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중미에 던져지다 ⑧] 고산병을 아시나요? 페루여행1

2026-07-07     Young(필명)

한국에서는 '고산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는 고산병을 느낄 만큼 높은 산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해발고도는 1,950m.

반면 내가 페루에 도착해 처음 향한 도시의 해발고도는 무려 3,052m. 산 정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출근하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시내의 높이다.

그 사실이 나를 얼마나 괴롭힐지는, 그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와라즈Huaraz에서 볼 수 있는 안데스산맥

# 젊고 가난한 여행자의 이동법

약 3주간의 남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첫 여행지는 페루. 고대 잉카 문명의 중심지이자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품은 나라라는 말에 그저 설레기만 했다. 왜 사람들이 "남미는 젊을 때 가야 한다"고 말하는지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채.

인턴 월급을 받긴 했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긁어모은 여행 경비였기에 여행의 최우선 순위는 단연 가성비였다. 숙소는 무조건 호스텔, 도시 간 이동은 비행기 대신 버스.

그렇게 내 인생 첫 야간버스를 타게 되었다.

중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야간버스를 탈 일이 정말 많다. 도시 간 거리가 워낙 멀어 8시간, 10시간은 기본이고, 숙박비까지 아낄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에게는 거의 필수 코스다.

TIP!

페루에서는 Cruz del Sur, RedBus, Busbud 등을 많이 이용한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Cruz del Sur를 이용했고, 리마의 Javier Prado 터미널에서 직접 예매했다. 미라플로레스에서 숙박한다면 Javier Prado, 공항에서 바로 간다면 Plaza Norte 터미널이 더 가깝다. 가격은 약 120솔. 당시 환율로 약 5만 원 정도였다.

밤 9시 30분쯤 버스에 올랐다. 짐은 공항처럼 터미널 내에서 무게를 재고 맡기는데, 이때 받은 티켓을 잘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 날 도착해서 가방을 찾을 때 필요하다.

좌석은 '160도까지 젖혀진다'고 적혀 있었지만 막상 타보니 눕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닌 애매한 각도였다. 생각보다 허리가 꽤 아팠다. 그렇게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지나 있었고, 아침 6시쯤 해발도시 와라즈에 도착했다.

TIP!

장거리 야간버스를 탈 예정이라면 목베개도 좋지만 허리를 받칠 수 있는 얇은 패딩이나 후드집업 하나를 챙기면 훨씬 편하다. 생각보다 허리가 정말 아프다.

페루 시장에서 팔고 있는 과일

# 첫날부터 찾아온 고산병

와라즈(Huaraz), 페루 중북부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도시로 해발 약 3,052m에 자리하고 있다. SNS에서 몇 번이나 봤던 환상적인 트레킹 풍경 때문에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로 정한 곳이었다.

예약해둔 숙소에 얼리체크인을 한 후, 야간버스에서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에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동네를 조금 둘러보다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오후 세 시쯤이었는데도 손님이 꽤 많길래 맛집인가 싶어 메뉴판 사진만 보고 생선구이를 주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날 저녁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머리는 은근히 지끈거리고, 몸은 감기몸살처럼 몽롱했다.

'야간버스를 타서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식사를 겨우 마치고 거리로 나오는데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아, 이거 고산병이다.

고산병은 높은 고도에서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두통, 메스꺼움, 식욕 저하, 어지러움 등이 대표적이며, 해발 2,500m 이상에서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고산병은 신기하게도 "나는 체력이 좋으니까 괜찮겠지"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반대로 평소 운동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기도 한다. 결국 누구에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기보다는,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고산병 약 정도는 미리 챙겨가는 걸 추천한다.

직접 겪어보고 추천하는 예방법

-첫날은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않기(고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을 평소보다 많이 마시기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거나, 천천히 움직이기

-흡연이나 음주는 가급적 피하기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트레킹 투어를 신청했다. 숙소 픽업과 샌딩까지 포함된 당일치기 투어였는데 가격은 약 50솔 정도. 여행 초반이라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도 귀찮았던 나는 그냥 숙소에서 한 번에 예약해버렸다.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잎을 한참 씹었다(안데스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고산병 증상 완화를 위해 씹거나 차로 마셔온 전통 식물). 페루에서는 대부분의 숙소에서 코카차나 코카잎을 무료로 비치해둘 만큼 흔하다. 리마에서 사 온 고산병 약도 하나 먹고는 다음 날 트레킹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트레킹 중 마주친, 채취한 풀을 등에 메고 하산하는 현지 모녀

# 안데스의 에메랄드빛 호수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투어 차량이 숙소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이미 여러 숙소를 돌며 사람들을 태운 뒤라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맨 뒷자리 하나만 남아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달린 뒤 작은 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 시간이 주어졌지만, 나는 멀미 때문에 물도 제대로 못 마셨다.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 우아스카란 국립공원(Huascaran National Park) 입구에 도착했다.

TIP!

국립공원 입장료는 투어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갔을 때는 30솔이었고 현금으로만 받았다. 현금은 꼭 챙겨가는 것이 좋다.

오전 9시쯤 드디어 트레킹이 시작됐다.

초반은 정말 행복했다. 넓게 펼쳐진 초원과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맥.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는 길에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대학생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경사는 가팔라졌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안데스산맥의 날씨는 정말 예측이 안 된다. 조금 전까지 땀이 날 정도로 덥다가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금세 추워진다.

TIP! 트레킹 준비물

-우비 또는 방수가 되는 외투, 배낭 커버

-물은 넉넉하게

-정상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

-모자와 선글라스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있는 레이어드 복장 (기온 변화에 맞춰 입고 벗기 편하다.)

세 시간을 걸어 마침내 Laguna 69(Laguna 는 스페인어로 호수를 의미하고, 공원 조성 당시 이름이 없던 호수들을 단순히 번호로 관리하면서 붙은 이름이다.)에 도착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왔던 기억이 싹 사라졌다.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에메랄드빛 호수와 그 뒤를 둘러싼 새하얀 설산. 사진으로 보던 풍경보다 훨씬 비현실적이었다. 멕시코 친구와 사진도 찍고, 각자 가져온 과일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한참을 풍경을 즐겼다.

Laguna69 (69호수)의 풍경

# 해발 4,610m에서 배운 것

행복한 시간은 왜 항상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호수에 도착한 지 5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프기 시작했다.

올라오는 동안에도 은은한 두통은 있었지만 코카잎도 계속 씹고 있었고, 물도 꾸준히 마셨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해발 4,610m라는 사실을.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아프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고산병을 완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도를 낮추는 것이다. 나는 멕시코 친구에게 먼저 내려가겠다고 말한 뒤 거의 뛰다시피 하산했다.

두 시간 만에 투어 차량까지 내려와 운전기사에게 거의 울면서 말했다. "저 죽을 것 같아요." 그는 놀라지도 않았다. 마치 이런 상황을 수없이 봤다는 듯 물 한 병을 건네며 태연하게 말했다.

"Deep breathe. Deep breathe."

나는 조수석에 쓰러진 채 물만 마시며 숨을 골랐다. 다른 일행이 모두 내려올 때까지 꼼짝도 못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고도가 조금 낮아지자 신기할 만큼 두통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준비하며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사진을 찍을지만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페루는 내게 하나를 더 준비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안전.

여행에서는 좋은 장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설마 나한테는 안 일어나겠지'라는 생각 대신,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 덕분에 나는 평생 잊지 못할 풍경도, 평생 잊지 못할 교훈도 함께 얻었다.

면과 감자, 삶은 달걀이 들어간 페루식 닭국물 요리(Caldo de Gallina)
호수앞에서, 멕시코 친구와 나
와라즈(Huaraz) 시내 모습
와라즈(Huaraz) 시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