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잔은 그에게 족하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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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잔은 그에게 족하다 6-6
  • 김선옥
  • 승인 2022.10.14 07:27
  • 기사수정 2022-11-05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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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에 이어) 광재를 대신하여 그를 보고 싶어 했다는 상대와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가 왜 그에게 적의를 품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상대는 광재가 운영했던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광재의 룸메이트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상대의 설명으로 광재는 그와 다르게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커밍아웃을 하고 꿋꿋하게 사회의 시선을 견디며 지낸 모양이었다. 가족의 외면은 당연한 절차였고, 상상할 수 없는 수모도 여러 번 겪었지만 당당한 삶을 산 것 같았다. 광재처럼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이들의 우상이었다니 성공적으로 산 셈이었다.

외견상으로 그는 상대가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뒷자리가 1로 시작되는 주민번호를 갖고 있으며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임을 뒤늦은 고백으로 알았다. 완벽한 여자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한 상대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며 이제 곧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장례식장임에도 불구하고 상기된 얼굴에 약간 흥분된 어조였다. 그는 상대를 피해 사진 속의 광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인 광재는 그가 아는 어떤 여자보다도 출중하게 아름다웠다.

광재가 그를 완전히 포기하고 떠났다고 판단한 것은 오해였다. 그에 대한 광재의 감정은 단순한 게 아니었다. 광재의 휴대전화 단축키 1번이 그의 전화번호라는 것부터가 그러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에게 연락하거나 단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줄곧 살면서 광재는 그에 관한 모든 걸 수집했다. 광재의 룸메이트가 알려 준 정보에 따르면 아이가 어느 유치원에 다니는지, 심지어 그의 아내가 다니는 헤어숍에도 자주 드나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미장원에서 만난 그의 아내와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꿰뚫을 정도로 소상히 알고 있으면서 끝까지 냉담하게 선을 그었던 이유를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해 관심을 끄지 않았다고 했는데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으면서 왜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까? 죽기 전인데 너무 심했던 거 아닌가요? 그렇게 잘 살았으면서 왜 자살을 감행했는지 궁금하네요."

스토커 수준으로 세세한 것을 파악했다던 광재였다. 그런데 왜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않았는지 그는 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연락이 가능했는데 그지없이 독하게 굴었던 속셈이 뭐였는지 의아했다. 차갑게 뿌리친 그에게 정말 화가 나서 그랬던 것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아팠습니다. 위암 말기였어요. 판정을 받고 모든 것을 정리했지요.""

“이렇게 되기까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을 겁니다. 그게 사랑이겠죠. 광재에겐 당신이 늘 우선순위였으니까요. 하지만 난 솔직히 당신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오래오래 아파하길 바랐거든요."

광재는 죽을 때까지 그만을 사랑했다. 그에게 터트리지 못하고 혼자앓은 열병이었다. 그 이외의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없었던 광재가 외

골수였다는 사실은 그도 짐작하고 있었다. 병적인 집착이 부담스러워 벗어나려고 그 역시 결혼을 서둘렀었다. 빠르게 광재를 밀어내고 싶었던 이유가 뭐든 그는 죽은 광재 앞에선 변명할 자격이 없었다.

그는 또 다른 광재가 나오지 않기를 속으로 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광재의 시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 속 광재의 슬픈 눈빛을 견디기 힘들었다.

"한번 오세요. 하늘에서 광재가 좋아할 거예요."

나오는 길에 광재의 룸메이트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광재가 운영했다던 클럽의 명함이었다. 광재의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가 속삭였다.

이제 광재는 죽었고, 그가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소수성애자가 감당해야 할 아픔을 간직하고 살다가 택한 죽음, 스트레스로 인한 암 발병률을 계산하면 그가 짊어져야 할 몫은 꽤 많을 것이었다. 강하다고 치부했으나 죽음 앞에서 광재 역시 그렇지 못함을 입증한 셈이어서 씁쓸했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사회에서 앞으로 어찌 행동해야 할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클럽에 들렀다. 얼마 전까지 광재가 운영했다던 곳이었다. 거기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쭈뼛거리는 그를 친근한 눈빛으로 맞았다. 감정을 공유할 장소를 찾기까지 망설인 시간은 광재의 삶이 대신했다. 광재가 떠난 지금 그는 광야에 버려진 길 잃은 양이 된 기분이었다. 광재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다. 광재가 아닌 누구도 그 역시 지금은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 들렀지만 거기엔 다르게 사는 이들의 삶이 보였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모두 동질의 아픔을 지닌 채 살고 있으므로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내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정과 평온이 그를 맞았다. 평생을 살아도 아내는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추하고 구역질이 난다고 비웃을 아내에게서 그도 이해를 구할 마음이 없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는데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함없이 내일은 올 것이고 그의 삶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내와 그는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끝)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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