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89] 군산교육지원청과 그 주변들
상태바
[군산을 걷다 #89] 군산교육지원청과 그 주변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11.17 10:05
  • 기사수정 2022-11-17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로- 명산동- 미원동- 조촌동 현청사 시대(40년간) 개막
교육청 출범(1952년)… 옥구/군산교육청 독립(1964년 1월)- 95년 통합
참사랑요양병원/원광효도요양병원… 지역핵심 요양병원 쌍두마차 등장
조촌동 군산교육지원청사가 약 40년간 이곳을 지켜오고 있다./ 사진=투데이군산
조촌동 군산교육지원청사가 약 40년간 이곳을 지켜오고 있다./ 사진=투데이군산

군산동초등학교를 지나면 담장사이에 위치한 곳이 지역교육을 책임지는 군산교육청이다.

군산교육청이 대개의 관공서에서 그러듯 이 자리가 출범했던 것은 아니다. 원도심권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이곳에 자리잡았다.

# 군산교육청 이전 및 변천사… 다양한 교육자치제 경험

군산교육청은 1952년 8월 중앙로1가 3번지에 있는 군산시청의 도서관 건물을 임시 사무실로 정하고 출범했다. 시의회에서 교육위원으로 위원을 선출한 뒤 초대 교육감으로 유종원씨를 간선으로 뽑았다. 도교육위원은 따로 선출하는 형식이었고 당시의 교육감이란 명칭은 오늘날 교육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이른바 교육자치제가 시군까지 시행되는 형태였다.

이 사이에 1955년 2월 시청도서관에서 명산동 4의 5번지로 옮기게 돼 옥구와 군산교육청이 분리될 때까지 두 번째 통합 청사시대를 연 것이다. 집행기관과 달리 의회기능을 하는 도교육위원제는 시행됐고 초대부터 3대까지 당시 정찬홍 동산학원 이사장이 도교육위원으로 활동했다.

교육청은 또 한번의 이전을 했다.

1959년 4월 군산시 교육위원회 청사를 신축, 같은 해 7월 미원동 294번지로 이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5.16 쿠데타(1961년)로 기초자치단체의 교육감제와 도교육위원제가 함께 해산, 교육제도의 틀이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초기의 교육자치제가 중단된 것이다. 1962년 1월까지 3대까지 교육감이란 명칭으로 사용됐다. 1991년 지방자치와 함께 교육자치제가 부활, 초기 교육위원 간선제(시의회 선출)로 시행하다가 후에 직선제- 폐지 등의 절차를 밟았다. 교육감제도 이런 상황과 맞물려 선출방식의 변화를 거듭했다.

시군단위에서 광역단위 교육자치제로 바뀌었고 1964년 1월 군산교육청과 옥구교육청이 분리되는 상황을 맞았다.

시에는 기존의 교육감이란 명칭 대신 교육장으로 바뀌었고 도교육위원제가 새로 정착하게 되게 이르렀다.

군산교육청은 1983년 3월1일 조촌동 현청사로 이전했고 95년 1월1일 군산교육청과 옥구교육청이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때 강윤철 교육장이 13대 교육장으로 취임했다.

군산교육청은 2010년 9월1일 이후 군산교육지원청이란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군산에서 1999년 5월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해오는 동안 기억에 남은 교육장이 한기학· 문원익 전교육장이다.

한 전 교육장은 익산은 물론 학무과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고 점잖은 분이었고 익산이 고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테니스 등을 취미로 하는 선비형이었다.

다음으로 3년이상 군산교육장으로 근무한 문 전 교육장은 박력과 리더십으로 군산교육에 힘을 쏟았던 교육자였다. 명쾌한 성격을 자랑하며 피아 구분조차 확실히 할 정도인 교육수장이었고 후일 도모했으나 아쉽게 그의 교육행정분야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멈춰야 했다.

그에게 여전히 교육행정이나 과거 교육에 대한 문의와 안부를 나누곤 한다.

# 지역요양병원의 쌍두마차시대 활짝

아무래도 교육청 주변 얘기에 대한 언급은 더해야 할 듯 싶다.

교육청과 맞은 편에 있는 참사랑요양병원은 원광효도병원과 함께 군산요양병원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의료기관 중 하나다.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군산참사랑요양병원이 요양병원 운영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왔다. / 사진=투데이군산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군산참사랑요양병원이 요양병원 운영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왔다. / 사진=투데이군산

2014년 개원한 이 요양병원은 재활치료, 도수치료, 수술후 재활, 요양병원, 암재활, 1대1 맞춤진료 등을 요양병원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이곳은 병상수만 약 630개에 달하는 지역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의 김정옥 병원장과 박철민 진료원장은 부부 사이로 군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맹렬 의료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코로나 19 확산이 본격화될 때 백신을 지역 처음으로 자청, 백신의 안정성 논란을 해소한 이로 당시 언론에 회자됐던 의료인이다.

다음으로 군산시내 중심에 요양병원을 시도한 곳이 원광효도요양병원. 이 병원은 2012년 개원한 후 1관, 2관 체제로 운영하며 581개 병상을 자랑하는 규모로 갖추고 군산시청 주변을 활기차게 만든 첫 의료기관이었다.

인근에서 기억에 남을 장소는 조촌동 평양온반(큰집)이다.

큰집만둣국이란 이름으로 2000년 2월 나운동에서 개업했다가 지금 자리로 이전한 때는 2002년 12월이다.

평안도 지방의 최고급 음식으로 토종닭을 주재료한 보양식 국밥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 평양방문 때 소개돼 대중의 관심을 모은 북한의 겨울철 전통음식이자 별미다.

군산 연고가 없는 지인들이 올때면 간혹 이곳에 들러 맛을 소개하는데 맛에 관한 얘기는 호불호가 갈린다. 그래도 겨울철에 한번쯤 먹어보면 맛이 남다르다는 평도 상당하다.

# 전북일보 군산본부 조촌동 시절의 에피소드

군산교육청과 한때 인접한 곳 중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공간이 전북일보 군산본부다. 99년 5월1일 근무하게 된 시기에는 군산시청과 법조타운 주변에 위치해있었다.

6년2개월동안 법조타운과 시청 등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나름의 언론인으로서 맹렬히 활동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대형 비리 등과 고투했던 기억들이 실타래처럼 풀어나는 듯하다. 이 시기에 A, I, C, S 선배와 같이 근무했고 상당기간 동안 황긍택 전 노인회장이 자신의 건물을 편의를 제공했고 본인이 이곳의 지사장으로 역할을 했다. 그후엔 시장 출마로 잘알려진 서동석 박사가 이곳에서 후임으로 활동한 뒤. 수송동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필자는 이 회사를 퇴직한 이후의 일이다.

강근호 시장 시절의 인사비리와 시청 주변을 끼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취재하면서 지역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던 공간이어서 더욱 애틋하다.

그래도 빈 시간이면 지인들과 만남을 이어왔고 장군봉과 군봉공원까지 산을 타고 운동하던 시기여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고향마을처럼 기억의 저장소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동료와 선배 언론인과도 생활하면서 그들의 우스꽝스런 허위의식과도 마주하기도 했지만 어떤이는 이와 반대로 선배로서 멋진 행동을 해서 지금도 좋은 기억에 남게 한 이도 있었다. 그렇다고 매번 필자도 멋진 행동만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 성실한 생활과 언론인으로서 자긍심을 지키는데 노력을 했던 것만은 지울수 없는 사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