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23 민주화운동의 중심 옛 시청사거리와 영동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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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23 민주화운동의 중심 옛 시청사거리와 영동교차로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6.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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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중심세력… 박창신 신부 등 성직자그룹 ‧ 고 김길준 전 시장 ‧ 재야 노동세력 등 앞장
윤재식 전 도청 전 비서실장, 김성곤 시의원, 황경수씨 등 군산대 학생운동세력 구심점
군산 금융1번지 우뚝… 전북은행, 산업은행, 옛제일은행, 하나은행 군산지점 등 입점
'박창신 신부의 필름으로 보는 군산의 6월 항쟁' 책속 사진 캡쳐
'박창신 신부의 필름으로 보는 군산의 6월 항쟁' 책속 사진 캡쳐

 

옛 시청 앞 사거리에서 옛 군산초등학교와 동원서점, 농협 중앙로지점 등을 거치면 옛 군산경찰서 부지 앞에 중앙로와 영동, 동령길, 죽성로 등이 접하는 곳이 있다.

그곳이 중앙로의 영동교차로다.

군산초는 해방 전 일본인들의 자녀들만 다닌 학교였으나 해방 후 일시적으로 폐교했다가 1945년 10월 개교, 2019년 3월 지곡동으로 이전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원도심에서 이전한 후 9개 학급의 미니학교에서 32학급(특수 1학급)와 유치원 1학급으로 우뚝섰다.

일제강점기 초기(1910~11년으로 추정)에 만들어진 이 학교는 (본국에 있는 일본인들에게) 해일을 피하기 위해 고지대에 멋진 교사를 지었다고 선전할 정도로 당시로선 신개념 건물이었단다.

본래 이 학교는 대학로와 중앙로가 접하는 곳에 있었다. 이 학교 운동장과 붙어 있는 정부지원 민방위 대피시설(통칭 민방위교육장)이 1980년에 만들어졌고 한번에 220여명까지 교육받을 수 있단다.

한때 군산초와 인접한 중앙치과 황진 원장은 남성고와 원광대 치대를 졸업한 뒤 군산에서 개업했고 시민사회단체와 의료분야 등에서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인사다. 중앙치과는 몇년 전 옛 상아치과(2층)가 있었던 길 건너편 건물로 옮긴 후 (황 원장의 건강문제로) 휴업상태다.

 

‘산자여! 따르라’ 군산 6월항쟁 성직자‧ 대학생‧ 노동자 그룹 앞장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정점에 오른 1987년 6월 항쟁이 어느덧 34년을 맞고 있다.

구시청 4거리와 영동교차로는 옛 군산경찰서와 인접한 곳에 위치, 군산민주화운동의 주요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80년대 오룡동성당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옛 시청 4거리와 옛 경찰서 주변으로 이어지는 공간에서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시민과 호흡했다.

군산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인사라면 이곳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출정가’ 등을 부르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애타게 염원했단다. 요즘 군부가 억압하는 미얀마 상황과도 너무도 유사했다.

그 당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그룹은 목회자 및 신부‧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 군옥지회 회원 등 재야그룹과 대학생, 노동자 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군산대와 호원대 등을 다닌 지역 대학생, 즉 586(본래 386)이라 불리는 60년대생인 80년대 학번 세대들의 민주화 활동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때 맹렬히 활동했던 인사들은 군산대 총학생장(87년)을 지낸 윤재식 전 전북일보 기자(전북도청 전 비서실장)를 비롯한 김성곤 시의원, 황경수씨(88년 총학생회장), 홍진웅 군산산돌학교장, 이용암씨(군산대 마당극회 활동) 등 대학생그룹이다.

또 6월 항쟁 등에서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국민운동본부를 이끌었던 인사들로는 박창신 신부, 조현식 전 도의원, 강임준 시장, 고 이민우 한길문고 대표 등이 있다.

지역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인사로는 전양권 전 옥구교회 목사, 김옥남 전 군산해성교회 목사, 임홍연 산북동 다음교회 목사 등이 있다.

막후에서 민주화운동에 큰 힘이 됐던 이들은 조용술 목사, 오충일 목사, 문규현 신부 등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시장 및 시의원, 도의원 등을 거쳐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에 앞장섰고, 일부 인사는 참여자치 군산지회‧ 군산경실련 등 지역시민사회단체에도 열성적인 활동을 했었다.

 

군산민주세력, 민주화 운동 헌신… 조현식 前 도의원‧ 강임준 시장 등

직선제 개헌 등 군산의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인 흐름뿐 아니라 많은 재야세력들의 참여로 중소도시에선 보기 드물 정도였다.

민추협 군옥지회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던 조현식 전 도의원과 이달 초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정리해봤다.

그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상황은 대학 재학 중에 선친 사업을 돕다가 1980년대 중반 민추협 군옥지회를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물론 민추협은 1984년 5월 설립됐다는 점에서 군산의 민추협은 그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였을 것은 분명하다.

당시 팔마성당 사목회장을 지내던 이규대씨가 지회장을 맡았고 자신이 사무국장을, 강임준 시장이 조직국장 등을 각각 책임졌다는 것.

강 시장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고향으로 내려와 지역생활에 안착하려던 시기에 만나 민추협 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힘써왔다.

당시 전두환의 군부독재는 날로 억압과 폭정으로 치달았고 여기에 뜻을 같이한 분들이 박창신‧ 문규현 신부와 조용술‧ 오충일(81‧ 전 군산복음교회 목사(1991~2000년 시무))‧ 전양권 목사 등이었고 노동자 및 대학생그룹들이 대거 합류했다.

특히 이들은 녹두서점(사회과학 전문서점)을 운영하던 김종철씨와 노동운동을 앞장서온 이민우(노동 운동) ‧ 오금수씨 등과 교류했었다.

(조 전 도의원)자신이 이런 흐름에 앞장선 것은 옛 군산경찰서 인근 호프집을 열면서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됐던 인연 때문이라고.

옛 제일은행이 위치했던 이 아지트는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란 오래전의 호프집.

자신은 물론 대학생 그룹, 노동자, 정치인, 가톨릭 및 기독교장로회 교회 인사 등이 힘을 보태 김영삼 전대통령(당시 민추협 공동의장)까지 초청했을 뿐 아니라 직선제 개헌투쟁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이들 민추협 관계자들은 성직자, 고 김길준 전 군산시장 등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김의겸(국회의원)‧ 김윤태(고대교수)‧ 이민규씨 등의 조기 석방을 위해 가족들을 후원하고 돕는 활동을 했었다고 술회했다.

얼마 전 작고한 김 전 시장은 구속된 학생들의 무료변론 등 민가협 활동에도 상당한 도움을 줬단다. 이밖에 정치권에 있었던 고 채영석 의원과 고 김봉욱 의원 등도 야권인사로서 직선제 투쟁에 앞장섰던 인사들이다.

여기에다 오송회 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 등과 함께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하면서 위로와 격려하면서 오늘날까지 교류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그 당시 용공조작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오송회 관계자들이 자신과 같은 학맥(남성고)이어서 더욱 그들과 가까웠다고.

조 전 의원은 나중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군산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해왔고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와 교류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고 조용술(1920~ 2004년) 목사는 익산에서 태어나 한신대를 졸업하고 옥구, 익산, 군산 등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맡았고, 기독교농민회 전국연합회 이사장, 한국기독교원로회의 의장 등도 지냈다.

특히 조 목사는 군산복음교회(1972~ 90년) 등에서 시무했고, 그의 아들이 민주노총위원장과 진보정의당 대표를 지낸 조준호씨다.

 

원풍로스 등 유명 음식점들

영동교차로는 오거리 형태지만 주변의 소로까지 합하면 복잡한 거리를 형태를 지닌 곳이다.

첫 번째로는 눈길을 끄는 곳이 동령길이다.

이곳으로 향하면 신포우리만두, 에넥스텔레콤 고객센터와 전북은행 군산지점, 홍영장, 빈해원 등이 활발한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다.

에넥스 텔레콤이 들어왔지만 옛 제일은행 등이 오랫동안 영업하면서 지역 최고의 금융가를 핵심을 이뤘던 곳이 바로 이 공간이다.

이곳에 입주했던 금융기관 및 업체들은 이미 상권 악화로 다른 곳으로 이주했거나 문을 닫은 경우가 적지 않다.

전북은행 군산지점에서 대학로 방향으로 가면 영화약국과 원풍로스, 만춘향 등이 있었던 곳으로 여전히 미식가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원풍로스는 군산에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의 신선한 고기를 들여와 군산 로스(roast)시대를 주도했단다.

로스는 고기 따위를 직접 불에 굽는 것을 의미하는데 70년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80년대 본격적인 로스란 이름의 음식집들의 대유행한 사회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이른바 로스 음식점 중 군산 원조격. 아직까지 이곳에서 지속적인 영업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암동에는 아들이 그대를 잇고 있다.

인근에 본래 장미동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이 위치할 정도로 군산 원조 금융가였지만 이곳이 차츰 쇠퇴하면서 동령길 주변으로 각급 은행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1970~ 2000년대까지 군산의 금융 1번지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융기관은 전북은행 군산지점.

향토은행 전북은행은 창립 2년 뒤인 1970년 3월 군산지점을 개점했다. 과거 이곳에서 근무해야 임원이 된다는 통설이 있을 만큼 군산지점의 위상은 대단했다.

다른 은행의 수송동 이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도 전북은행만은 원도심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군산제일고 졸업한 김성룡 지점장이 직원 10여명과 함께 애향심을 바탕으로 서민 및 소상공인 등의 금고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2년 10월 장미동소재 옛 제일은행 건물로 이전한 (주)에넥스텔레콤 군산고객센터는 수년 동안 방치돼있던 건물을 매입하고 지역경제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군산센터는 직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무실 공간 확대함은 물론 이동 동선을 편리하게 하는 등 근무 여건 개선에 주안점을 뒀다.

사무실의 기존 통념을 깨고 휴게실 안에 노래방과 당구장, 탁구장, 카페테리아, 도서관 등을 마련해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방점을 찍었다.

한편 향토기업 에넥스텔레콤은 2003년 12월 회사를 설립한 이래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에 독특한 고객만족시스템을 접목, 가입자 유치 규모와 서비스 품질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

이 회사는 직원 100여명에 연 매출액 수백억원 규모의 이동통신업체일 뿐 아니라 국내 재판매 사업자 중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가상이동통신망사업(MVNO) 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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