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옥의 斷想] 출발선에 선 사람들(사회복지와 평등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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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옥의 斷想] 출발선에 선 사람들(사회복지와 평등의 원칙)
  • 강성옥 LX 파트너스 대표이사
  • 승인 2022.08.25 14:33
  • 기사수정 2022-08-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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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옥
강성옥

“당신이 만약 쇳덩어리 하나를 있는 그대로 그냥 팔면, 5,000원 정도를 받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쇳덩어리를 가지고 말발굽을 만들어 판다면, 1만 원까지 가치를 높여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발굽 대신 바늘을 만들어 팔면, 500만 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계 부속품인 스프링을 만들어 판다면, 5억 원 정도까지 그 값어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이며 사업가인 로버트 리플리의 명언이다.

똑같은 원료를 갖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쓰임새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말발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대장간을, 바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기계를 소유하고 있다. 시계 부속품인 스프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정밀 기계와 기술, 그리고 자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평등을 이야기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들이든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가진 거라고는 쇳덩어리뿐인 사람과 정밀 기계와 자본을 가진 사람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은 결승선 가까이에서 출발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같은 선에 세우는 것 자체가 불평등하다.

시의원으로 활동하던 때 20대 초반의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청년은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에서 자랐다. 일찍부터 돈을 벌어서 자신을 위해 유용하게 쓰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청년이 번 돈은 40만 원. 그러면 청년네 식구들이 받은 수급비에서 바로 40만 원은 제해진다. 수입이 생겼다고 수급비가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청년은 말했다.

“그냥 억울해요. 그럼 저는 평생 아무 일도 안 하고, 평생 수급자로만 살아야 해요? 내 힘으로 벌어서 뭐라도 해보면 안 될까요?”

불평등이 심한 사회 구조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낀다. ‘묻지 마 폭행’처럼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은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할 사회비용이 된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노인, 어린이, 여성,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경쟁을 내세우기 전에 출발선을 조정해 주어야 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차등의 원칙을 말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적은 혜택은 받는 사람들, 사회 하층 집단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한다.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이 출발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경쟁일까?

브라질은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적 있다. 그때 취임한 대통령 룰라는 빈곤 제로와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룰라의 분배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빚더미였던 브라질은 채권 국가가 되었다. 한때 부정부패인으로 낙인찍혔던 룰라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고 2022년도에 치러지는 대선에 강력한 후보로 다시 등장하였다.

우리 사회도 저소득층이 자활할 수 있게 제도를 더 많이 연구하고 고쳐가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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