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희의 예술문화+] 미국 미술전성기의 서막 'Armory Show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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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의 예술문화+] 미국 미술전성기의 서막 'Armory Show New York'
  • 송진희 서해환경 이사
  • 승인 2021.04.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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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1912년작,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1912년작,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은 꼭 아름다움의 틀 안에 갇히지 않는다.

체험하고 감상하는 것을 넘어 각성하고 현실의 삶을 깨닫게 해주는 인식론의 변화가 20세기 현대미술에선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아방가르드(선봉파) 화가들.

즉 세잔, 고흐, 피카소, 뒤썅, 칸딘스키 등이 참여한 독일 쾰른에서 열린 1912년 ‘존더분트 국제전’은 당시 가장 논쟁적 작품을 통해 모더니즘의 돌파구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 전시의 마지막 날 직접 전시를 본 미국화가 및 조각가협회 데이비스 회장이 이를 모델로 삼아 뉴욕 맨하탄의 병기고를 빌려 ‘아모리쇼’를 구상한다.

미국이 유럽의 미술을 처음으로 목격한 결정적인 전시가 열린 것이다.

데이비스 회장은 개념적인 도식을 만들어 잡지에 게재했다. 또 5만장 이상의 홍보용 엽서를 제작해서 쉬는 날 없이 개최된 ‘아모리쇼’에 한달이 안되는 시간동안 매일 3천명 이상이 전시에 다녀갔다고 한다.

이 전시에서 가장 화제의 작품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8)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de descending a staircase, 1912년작)였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미국의 대중들은 호응은 높았으나 풍자와 조롱도 심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우월을 드러내기 위해 유럽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조롱하는 미국 대중의 방식은 미숙했다.

당시 사실주의와 지역적인 풍경들을 드러낸 로컬니즘이 팽배했던 미국에서 유럽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치의 억압을 피해 많은 화가들이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미술의 중심지가 이동하게 됐다.

‘아모리쇼’가 기획된지 30여년이 지나 추상 표현주의가 자리잡았던 시기인 1942년 페기 구겐하임이 기획한 ‘금세기 미술전’의 초석을 마련하고 미국을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만든 계기가 됐다.

미술소장가와 비평가, 그리고 기획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모리쇼’를 통해 증명된다.

특히,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아모리쇼’를 통해 처음으로 세잔의 작품을 구매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인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들도 미국에서 많은 구매가 이루어지게 된 계기가 된다.

지난 31일 서울대학교 미술관 ACP과정 '20세기 이후의 미국미술' 강의에서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나라 미술의 발달을 위해서 젊은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응원해주는 소장가, 기획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송진희 이사는?

ㆍ군산동고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졸

ㆍ현 ㈜서해환경 대외협력이사 재직

ㆍ현 기업경제신문 편집인(국회 출입기자)

ㆍ커피 감별사(Genie's 더치&드립백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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