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스크린 여행- ⑦빈해원‧ 국제반점] 영화 속 미식여행 눈길
독보적인 존재감 뽐내온 두 개의 전설적인 중식 노포(老鋪) 군산 최고(最古)의 중국 음식점… ‘살아있는 박물관’ 인기 국제반점… 오직 군산에서만 만나는 마성의 ‘물짜장’ 각광
은막(銀幕) 위로 펼쳐지는 명작들 속에는 언제나 관객의 침샘을 자극하는 마법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
전국에서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짬뽕의 성지’ 군산.
인구 약 26만 명의 항구 도시에 무려 200곳에 달하는 중국요리집이 성업 중인 이 기묘한 풍경의 중심에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온 두 개의 전설적인 중식 노포(老鋪)가 버티고 있다.
일제의 아픈 수탈 역사를 뒤로하고, 1899년 개항 이후 대륙을 건너온 화교들이 고단한 타국살이 속에서 피워낸 중화요리의 불꽃.
그 뜨거운 화덕의 온기가 영화 속 명장면들과 만나 어떻게 최고의 미식 순례지가 되었는지, 군산의 두 대부인 ‘빈해원’과 ‘국제반점’으로 숟가락을 들고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 “이곳이 영화 속 그 홀이야?”
웅장한 객잔의 마법, 등록문화재 ‘군산 빈해원’
군산 원도심 장미동의 낡은 골목을 걷다 보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거대한 중식당 마주하게 된다. 1950년대 초 화교인 고(故) 왕석근씨가 창업한 이래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군산 최고(最古)의 중국 음식점, 바로 ‘빈해원’이다.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들은 누구나 탄성을 내뱉으며 걸음을 멈춘다. 일반적인 식당의 구조를 완전히 거부한 1층과 2층이 시원하게 트인 개방형 홀 구조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치 홍콩 무협 영화나 1960~70년대 대형 객잔에 홀린 듯 들어선 기분이다.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쌓아 올린 이 독보적인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활발히 영업 중인 식당임에도 드물게 국가등록문화재(제723호)로 지정된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 스크린 속 명장면과 미식의 조우… 미식관광의 단초 제공
빈해원은 대한민국 명감독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아온 최고의 로케이션 성지다.
감독의 누아르 대작 ‘타짜’(2006)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바로 그 공간.
·한혜진 주연의 멜로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2014)에서 인물들의 엇갈린 감정이 짙게 배어 있던 쓸쓸하면서도 정겨운 무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개방형 2층 난간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보자. 불향 가득한 삼선짬뽕 한 그릇과 바삭한 탕수육을 마주하는 순간, 귓가에는 영화 속 대사들이 맴돌고 젓가락 끝으로는 반세기를 이어온 화교들의 묵직한 손맛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묻고 다시 가!”… 고니 누나네 중국집, 별미의 보물창고 ‘국제반점’
빈해원이 웅장한 규모의 ‘객잔’이라면, 군산의 또 다른 보석 ‘국제반점’은 영화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아늑하고도 짜릿한 미식의 아지트다.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허름한 외관이지만, 이 집 문을 열 때면 영화 ‘타짜’ 속 명대사들이 저절로 귓가를 스친다. 주인공 고니(조승우)의 누나네 중국집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며 전국의 영화 광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바로 그곳이다. 극 중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객석을 뒤집어놓았던 타짜 고광렬(유해진)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주방 온기 속에 묻어나는 듯하다.
# 미식 포인트: 오직 군산에서만 만나는 마성의 ‘물짜장’
국제반점에 앉았다면 무조건 주문해야 할 절대반지 같은 메뉴가 있다. 바로 시그니처 ‘물짜장’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검고 걸쭉한 춘장 소스의 짜장면을 상상했다면 완전히 오산이다.
비주얼: 유산슬과 울면의 매력을 절묘하게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자태를 뽐낸다. 춘장 대신 간장과 진한 해물 육수를 베이스로 삼아, 통통한 새우와 오징어, 각종 신선한 채소들이 하얗고 걸쭉한 특제 소스 속에서 춤을 춘다.
맛: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입안을 탁치는 칼칼함과 담백한 감칠맛이 면발 사이사이로 깊게 파고든다. 한 젓가락을 뜨는 순간 멈출 수 없고, 결국 남은 소스까지 숟가락으로 싹싹 비워내게 만드는 치명적인 중독성을 선사한다.
* 에필로그: 젓가락 끝으로 완성되는 영화 같은 하루
조선을 향한 일제의 냉혹한 수탈 속에서 이방인의 서러움을 삼켜야 했던 화교들. ‘왕서방’이라는 멸시와 매서운 차별의 풍파 속에서도, 그들은 뜨거운 화덕 앞에서 묵묵히 칼을 놀리며 자신들의 눈물을 맛있는 음식으로 승화시켰다.
그 고단했던 타국살이의 흔적은 이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레트로 미식 문화를 꽃피웠고, 주말마다 전국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의 빈속과 지친 마음을 든든하게 위로하고 있다.
이번 주말, 은막 속 주인공들이 걸었던 군산의 원도심 골목을 지나 빈해원의 웅장한 홀에 앉거나 국제반점의 뜨거운 물짜장 한 그릇을 마주해 보자.
젓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진한 풍미와 스크린의 낭만이,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근사한 한 편의 영화의 한 장면으로 탈바꿈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