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44] 중동호떡과 중동교회…빈촌의 新랜드마크 눈길
상태바
[군산을 걷다 #44] 중동호떡과 중동교회…빈촌의 新랜드마크 눈길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11.03 11:26
  • 기사수정 2022-01-17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동호떡’ 군계일학 … 3대째 약 80년 이어온 전국 3대 호떡 우뚝
갯벌 천지개벽 군산의 중동(仲洞)… 우리가 아는 ‘중동(中東)’ 아니다
중동 인근에 공설운동장 탄생… 1932~ 1978년간 지역체육요람 역할

중동은 본래부터 지금의 지명으로 존재했던 곳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장리 일부와 분리, 왜식 지명으로 불리었다가 해방 후 오늘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이곳은 원래 갈밭탕마을과 써래마을이 존재했단다.

물론 군산의 중동(仲洞)은 ‘중동(中東)’과 전혀 다른 동음어일 뿐이다.

이 때문에 언론인으로 군산 근무가 시작됐을 때 군산에 왠 ‘중동’(?)이냐는 의아심을 가진 적도 있다. 중동 노동자로 다녀온 사람들이 작명한 동네 또는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인가 하는 등등의 해괴한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구시장로 등에서 해안가와 시외버스터미널 방면으로 걸어오면 다양한 길과 마주한다.

구시장로 주변에 있는 서래로와 서래1길, 서래안1길, 선창 1~2길, 구암 3.1로, 해망로 등과 교차하거나 이웃하기도 하고 때론 삼거리와 사거리 등과 작은 골목길을 만들어낸다.

중동과 금암동에 살았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공설운동장과 석산, 중동당산제, 각종 목공소, 중동호떡, 중동교회 등과 이웃하거나 마주했을 것은 분명하다.

한때 옛 군산역의 뒤편에 있었던 중동 돌산(주변 석산)은 최근에는 주변 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세월만 무상케 하고 있다.

 

중동 인접한 공설운동장 탄생

과거 중동의 이미지는 보통 낙후와 빈촌이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종안 기자의 ‘군산야구 100년사(투데이군산 게재물)’에 따르면 지금의 중동과 금암동, 신영동, 죽성동 일부 지역은 ‘1915년 군산지도’에는 갈대밭만 무성한 갯벌이었다고 적고 있다. 1970년대에도 이곳의 갯벌에서 공을 찼다는 게 어린 시절을 보낸 토박이들의 기억이다.

옛 공설운동장
옛 공설운동장

일제강점기 때 도심과 상대적으로 인접한데다 대규모 토지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 시절, 군산은 일본인들이 다수 집결해서 사는 곳인데다 도시팽창 등으로 각종 집회와 스포츠 등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치러야 했지만 학교운동장 등에 의존하는 형태였다.

스포츠 전용시설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공설운동장 건립공사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청이라 할 수 있는 군산부는 1932년 공사비 1만원을 들여 옥구군 경장리 매립지(오늘날 공설시장 폐철도 부근)에 야구와 축구, 농구, 궁술대회 등이 가능한 공설운동장을 개장했다.

공중운동장, 공마당 등으로 불렸고 일제가 작명한 금암동(일출정)과 매우 가까운 금암동에 위치한 운동장이라 해서 ‘일출운동장’이라 했단다. 이 공사로 스탠드를 갖춘 현대식 공설운동장이 완공되자 지역별 축구대회와 전국규모대회가 열려 군산체육발전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스포츠뿐 아니었다.

해방 후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이 대중들과 만나는 정치의 장이었고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1971년 4월22일)가 이곳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내 그들의 마음 깊게 아로새기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담아져 김대중이란 인물이 호남의 아픔처럼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옛 공설운동장이 있었던 중동 주변의 한 주택가와 골목길. / 사진=투데이군산
옛 공설운동장이 있었던 중동 주변의 한 주택가와 골목길. / 사진=투데이군산

 

하지만 도시발전 장애물 작용, 시설 노후화 등으로 이곳은 1978년 폐쇄되는 운명을 맞는다. 월명종합경기장이 1980년 5월21일 개장과 함께 주변을 확대하며 스포츠종합타운으로 자리잡는다.

새로 이전한 월명종합경기장에서 1980년과 2018년 전국체육대회, K리그(2017년) 등이 개최되기도 했다.

 

3대째 이어온 중동호떡… 전국 호떡 강자 군림

중동호떡
중동호떡

주식은 아니었지만 호떡은 배고픈 시대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호떡 안에 여러 종류의 곡물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유래되어 1980년대 후반 남포동에서 각종 견과류를 넣어 판매하면서 ‘씨앗 호떡’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게 된 것.

지역별로는 군산의 중동호떡, 아산의 삼색호떡, 속초의 찹쌀씨앗호떡 등도 지역을 대표하는 호떡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 중 일부가 군산에도 들어왔는데 1940년대에는 어느 정도 대중화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사람들도 팔았지만 이를 받아들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입맛에 맞게 개발, 토착화되는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래로에 있는 중동호떡.

그 시절의 군산에서도 중국집들에서 주로 팔았겠지만 1940년대를 넘어서면서 호떡 전문집이라 할 수 있는 중동호떡과 그 주변에 각종 가게와 포장마차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게 촌로들의 얘기이다.

중동호떡이 처음에 있었던 곳에 과거 공설운동장이 있어 많은 인파들이 오갔을 것이고 이를 십분 활용, 이곳 주변에는 호떡집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점들이 즐비했단다.

이곳 외에도 학교 앞에는 어김없이 호떡을 판매할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곳을 오갔던 한 60대 초반 인사는 “당시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은 많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중동호떡이 있었던 곳 주변에는 운동장이 있어 잦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호떡집 등도 우후죽순으로 영업하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그 많던 호떡집들은 우리 주변에서 갑자기 사라졌을까.

국민들의 식생활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을 것은 추정된다.

밀가루 음식의 대명사인 각종 제과류들이 등장하면서 이 맛에 사로잡힌 당시의 신세대들은 전통적인 호떡보다는 현대식 제과에 입맛을 빼앗겼다.

이른바 식생활 선호도가 변하면서 호떡집은 다른 업종으로 변모를 시도, 자취를 감추는 단계에 이르렀다. 즉, 1970년대에는 다양한 서양식 빵들이 국민들의 입맛을 집중공략, 그 시절의 별미와 음식들은 급격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의 주전부리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통 호떡집들은 영업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맛도 음식도 돌고 도는 유행과 같은 흐름이 있나 보다.

이런 풍파를 극복하고 3대째 80년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 호떡집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있다.

이곳이 중동호떡.

공설시장 인근에 있었던 중동호떡은 이주호 사장의 할아버지가 시작한 이래 3대째 78년 역사(1943년 개업)를 자랑하고 있다. 과거와 가게가 비좁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일반 호떡과 다른 점은 전통의 비법 반죽으로 특유의 담백한 맛이 특징이고 철판에 구워 기름기를 제거했기 때문에 질리지 않게 만들고 있다.

가정에서 프라이팬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갓 구운 호떡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식은 호떡을 함께 먹으면 담백함이 더해져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차가운 계절이면 가장 입맛을 당기는 군산의 명물이기도 하다.

 

중동교회 70년 역사 자랑

해망로 부근으로 조금 발걸음을 옮기면 주민들과 동락을 함께 해온 곳이 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중심지인 중동교회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중동교회가 중동 등 인근 주민들의 선교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 사진=투데이군산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군산중동교회가 중동 등 인근 주민들의 선교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 사진=투데이군산

 

1951년 6월 설립된 중동교회는 고 김용은 목사가 군산의 옛 중심지 중동에 터를 잡아 세운 교회.

2대 장창렬 목사와 3대 이덕한 목사를 거쳐 2006년 4대 목사로 부임해온 서종표 목사는 중동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써오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대표 교회로 우뚝섰다.

이 교회는 ‘자식보다 나은 교회‧ 친구처럼 다정한 교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동교회는 다문화가정 섬김, 장애인 가족 결혼식, 반찬봉사, 호스피스 활동, 고아원 아동 돌봄 등 다방면에서 지역민들의 복리를 고민하고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