극성 전 광주고법원장· 이기광 전 울산지법원장 등 

풍요와 인물의 고장이자 과거 근무를 선호했던 군산지원을 거쳐간 인사들 중 전국적으로 알려진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이들이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군산출신으로 우리법연구회와 민변 창립멤버인 김종훈 변호사·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차장, 방극성 전 광주고법원장· 이기광 전 울산지법원장 문용선 전 서울북부법원장 등이 그들이다.

ㆍ전주지법 군산지원을 거친 유명법조인들은

과거 군산지원에서 근무한 법조인들의 활약상이 만만치 않는데 이들의 기본 약력을 다뤄봤다.

김능환(1951년 10월 23일 ~ )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난 대표 법조인.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제17회)에 합격해 전주지법과 군산지원(1983년) 등을 거쳐 서울고법 부장판사, 울산지법원장,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퇴임후에 곧바로 부인이 운영하는 동작구의 한 야채가게와 편의점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다음으로 눈길을 끈 인사는 군산이 고향인 김종훈 변호사는 경복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제23회)에 합격,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됐다. 사시 동기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양인석 노무현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 사정비서관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

그는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서울가정법원, 전주지법 군산지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면서 동료 법관 300여명과 함께 1988년에 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인 진보성향의 법조인이다.

특히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과 함께 개혁성향의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만들어 1993년에 사법민주화를 위한 법관회의 설치 등을 요구하는 등 사법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1997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끝으로 퇴임하여 변호사로 개업했다.

김제출신 문용선 전 서울북부지법원장은 남성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제25회 )에 합격했다. 1986년 서울민사지법 판사에 임용되어 광주지법,  서울가정법원, 서울지법 동부지원(현 동부지법) 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에 재직하다가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2000년 7월)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광주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서 근무하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대법관 후보군에 올랐지만 아쉽게 그벽을 넘지 못했다.

1986년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로 근무한 이기광(1955년 ~) 변호사는 울산지법원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향판으로 군산지원장과 전주지법원장, 광주고등법원장을 거친 방극성(1955년 ~ ) 변호사는 1980년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2기를 수료했다. 문재인 전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등과 연수원 동기다.

군산지원을 거친 김정원(1965년 ~)은 현 헌법재판소 사무차장으로 서울 용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제29회)에 합격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등과 광주지법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중 판사를 사직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임용됐다.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선임헌법연구관, 수석부장연구관 등의 보직을 역임한데 이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에 의해 차관급인 헌법재판소 사무차장으로 임명됐다.

한편 필자가 군산에서 언론인으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거친 지원장들이다.

조병훈(30대)·류연만·방극성· 황적화· 손주환· 이상훈· 홍기태· 이창한· 김재영· 정재규· 최인규· 박종택· 송경근 지원장 등이 그들이다.

고향을 지킨 변호사들…

고 김길준 시장· 김귀동· 신문식· 노옥기· 이형로 등

군산출신이거나 군산지원, 또는 군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이들의 활약상도 눈길을 끈다.

이들 중에는 재야변호사이자 국회의원 등을 거친 고 김길준 전 군산시장을 비롯한 김귀동· 신문식· 노옥기· 이형로· 김의종· 조영보 변호사 등이 있다.

군산출신 원로 변호사들은 법조역사를 감안하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필자가 경험한 이중 가장 오랜 법조인이 김길준 전시장(1933~ 2021년)이 아닐까 싶다.

ㆍ김길준 전 군산시장(변호사)

군산 출신인 김 전 시장은 군산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고등고시 사법과(13회)에 합격, 전주지법 판사 등을 지내다 정치인과 변호사 등을 넘나들었다.

무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1984년 조순형 전 의원 등 야당정치인과 함께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에 전격 들어가 군부독재투쟁에 힘을 보탰고 전북과 군산지역의 민주사회를 대표하는 참법조인이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엔 혹독한 군부독재시절에 맞서 학생운동으로 투옥한 지역대학생들을 위해 무료변론 활동은 물론 87년 6월항쟁 등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무소속으로 1981년 11대 총선 때 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서 당선됐고,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민선 1기 군산시장에 당선됐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고배를 마신 뒤 탈당해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선거법 문제로 도중 하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평생 장애로 고통을 받으면서 고시에 합격한 인간승리의 표상이었고 민주화 운동과 정치인, 변호사 등으로 지역사회발전에 앞장서왔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뜨거운 고향 사랑.

군산은 물론 전북 정치인들의 대부분이 고향에서 기반을 닦은 뒤 서울 등지로 이사해 노후를 보낸 것과 달리 고향을 평생 지키면서 변호사로서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온 진정한 애향인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지역인재육성에 헌신했다. 그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개항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사)군산개항100주년 기념장학회를 1999년 6월 설립, 지역인재육성 등에 전심전력해왔다. 정치 일선에 물러난 뒤에는 개항100주년시민장학회의 이사장 등을 맡으면서 지역사랑운동을 실천해왔다.

ㆍ김귀동 변호사

회현 출신인 김 이사장은 용화초, 남성중·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전주와 군산에서 판사로 재직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각종 봉사와 법률전문가로 맹활약해왔다. 또 군산경실련 공동대표와 군산· 익산변호사회장, 남성고 총동창회장, 해병대 출신 전국법조인회장 등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해병대 장교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도, 판사 임명장도 군산 출신 법관 지망생이 첫 테이프를 끊는다. 해병 창설 34년 6개월 만에 예비역 중위(포병)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

해병대 70여 년 역사에서 ‘최초’ 기록을 세 개나 보유(해병 장교로 병역의무를 마친 최초 서울대 법대생 기록 포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기록은 전주지법 군산지원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광복 후 군산 출신 사법고시 합격자는 30여 명. 그중 군산지원 제1호 판사는 1989년 3월에 탄생한다. 그 주인공이 김 변호사다.

전주지법과 군산지원에서 각각 3년씩 근무한 뒤 변호사를 개업한 그는 향리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 향리에서 마무리한 법조인이기도 하다.

원로 변호사 중 한 사람인 신문식(군산고와 전북대를 졸업) 변호사도 1985년 군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매사에 적극적인 그는 휴대폰, 승용차, 컴퓨터 없이 업무를 본다고 해서 ‘3무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다.

이밖에 노옥기 전 군산지청장(전주고 및 고대)을 비롯한 이형로(군산고 및 전북대)· 김의종(전주고 및 성대)· 조영보(중앙고 및 서울대)· 유경재(군산제일고 및 전북대) 변호사 등도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법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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