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예술문화+] 피카소의 '바이올린과 포도' 그리고 입체파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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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의 예술문화+] 피카소의 '바이올린과 포도' 그리고 입체파 화가
  • 송진희 서해환경 이사
  • 승인 2020.09.15 15:00
  • 기사수정 2021-03-1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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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1881-1973)Violin and Grapes, 1912년작, 뉴욕근대미술관
출처=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1881-1973)Violin and Grapes, 1912년작, 뉴욕근대미술관

 

입체파 즉 큐비즘(Cubism)이란 용어는 조르즈 브라크(George Braque)의 풍경화를 두고 마티스(Henri Matisse)가 입체적 희한함(bizarreries cubique)이라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브라크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대상을 입체적 공간으로 나누어 여러가지 원색을 칠하여 자연을 재구성 하였다.

이들은 이와 같은 실험적인 공간 구성과 대상의 표현 양식에서 시작하여 점차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입체적인 형태 즉 원통형, 입방형, 원추형 등을 선과 면으로 표현하여 하나의 화폭에 질서있게 쌓아올려 입체주의 기법을 발전시켜 나갔다.

입체파로 널리 알려진 스페인 출신의 젊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는 데생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서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아홉 살 되던 해에 파리로 갔는데 그 곳에서 그는 표현주의자들이 즐겨 다루었던 주제인 거지, 방랑아, 서커스의 광대 등을 그렸다.

그러나 여기에 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원시 미술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얼굴이나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 것은 그 이전의 화가들이 행했던 눈에 보이는 인상을 단순화시키는 작업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이전의 화가들은 자연의 형태를 평면적인 패턴으로 단순화시켰다. 그러나 그는 평면성을 피하면서도 사물을 단순하게 그리고 동시에 입체감과 깊이감을 유지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피카소로 하여금 세잔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였다.

한 젊은 화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잔은 자연을 구, 원추, 원통의 견지에서 보라고 충고하였다.

아마도 그는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이같은 기본적인 입체의 형태를 염두에 두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은 이 충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구, 원추, 원통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추구할 가치가 없는 도깨비 불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변해가는 가상적인 인상을 캔버스에 고정시키기를 원치 않는다.'

'세잔처럼 가능한 한 소개가 가진 확고하고 변함없는 모습을 포착하여 그려보자.' 

'우리의 진정한 목표가 어떤 것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가령 우리가 어떤 물건,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생각할 때 신체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과 마음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여거 각도에서 본 바이올린의 형태를 한순간에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사실 그렇게 한다. 그 형태들 가운데 어떤 것은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분명하게 떠오르고 어떤 것은 흐릿하다.

그러나 단 한순간의 스냅 사진이나 꼼꼼하게 묘사된 종래의 그림보다 이상스럽게 뒤죽박죽된 형상들이 실로 존재하는 바이올린을 더 잘 재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피카소의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정물화 같은 작품이 그렸다고 간주된다.

이 작품은 어떤 면으로는 소위 이집트인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원칙이란 사물의 특징적 형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각도에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바이올린의 소용돌이 형태의 머리 부분과 현을 조절하는 나무 못은 우리가 바이올린을 상상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 측변에서 본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한편 공명공은 정면으로 그려져 있다.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의 둥근 테두리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런 악기의 양 옆을 쓰다듬을 때의 느낌을 생각할 때 그러한 곡선 부위가 실제보다 더 구부러져 있는 것처럼 과장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활과 현은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심지어 현은 정면으로 한 번, 끝의 소용돌이 꼴을 향한 것으로 한 번 해서 모두 두 번 나타나기도 한다.

서로 연결 되지 않은 형태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것처럼 보여도 결코 혼잡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얼마간 균등한 요소로 구성하고 있어 화면 전체가 일관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관된 조화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템기둥과 같은 원시미술 작품과 비교될 수 있다.

대상의 형상을 구축하는 이러한 방법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조각들은 서로 연관시킬 수 있으려면 바이올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입체주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입체파 화가들이 기타, 병, 과일 그릇, 때로는 인물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익숙한 소재가 등장해야만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각 부분 사이의 연관을 이해하고 그림 전체를 쉽게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의 미술가들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깊이감을 재현한다는 회화의 본질적인 역설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입체주의는 이러한 역설을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이 역설을 이용하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그들은 감상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캔버스 위에 그려진 평면적인 단편들로부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입체적인 사물을 머리 속에 떠올리는 복잡한 게임을 함께 하도록 감상자들을 초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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