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에 물들다] 군산과 고군산의 공생
상태바
[선유도에 물들다] 군산과 고군산의 공생
  • 임동준 시민기자
  • 승인 2021.04.22 16:22
  • 기사수정 2022-01-17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경현고군산진지도(1897년, 서울대 규장각 소장)
만경현고군산진지도(1897년, 서울대 규장각 소장)

 

군산도라는 이름으로 후백제부터 독자적인 하나의 삶을 가져왔던 고군산은 고려 말 왜구가 섬을 우회하여 내륙을 침범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군산도가 전략적인 의미를 상실했다.

이곳에 있던 수군부대를 옮기며 진포의 이름이 군산진으로 변경이 되고 기존의 군산도는 예 고(古)를 붙여 고군산(古群山)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이 지역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후 선유도, 무녀도, 신시도, 장자도, 야미도, 관리도 등 섬의 이름은 조선총독부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서 만들어졌다.

그전에는 ’신시도-지풍금‘ ’장자도-장재미.가재미‘ ’무녀도-서드리,모개미‘ ’관리도-꼬지‘ ’방축도-방죽금‘ ’명도-밝은널‘ ’말도-끝섬‘ ’야미도-배섬‘ ’횡경도-비깽이‘ 등으로 불리어졌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고군산(선유도)의 가구수는 모두 600호라고 적고 있다.

당시 가족이 대가족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고군산은 3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큰 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군산. 김중규)

만경현고군산진지도(1897년)를 보면 고군산은 예전부터 김제 만경현에 속해 있던 고군산면으로 행정구역이 되어져 있다.

그러다가 1914년 3월 1일 옥구군 미면에 편입 되었다.

이후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94.08.03)에 의거 도농 복합형 군산시로 통합이 되어지면서 군산시 옥도면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군산도서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비응항에서 시작되는 새만금 방파제를 통해 차를 타고 오다보면 우측에 멀리 육지처럼 보이는 곳이 마치 무리로 이루어진 섬처럼 보인다하여 군산이라 지칭했을 법하다.

 

 

예전에는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풍선(風船)을 이용해 고군산서 만경과 김제까지 쉽게 오갔다.

적어도 1940년때까지는 그랬다는 것이 80세 이상의 어르신들 말씀이다.

그래서인지 만경과 김제에서 고군산으로 시집오신 분들도 꽤 있었단다.

고군산과 당시 만경현은 일종의 생활 및 행정공동체이어서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그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1950년대 이전까지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1971년 6월 선유도 결혼식(선유도 이성호 제공)
1971년 6월 선유도 결혼식(선유도 이성호 제공)

 

지난 2017년 11월 연육교가 연결되기 전까지 진성호-신진호-옥구호-온양호-서해훼리-옥도훼리라는 이름의 군산과 고군산을 잇는 여객선이 운항됐다.

여객선이 운항되면서 이 주민들의 삶도 군산 뭍 사람들과 같이 바뀌어갔다.

 

1965년부터 운행한 옥구호(선유도 이성호 제공)
1965년부터 운행한 옥구호(선유도 이성호 제공)

 

고군산 주민의 입장에선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시급했다. 또 각종 어구와 생필품을 군산에서 가져와야했다.

그러다보니 진포해양공원에 있었던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 많은 섬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군산의 모든 상권과 생활이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이 때문에 섬 주민들은 섬과 군산에 각각 집을 한 채씩 가져야 했다. 각각의 섬을 대표하는 단체 사무실도 군산에 둬야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14개 섬의 인구는 남자 1,922명 여자 1,472명 등 모두 3,394명에 달한다.

오래 전부터 여객선이 운항되면서 고군산과 군산은 공생의 관계다.

군산은 경기 불황으로 매달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지만 고군산은 어업과 관광을 병행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오히려 젊은층이 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바지락과 김은 전국 생산량의 10%를 넘을 정도로 어민 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비응항에서 출항하는 낚시배만 110여척에 달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김경매가 진행되는 신시항
11월부터 4월까지 김경매가 진행되는 신시항
비응항에 대기중에 낚시배

 

특히 고군산 주민들의 경제활동은 주로 군산에서 이뤄지고 있다.

군산에서 고군산으로 오가는 많은 주민 등을 통해 고군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임동준 시민기자

ㆍ원광대 일반대학원 보건행정학 석사

ㆍ군산시자원봉사센터 이사

ㆍ현)선유도에물들다 대표

ㆍ현)선유도주민통합위원회 사무국장

ㆍ현)고군산역사문화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