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6] 신흥동 일본식 가옥‧ 말랭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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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6] 신흥동 일본식 가옥‧ 말랭이 마을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2.12 08:28
  • 기사수정 2022-01-17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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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일본식 가옥 각광…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장소
‘조선인촌→ 근대마을→ 말랭이 마을’ 이름 변천… 탤런트 김수미씨의 옛집 관광자원화
지역 최고 사회복지시설 구세군 군산후생원… 한국전쟁기 비참한 고아들의 생활터전
신흥동 말랭이 마을 신축된 일본식 가옥
신흥동 말랭이 마을 신축된 일본식 가옥

 

월명터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적한 동네였던 곳이 신흥동이다.

이런 자연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가장 번성한 마을이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인근에 일본식 가옥들을 잇따라 건축하면서 그야말로 ‘새롭게 번성한 곳(신흥동)’란 이름이 붙여졌다.

옛날에는 일본인 집단거주지였지만 해방 후에는 지역 경제 거두들이 그곳을 대신했던 곳이어서 이곳의 영화가 촌로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추억의 사진관과 슈퍼, 세탁소, 정육점 등이 여전히 남아 진한 사람 냄새들로 진동하고 있단다.

일부 주민들은 발빠르게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는 업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구세군 군산후생원 등을 지나면 경남 통영의 동피랑과 같은 동네가 말랭이마을이다.

신흥동에서 가장 핫한 공간은 히로쓰가옥일 것은 분명하다.

이곳의 유명세는 수많은 근대기 영화(국산영화)의 주요세트장으로 활용되면서다.

이 주변은 구영1길, 2길과 절골길, 구영신창길 등이 교차하는 공간으로서 1세기 전에 일본인들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이었단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곳 중 하나는 말랭이마을.

물론 이곳의 이름은 처음부터 그렇게 불리지 않았었지만 수년 전부터 새롭게 조성해왔다.

구영1길과 절골길 등이 교차하는 공간에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과 주민들의 기억 속에 새록새록 묻어나는 얘기 꽃들이 있다.

말타기 놀이와 술래잡기 등을 하는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말랭이마을 탄생… ‘조선인촌→ 근대마을→ 말랭이 마을’ 그 운명은?

신흥동 말랭이마을 전경
신흥동 말랭이마을 전경

 

말랭이마을은 본래 그렇게 불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부른다.

한때 근대마을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말랭이 마을 사업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곳은 월명공원 남쪽 한 자락인 신흥동에 자리 잡은 말랭이 동네다.

이 마을은 일본식 가옥은 물론 한때 전북의 경제거두의 집들과 인접한 ‘신흥동’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월명공원 쪽에 있는 곳이 말랭이마을.

산봉우리라는 뜻의 방언인 '말랭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등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동네를 형성했던 지역이다.

이 마을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주관하는 '문화적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앞서 시는 2015년 고지대 불량주거지의 정비일환으로 매입한 신흥동 일대 주거시설물(28동)을 완전히 철거하는 대신 이를 활용해 체험공간을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추진해왔다.

시에 따르면 말랭이 마을 조성사업과 관련된 건축공사는 모두 완료했으며 현재 체험 및 전시시설에 대한 작업만 남겨둔 상태다.

당초 작년 말까지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전시 부분을 맡은 업체의 사정 등으로 이른 상반기 중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시는 이 일대 주변이 히로쓰가옥 등과 같은 일본식 건물 위주로 발달한 만큼 우리 조상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조선인촌’으로 조성하려고 했다가 명칭과 성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서 ‘근대 (소설)마을’로 바꿔 추진했다.

이 과정(중간보고회)에서 근대마을이라는 사업 방향과 세부적인 시설들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재차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에 좁고 비탈진 골목길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특징을 살려 70‧ 80년대 달동네 추억의 공간인 ‘말랭이 마을’로 테마를 급하게 변경했다.

이곳의 주된 시설은 단체관람객을 위한 오순도순 사랑방을 포함해 왁자지껄 잔치마당, 옛 모습을 갖춘 추억사진관, 신흥동의 역사를 담은 도란도란 이야기 마당· 작가 이야기 등이다.

또한, 예술마당 1(군산 촬영 영화 상영·소규모 공연장, 영화세트장)과 예술마당 2, 신흥양조장, 근대놀이마당 등도 함께 조성되고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얘기가 있겠지만 ‘국민 엄마’ 탤런트 김수미씨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새로 조성된 이 마을에는 그가 살았던 곳에 그의 초상화를 닮은 벽화가 그려져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 그 가족들이 살았던 가옥은 시가 매입해서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 당장 살아도 될 것 같은 집으로 남아 있다.

 

지역 최초의 사회복지시설 ‘구세군 군산후생원’

구세군 군산후생원의 탄생은 한국전쟁과 긴밀한 연관이 있었다.

1950년 자유를 찾아온 북한 주민과 난민들로 인해 군산은 혼란, 그 자체였다.

이들 가운데 부모 또는 친척 등과 헤어져 고아가 된 어린이들이 다수였다.

이를 목격한 당시 구세군 군산영문의 담임사관 이환권 정위가 대한본영에 호소, 구호시설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설 인가를 받은 때는 1952년 6월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고아들은 약 1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곳은 미취학 아동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60여 명이 오손도손 모여 사는 아동 양육 시설이다.

이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있고 주변에는 여러 채의 일본식 가옥들이 잘보존되어 있어 근대기의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이곳과 가까운 곳에는 군산제일고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양남용 교장이 거주했고 1970년대 소문난 부자였던 50대 후반의 A씨 부모와 그 자녀들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청소년기까지 살았던 L씨는 이곳의 영광이 지속되던 때에는 그 집에 가면 먹을 것이며, 책 등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었다고 추억에 떠올렸다. 그곳의 골목에서 각종 놀이를 하면서 청소년기까지 보냈다고.

 

히로쓰 가옥
히로쓰 가옥

 

신흥동 일본식 가옥… 일명 히로쓰가옥

구영1길로 가다 보면 대표적인 원도심권인 신흥동 주택가에 붉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일본식 목조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인 ‘히로쓰가옥’이며 정식명은 ‘군산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근대영화에서 자주 나와 곧 그 주인공들이 나올 것만 같은 거창한 일본식 가옥이 그곳이다.

이곳은 1925년 일제강점기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건축한 2층의 전통 일본식 목조 가옥.

근세 일본의 무가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의 대규모 목조건물인 이곳은 해방 후 호남제분의 사택으로 사용되다 빈 건물로 남아 있었으나 2005년 6월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등록됐다.

군산시는 히로쓰가옥 등이 수년전부터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시는 2017년 소유주와 협의, 무상 사용기간이 지난 후 곧바로 매입을 완료했다.

이 건물이 전국적인 명소로 부상한 것은 ‘장군의 아들시리즈’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의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건물은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외국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 타지 관광객 등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영화감독과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까지 관심을 보이면서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 방문기를 담은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산으로 오랫동안 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 유명세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목조 2층 양식의 일본식 부케야시키(일본 武家)의 전형적인 형태인 이 건물은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 벽과 회벽으로 마감했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함각 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고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진 방식이다.

2층의 본채 옆에 금고건물과 단층의 객실이 비스듬하게 붙어 있으며 두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현관 안쪽의 중복도 양편에 일본식 다다미방과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배열되어 있고 방 옆에는 외부에 면한 편복도가 있는데 중간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이곳은 이국적인 외형, 나무 바닥의 긴 복도,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과 햇살, 다다미가 깔린 방들이 흥미롭게 보일 뿐 아니라 일본식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일본 상류계층에서는 집 앞의 정원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자연석을 그곳에 넣어서 산속의 작은 옹달샘같이 꾸미는 ‘석정’이 유행했었단다.

특히 담장에 딸린 문은 3곳, 본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ㄷ’자 형태로 담장을 굴절시킨 후 숨기듯 만들어 일본 전국시대 무사 가옥의 전투용 은폐구조양식을 따랐다.

나머지 두 곳 중 한 곳은 별채로 난 문이며, 나머지 하나는 히로쓰가 이용한 전용문이다. 방은 전부 12개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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