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 연립 4부: 민정이 엄마의 세계 #2] 팔다남은 도나스

2026-10-02     김규아

지는 해에 물들어 있던 바알간 하늘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데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나, 배고파.” 구석에 웅크려 누워있던 막내 남동생이 참았던 말을 토했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 올 때 됐어.” 아이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바닥의 흙이 얼어있었다. 차디찬 솥뚜껑을 만지기 싫어 옆에 있는 행주로 감싸 쥐었다. 텅 비어 있었다. 아까도 비어 있었는데 갑자기 무언가 생겼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주걱으로 솥바닥을 한번 긁어보았다.

끼이익. 쇳소리만 요란했다. “뭐 없어?” 이번에는 셋째 남동생이었다. “없어.” “도나스도?” “엄마가 와야지.” 말끝마다 하얀 입김이 번졌다. 두 동생은 다시 아랫목에 쪼그려 누웠다. 이불을 꽁꽁 싸매도 추웠다.

아이는 대문 밖을 내다봤다. 아버지 있었을 때는 먹을 게 많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오빠네는 인천으로 올라갔다. 큰언니도 사촌을 따라 서울로 갔다. 둘째 오빠는 한동안 집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짐을 쌌다. “내가 돈 벌어올게.” 어린 동생들 굶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둘째 오빠까지 떠나니 집에는 어머니와 아이, 그리고 어린 동생 셋이 남았다. 아이는 일곱 남매 중 넷째였다. 막내 남동생은 큰오빠의 아들과 고작 세 살 차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카와 삼촌이 한집에서 뒤엉켜 뛰어다녔다. 그 많던 사람들이 아버지가 죽자 하나둘 떠나갔다. 마당 한쪽에 가득 쌓였던 장작도, 집 안의 물건도, 먹을 것도 따라 줄어들었다.

아이는 괜스레 밖으로 나가보았다. 된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불 꺼진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냉골인 방과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레이스가 달리고 작은 큐빅이 촘촘히 박힌 원피스 한 벌이 벽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사다 준 옷이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자고 했다. 아이는 그때마다 싫다고 했다.

집에는 미제 물건이 많았다. 씨레이션, 햄 통조림, 초코렛. 아버지가 스테이크를 가져온 날에는 사촌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게 일상이었다. 아버지 상을 치르던 날 누군가 혀를 찼다. “쯧쯧, 저 많은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냐.”

장항에서 배를 타고 시집왔다는 어머니는 살림 말고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서당댁 딸로 곱게 자랐다고 했다. 큰며느리가 집안의 돈을 챙겨 인천으로 떠났을 때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큰아들이 가져간 건데 어쩌겄냐….” 아이는 그런 어머니가 답답했다.

길 건너 동네에서 구루마로 도나스를 팔던 노인이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장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저거라도 팔면 호구지책은 되겠지.’ 어머니는 집에 남아 있던 은수저를 팔아 구루마를 마련했다. 팔다 남은 걸로 끼니를 때우면 그만이었다. 깜깜한 새벽이면 도나스를 떼러 나갔다. 빨리 받아와야 장사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팔았다. 오늘같이 꽁꽁 얼어붙은 날에도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어둠을 헤치며 집을 나섰다.

덜컹.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덜컹, 덜컹. 낡은 구루마가 돌길을 긁었다. “엄마다!” 두 남동생이 먼저 일어났다. 외딴 길 끝에서 어머니가 구루마를 끌며 오고 있었다. 막내 여동생도 함께였다. 빨갛게 부르튼 얼굴에 두른 보자기에는 땀이 배어있었다. 둘 다 새벽보다 키가 더 작아져 있었다.

“엄마, 도나스!” 동생들이 구루마로 달려갔다. 대답도 듣기 전에 매대부터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막내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었다. “기다려, 이놈아.” 어머니가 허리춤에 두른 때 묻은 전대에서 신문지에 싼 것을 꺼냈다. 신문지가 펼쳐졌다. 찌그러지고 한쪽이 터진 도나스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녹은 설탕이 군데군데 허옇게 엉겨 붙어 있었다. 석유 냄새에 기름 단내가 섞여 올라왔다.

“와.” 두 남동생이 달라붙었다. “에구 녀석들.” 어머니가 하나씩 손에 쥐여 주었다. “오늘은 다 팔려서 하나도 없을 뻔했다. 도매상에서 불량이라고 몇 개 주더만…. 다행이네.” 작은놈은 그 자리에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굳은 설탕이 입술에 허옇게 묻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설탕 덩어리도 아까운지 손가락 끝으로 찍어 입에 넣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너도 먹어.” 어머니가 신문지 내밀었다. “됐어.” “배고프잖아.” “싫어!” 아이가 어머니를 노려봤다. “거지 같애.”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밖으로 나가 마당에 얼어붙은 요강을 발로 걷어찼다. 쨍. 요강이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은 담장에 부딪혔다. 아버지는 똑똑했는데 왜 저런 여자와 살았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자식은 왜 저렇게 싸질러 낳아놓았는지. 아이는 얼룩진 담벼락을 향해 입속으로 욕을 뱉었다.

다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원피스가 걸려있었다. 아이는 한참 그 옷을 바라봤다. ‘저걸 입을 때가 있을까?’ “누나.” 막내 남동생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반쯤 먹은 도나스가 들려 있었다. “이거 먹어.” “안 먹어.” “배고프잖아.” “안 고프다고!” 아이는 동생을 방 밖으로 밀어냈다. “가서 먹어.”

작은 방의 냉기를 견딜 수 없어서 아이도 곧 큰방으로 들어갔다. 막내 남동생은 어느새 도나스를 다 먹고 손가락에 묻은 설탕까지 핥고 있었다. “이리 와봐.” “왜?” “칠칠맞게.” 아이는 소매 끝으로 동생의 입가에 묻은 얼룩을 닦았다. “옷에도 흘렸네.” “히히.” “가만있어.” 아이는 동생의 옷을 털어주었다.

이제 군산에서 맏이는 아이였다. 구루마 정리를 돕던 막내 여동생도 큰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사다 준 파카를 입고 있었다. 처음 그 새 잠바가 생겼을 때는 서로 입겠다고 둘이 죽어라 싸웠었다. 이제는 기름기와 땀내가 찌든 낡은 옷이 되어 있었다. 아이의 시선을 알아챘는지 여동생이 움찔했다. 아이는 여동생을 바라봤다. “춥지?” 여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그거 니가 입어.” 여동생이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진짜?” “응.”

그때였다. 쿵쾅. 마당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이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바퀴가 또 빠져버렸네.” 구루마가 한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바퀴 하나가 비스듬하게 빠져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달라붙었다. 바퀴를 끼웠다 뺐다 하며 낑낑거렸다. “내일 장사 못하면 어쩐다냐.” 어머니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났다. “길거리 좌판에서 팔면 시장 이모들이 무섭게 군단 말이야.” 여동생도 볼멘소리를 했다. 아이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위이이잉.

흙먼지를 모질게 쓸어내는 된바람이 대문에 부딪쳤다. 덜컹. 아이는 뒤돌아서 작은 방으로 뛰어갔다. 잠시 뒤 다시 나왔다. 그 반짝이는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언니?” 막내 여동생이 먼저 알아봤다. 아이는 곁을 주지 않고 대문으로 걸어갔다. “누나, 어디가!” 뒤에서 남동생이 소리쳤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된바람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얇은 원피스의 레이스 자락이 세차게 펄럭였다. 아이의 하얀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턱이 저절로 떨렸다. 그래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에 밀린 대문이 닫혔다. 덜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