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철저히 조사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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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동생을 위해 철저히 조사해달라"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2.01.26 14:12
  • 기사수정 2022-01-2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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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근로자 3년 전 ‘극심한 직장 내 괴롭힘 고통 속 극단적 선택’ 일파만파
유족,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통해 가해자 진정한 사과와 엄벌촉구
회사측 청원‧ 언론보도되자 핵심책임자 사퇴‧ 뒤늦은 사과 ‘눈총’

 

군산 세아베스틸(옛 기아특수강)에서 근무하던 중 3년 전 극단적인 선택을 한 30대의 노동자의 유족이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렸다.  

자신을 피해자의 형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지난 2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제 동생을 위해 철저한 사건 조사가 필요합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남겼다.

이 청원인은 “제 동생은 약 3년 전 이 회사에서 근무 중 직장상사의 성추행, 모욕, 인격 비하 등 끊임없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동생에게 가한 행위를 낱낱이 적었다.

사건은 2018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강하굿둑 한 공터의 자신의 차량에서 청원인의 동생 A씨가 싸늘하게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회사 앞 자취방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서 연락이 끊긴 지 3일 만이었다.

동생은 극단적 선택에 앞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마지막 순간을 촬영한 25분 분량의 영상과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그 유서에 담긴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동생은 유서 등을 통해 입사 직후부터 직속 상사들로부터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동생은 이 유서를 통해 “한 상사는 몸에 문신이 있냐고 묻더니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히기 싫어 참고 참아야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이 찢어져 내린다”고 털어놨다.

이뿐 아니었다.

또 “언젠가는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를 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난 정말 싫었다”고 울분에 찬 내용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동생은 수많은 고통 속에서 6년간 당했던 일들을 낱낱이 밝히면서 후배들에게 “쓰레기와 같은 벌레 때문에 고통받지 말자”라고 그들을 위로하고 걱정하는 글도 남겼다.

동생의 가해자인 상사들의 잔인한 괴롭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이는 강제 전신 탈의 후 사진 촬영을 하는가 하면 지속적인 성추행과 모욕적인 욕설 등을 일삼았고, 다른 이는 남직원들간 성추행 강요와 악의적인 소문 등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이 가해자들의 모욕과 험담 등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피해자(동생)를 문제 직원의 내몰기도 했다.

이렇게 수년간 당한 고통 속에서 인내와 항의 등으로 맞서왔지만 우울증세를 앓아야 했고 그 고통을 더 이겨내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게 청원인의 피맺힌 절규다.

유족들은 경찰 수사는 물론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하고 호소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에 사고 직후 찾아낸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동생이)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한 내용이 발견돼 회사 징계 내용과 휴대전화 및 PC 포렌식 자료, 직장 동료들의 추가 증언 등 여러 자료를 취합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받아들여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맞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반성하지 않은 가해자들의 처벌과 진상조사다.

2년 간 수집할 수 있는 증거들을 모아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나 경찰은 가해자들이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범행을 특정할 만한 뚜렷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했다.

유족들은 이에 맞서 경찰과 검찰 등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답만 되풀이 되고 있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경찰 수사- 불송치- 재수사 지시(검찰)- 불송치 의견 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족측은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 최근 검찰에 항고장을 내 재조사를 요청했다”면서 “지금이라도 가해자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족들에겐)지금까지의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다. 제발 동생이 한을 풀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과 언론보도 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인 공분은 회사측으로 향했다.

이에 세아베스틸은 당시 입사 6년 차였던 피해 직원이 직장 상사 등으로부터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지 3년 만에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

세아베스틸 김철희 대표이사는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2018년 11월 군산공장 직원 사망사건과 관련해 많은 분께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전해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면서 “저를 비롯한 경영진 모두 본 사건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일에 책임을 깊이 통감한 세아베스틸 군산공장의 총괄 책임자인 박준두 대표이사와 제강담당 김기현 이사는 이날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그 외 관련자 처분은 인사위원회를 조속히 개최해 명명백백히 밝혀나갈 방침인 것으로 대내외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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