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15 한때 전국 3대 항구 위상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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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15 한때 전국 3대 항구 위상 절정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4.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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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 중심 국제항만도시로 각광 … 근대기 대표 유산 뜬다리부두 3기 남아
진포해양테마공원… 군경장비 13종 16대 무상 대여로 2006년 조성
군산내항역 작동될 때 항만 물동량 전국적인 수준
근대기를 대표하는 항만의 유산인 뜬다리 부두. / 사진= 투데이군산
근대기를 대표하는 항만의 유산인 뜬다리 부두. / 사진= 투데이군산

 

개항을 시작으로 1930년대 군산항은 전국 3대 항구였을 뿐 아니라 국제항이었다. 일본과 중국까지 오가는 배들로 항구가 채워져 있었을 뿐 아니라 항구 노동자들까지 전국에서 몰려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당시 군산항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가 정상적인 군산항 발전기였다고 말하려는 의도는 없다. 자칫 어설픈 뉴라이트적인 역사관과 궤를 같이할 수 있는 우를 범할 수 있어 논란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평야와 항구, 산업단지 등을 끼고 있는 이른바 살기 좋은 곳이어서 ‘군산의 인구 1차 유입’이 있었던 때였다. 굳이 부연하자면 1차 유입기는 개항 이후 군산의 발전이 페달을 밟았던 1930년대까지였다. 이 시기에는 전남권과 충청권, 전북 등에서도 군산으로 몰려들었다.

그 후엔 1950년대가 가장 특징적이었다. 2차 유입기 군산은 한국전쟁으로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피난민들의 대거 이주로 극에 달했을 정도다. 군산지역 곳곳이 그들과 그 가족들이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하는 현장이었다.

1970년대 군산지역의 경성고무와 한국합판 등이 전북경제를 주도하던 때였다는 점에서 ‘3차 인구유입기’였다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전남과 충청권에서도 인구 유입이 있었고 그 후예들이 군산의 곳곳을 지키고 이런 발전 흐름을 유지하던 군산은 아이러니하게도 개발독재 때 완전히 탄력을 잃어가게 된다. 영남권 중심으로 불균형발전을 가속하면서 인구 정체는 물론 군산항은 1980년대 중반기를 고비로 사실상 전국항구에서 거의 두 자리권으로 밀려나게 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주요 기업들도 위축됐고 지역의 역동성도 사그라들었다.

공교롭게 영남권 중심의 개발전략과 항구의 경쟁력 문제까지 겹치면서 낙후의 도시로 전락하는 상황을 맞는다. 항구의 기능 문제까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숨통을 튼 것은 1990년대 대우자동차 등의 국가산단 입주는 기존 1~3차까지 인구유입과 달랐지만 새로운 인구 유입이 있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군산항의 발전을 기대하고 기대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건립까지 딱 그랬다. 대우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입주는 내항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 대체 공간이 지금의 군산외항이다. 대우자동차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선적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그 선박의 규모도 엄청났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공간인 군산의 내항은 국제항구라는 관점에서 기능을 거의 상실, 오늘날엔 지역을 오가는 어선과 소형선박들의 수선시설만 남아 있다.

군산내항의 호안시설은 역사적인 공간으로 변해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항구와 관련 근대시설물들이 그들이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등록문화재 제719호로 등록·고시됐다. 여기에는 제719-1호 뜬다리 부두(부잔교)와 제919-2호 호안시설(항만 석축구조물), 제719-3호 철도, 제719-4호 군산 구 제일사료 공장, 제719-5호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등 5곳이 별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이런 내항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지켜본 대표적인 근대역사건축물이 내항의 뜬 다리(부잔교)다.

장미동의 부둣가에는 독특한 모양을 한 이 부잔교는 일제강점기의 산물이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군산항과 애환을 같이해오고 있다.

2018년 8월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9-1호로 지정됐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시설로서 군산항의 제3차(1926~ 1932년)와 제4차 축항공사(1936~ 1938년)를 통해 건설된 뜬다리와 부유식 함체로 구성된 구조물이다. 제3차 때 총 3기를 설치했고 나중에 추가로 3기를 설치했는데 오늘날에는 3기만 남아 있다.

그런 흔적은 ‘뜬다리 부두 1, 2, 3’간 간격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할 정도다.

이들 시설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항으로서 군산항의 성격과 기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도 상당하다.

이곳과 연접한 곳은 과거와 달리 상당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청소년 등 관광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청소년 등 관광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 사진= 투데이군산

 

그 변화의 핵심공간은 진포해양테마공원.

이곳의 탄생은 2006년 국방부의 매향리 사격장 대체부지 선정과정에서 옥도면 직도가 그 사격장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정부에서 군산시에 보상의 형태로 조성된 것이다.

국방부와 해경의 군경장비 13종 16대를 무상으로 대여해줌으로써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진포대첩은 화약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될 뿐 아니라 그 역사적 현장으로 의미를 살린 것이기도 하다. 과거 금강하구둑에 세웠던 진포대첩비 대신 ‘진포대첩’의 의미를 살린 곳이 이곳이다.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왜선 500여 척을 패퇴시킨 전적지인 내항과 금강변에 대한민국의 해군함선 등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를 전시하고 있는 테마공원이다.

아쉬운 것은 이곳의 초라한 함포들과 조형물들이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에는 과거의 포대를 설치한 것도 역사적인 공간과 그 당시의 내용들에 대한 의미를 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군산의 내항에 있는 진포대첩과 관련 내용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진포대첩과 관련된 내용들은 고증된 것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멋진 모습도 아니다. 적어도 이를 재현한 것이었다면 함선에 함포가 거치되어야 했을 터지만 생뚱맞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어떤 면에서 관광객들에게도 면이 서지 않는 내용들이다.

당시 전투선의 원형을 재현한다면 몰라도… 최무선 장군과 그 당시 진포대첩을 이끈 그분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군산항의 축항 공사는 1905년 시작돼 1938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현재 군산내항의 호안을 형성하는 주요 부분은 1932년 마무리된 제3차 축항공사의 결과물이다. 호안시설은 근대항만으로서 군산내항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반이 됐다.

특히 군산 내항 철도는 근대항만으로서 군산내항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반이 됐다. 1920년대 후반 근대도시 군산의 공간 구조 변화에 영향을 준 시설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우수하다. 군산항의 축항 공사 과정에서 1921년 군산선 철도가 군산항의 동쪽으로 연장됐고 1931년 ‘군산항역’이 개설돼 군산내항 전체에 철도로 연결됐다.

옛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은 특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1973년에 당시 소유주인 제일사료주식회사에서 산업시설(공장) 용도로 신축한 건축물로서 건축물 측면에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항의 주된 경관을 형성하였던 근대기 창고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옛 경기화학약품상사의 저장탱크. / 사진=투데이군산
옛 경기화학약품상사의 저장탱크. / 사진=투데이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의 저장탱크는 1972년에 철판으로 제작된 지름 약 23m 크기의 원통형 구조물로서 현재 당밀저장탱크로 사용되고 있다. 군산내항의 성격과 기능 변화를 보여주는 해방 후에 건립된 산업시설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

뜬다리 부두를 지나 째보선창으로 발을 옮기면 한국어항공단 군산사무소가 있다. 이곳은 과거 연안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는 공간으로 한동안 이용됐단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군산 내항에는 1931년 별도의 철도역인 ‘군산항역’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이 역은 군산항선 영업이 중지된 1943년 12월 폐쇄됐고, 군산부두역이란 이름으로 개역됐다가 해방 후 없어졌다.

약 20년간 이곳의 영광은 군산항만의 발전과 일치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곳의 필요성은 쌀수탈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그 유용성이 사라진데다 다른 도로 개설로 이용객들이 급감한 것도 한몫했으리라!

이젠 시가 트램 용역을 한다니, 그 여행을 할 상황이 생기면 새로운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군산 내항에 남아 있는 철도와 뜬 다리 사이에는 지금은 사라진 거대한 창고들이 있었다. 철도를 통해 내항으로 운반된 쌀이 창고에 쌓여 지고, 다시 뜬 다리를 통해 화물선으로 옮겨지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 군산 내항은 뜬 다리가 나란히 설치된 긴 호안과 그것에 평행하게 지어진 거대한 창고, 그리고 길게 연결되는 선형의 철도가 서로 평행하게 겹겹으로 배치되고, 그 너머로 원도심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이곳을 지나면 군산상공회의소와 근로복지공단 군산지사, 군산도시가스, 196 카페 건물 등이 주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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