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스크린여행- ⑤내항·옛군산선] 수탈의 정교한 통로들

철도- 항만… 근대화란 이름으로 포장한 사회간접자본들 일제, 부잔교 등 내항 건설 통해 쌀수탈항시스템 풀가동 옛 군산선 속 임피역 등 대부분 간이역에 창고 갖춰

2026-09-23     정영욱 기자
군산항 부잔교/사진=군산시

도시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수탈의 흔적이 서려 있는 군산.

이곳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철저히 설계하고 조선이 그 비극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식민수탈의 핵심 전초기지’였다.

단순히 과거의 잔재가 방치된 공간이 아니다. 군산의 도시 구조와 기능, 문화와 일상 전체가 식민지배의 논리에 따라 정교하게 조직됐다.

서쪽으로는 바다, 동·남쪽으로는 만경강을 가로질러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지형적 이점은 호남의 막대한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일제는 군산항을 전격 개방해 쌀을 쓸어 담았고, 내륙의 쌀을 항구로 집결시키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포장도로와 철길을 놓았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군산은 군사적 거점인 ‘진(鎭)’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제는 이곳에 거대한 착취 시스템을 구축하며 ‘군산부’라는 새로운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옥구현이 옥구부-옥구군으로 이어지는 행정통합과정을 거쳤고, 1910년 옥구현의 읍면이 군산부로 편입되면서 오늘의 군산이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항만, 철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은 표면적으로는 ‘근대화’의 허울을 썼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해 교묘하게 짜인 착취의 톱니바퀴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 썰물에도 멈추지 않던 수탈… 군산 내항과 ‘뜬다리 부두’

문(또는 항구)을 연다는 것은 더 넓은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비극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군산의 개항과 내항개발, 그리고 군산역과 임피역의 탄생이 정확히 그러했다.

군산 내항의 뜬다리 부두(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가 극심한 서해안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미곡을 효율적으로 반출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대표적인 수탈 시설물이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진행된 제3차 축항공사를 통해 3기가 설치되었으며, 이를 통해 썰물 때에도 3,000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게 됐다. 이어 1936~ 1938년 제4차 축항 공사에서 부잔교 1기가 추가되면서, 무려 3,000톤급 기선 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대규모 수탈항으로 확장됐다.

긴 세월 속에 시설들이 멸실되었으나, 제3차 공사 당시 설치된 뜬다리 3기의 일부가 여전히 현존하며 당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군산세관이나 해망굴을 비롯한 내항 일대의 시설들 역시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 “우리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 호남평야와 군산선의 비극

철길 숲 속의 자료사진 재촬영.

일제강점기 설치된 기차역과 철도 역시 주민들의 교통 편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인근 평야에서 수탈한 농산물을 바다 건너로 실어 나르기 위한 이동통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중심에 바로 옛 임피역과 사라진 옛 군산역 등이 있었다.

대한민국 근대유산 등록문화재 제208호인 임피역사. / 사진=군산시 제공

1920년 12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임피역은 1936년 군산선의 역사가 되었다. 임피란 이름을 달았으나 실제 면소재지인 읍내리에서 4~5km 떨어진 술산리에 자리 잡았다.

지금도 옛 임피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평야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비옥한 대지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지었던 식민지 농민들은 정작 쌀 한 톨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역 입구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옥구농민항일항쟁비’는 당시의 참혹했던 수탈과 민중의 저항을 생생히 대변한다.

2005년 11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임피역의 주변에는 80년이 넘은 재래식 화장실과 오포 사이렌 등이 여전히 남아 당시의 쓸쓸하고도 팍팍했던 풍경을 전한다. 1920년대 이후 임피와 서수지역은 식민지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폭발한 곳이었다. 작가 채만식은 농민과 식민지 민중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적 모순을 풍자적으로 고발했고, 당시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이근영(1910~?) 또한 황폐해진 농촌과 농민의 생존 위기를 포착해 ‘금송아지’, ‘농우’ 등의 작품을 통해 일제의 수탈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이런 모순들이 증폭해서 옥구농민항쟁의 불씨가 됐다.

#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으로 들어온 아픈 역사

치욕과 상흔의 공간이었던 군산의 풍경은 오늘날 다양한 대중문화 예술의 무대로 재조명되며 현대인들에게 그날의 흔적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영화 ‘타짜’ 후반부에서 주인공 고니(조승우)와 아귀(김윤석)가 최후의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건너는 다리와 배 위 결투 장면의 배경이 바로 군산 내항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 외에도 군산의 해망굴과 내항 일대는 수많은 시대극과 느와르 영화의 단골 로케이션으로 활용되어 왔다.

임피역 또한 영화 ‘검은집’,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등의 촬영지로 대중에 친숙하다. 철길 건널목과 옛 역명이 화면 속에 고스란히 담기며, 세대를 뛰어넘어 역사의 공간을 기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산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상흔을 넘어, 뼈아픈 역사를 망각하지 않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로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