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중미에 던져지다 ⑦] 파나마에서 살아남기

2026-05-07     Young(필명)

# 인사부터 적응하기

스페인어 한마디도 못 하고 온 나에게, 파나마 생활은 인사부터 난관이었다. Buenos días, buenas tardes… 아침, 점심, 저녁마다 달라지는 인삿말에, 그 뒤에 따라오는 짧은 스몰토크까지. 처음에는 그냥 영어로 밀어붙이기 바빴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건물 경비원을 마주쳐도, 마트에 들어갈 때도 무조건 인사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단순히 “안녕하세요” 수준이 아니라, 항상 한 문장이 더 따라온다. 뭐라고 길게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매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사는 게 익숙한데, 여기서는 하루하루가 작은 퀘스트 같았다.

그러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어디서든 쓸 수 있는 만능 단어, Buenas. 비격식 표현이라 “안녕, 안녕하세요” 정도로 두루 쓰이는데, 이걸 던지면 상대가 알아서 이어간다. 어떤 날은 “buenos días(좋은 아침)”로 돌아오고, 어떤 날은 그냥 웃으면서 “buenas”로 끝난다. 이걸 알고 나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인사 방식이다. 친한 사이에서는 포옹을 하거나, 볼을 가볍게 맞대며 ‘쪽’ 소리를 내는 인사(beso en la mejilla)를 한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다. 상대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손부터 내밀었다. 허그를 피하려고 했던,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래도 몇 번 겪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다. 한두 달쯤 지나니, 나도 별 생각 없이 포옹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포옹 인사를 기다리고 있더라. 이게 특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인사에 가깝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방식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훨씬 빠르게 줄여준다는 점이다.

파나마사람들의 흔한 아침식사

# 1달러의 행복

파나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길거리 음식이다. 특히 아침 시간에는 출근길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곳은 따로 검색해서 찾아가는 게 아니다. 지하철역 근처나 버스 정류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사 먹었던 건 Hojaldres(오할드레). 중남미식 튀긴 빵인데, 설탕 안 뿌린 꽈배기 같은 느낌이다. 주문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반죽을 뜯어내 튀겨주는데, 겉은 바삭하고 안쪽은 공기층이 생겨 폭신하다. 짭짤하면서도 은은하게 단맛이 올라오는데, 갓 튀긴 걸 바로 먹으면 정말 맛있다. 길거리에서는 보통 하나에 0.25~0.5달러 정도로 가격도 꽤 저렴하다. 이 외에도 patacones(플라타노 튀김)이나 chorizo(소시지) 같은 음식들을 같이 파는데, 더운 나라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튀긴 음식이 많다. 아침부터 먹기에는 내 몸에게 좀 미안해지는 터라, 매일 사먹지는 못하고 오전 출근만 있는 금요일이라던가, 특히 기분이 안 좋아서 힐링이 필요할 때 사먹곤 했다.

내가 가장 많이 들렀던 곳은 집 앞 과일 트럭이었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5분 사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바나나 다섯 개에 1달러. 파인애플 하나에 1.5달러.

가격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맛이다. 특히 파나마의 파인애플은 정말 달고 맛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자주 사 먹은 건 파파야였다. 한국에서는 자주 접할 일이 없는데, 여기서는 크기도 크고 가격도 1.5~2달러 정도로 저렴하다. 나는 완전히 익은 것보다 살짝 단단한 상태를 좋아해서, 항상 트럭 아저씨에게 설명하고 골라달라고 했다. 그러면 아저씨는 늘 익숙한 표정으로 과일을 골라주고, 가끔은 괜히 윙크를 한 번 던진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현금이나 Yapi 같은 현지 송금 앱만 받는다. 카드는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나의 최애 파나마 음식, Hojaldres
나의 최애 파나마 음식, Hojaldres

# 결국 다 사람 사는 곳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혼자 외국에서 사는 게 무섭지 않았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비슷하게 답한다. 글쎄, 딱히? 파나마에서 지내면서 느낀 건 단순했다. 생각보다 어디든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 집을 구할 때만 해도 이걸 몰랐지만.

열 군데가 넘는 집을 보면서 다양한 집주인을 만났지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지금의 집주인, Valeria를 만났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헐레벌떡 뛰어오던 모습, 작은 키에 질끈 묶은 머리, 한쪽 팔을 덮은 문신. 베네수엘라에서 온 그녀는 두 딸과 친엄마와 함께 살며 가족을 책임지고 있었다. 부엌에서 마주치면 오늘 어땠냐고 묻고, 누군가 음식을 사 오면 내 몫도 자연스럽게 있었다. 아이들과는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같이 웃고, 춤추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후로는 ‘Golden’이 집 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덕분에 가사를 전부 외우게 됐다. 아이들 발레 공연에 함께 간 날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찍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여기서 혼자가 아니구나.

집에서 다함께 생일파티

회사도 비슷했다. 70명이 넘는 조직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지만,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다. 나는 Operation 부서 동료들과 함께 자리를 쓰고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고 자연스럽게 그 팀이 회사 생활의 중심이 됐다. 그중에서도 옆자리에 앉은 Sole과 가장 많이 가까워졌다. Sole은 영어를 거의 못했고, 나는 스페인어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선생님이 됐다. 나는 영어로 천천히 말해주고, Sole은 스페인어를 더 자연스럽게 고쳐줬다.

그러다 어느 날, Sole이 파나마에서만 쓰는 말이라며 알려준 표현이 있다. “Ayala vida!” 정확한 뜻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헐!” “말도 안 돼!” 정도의 느낌이다. 그날 이후로 괜히 여기저기 써봤다. 그러면 다들 웃으면서 “어디서 배웠어 그거?” “파나마 사람 다 됐네!” 하고 반응했다. 그게 재밌어서 더 자주 쓰게 됐다.

아침마다 안부를 묻고, 간식을 나눠 먹고, 잠깐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일하고.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그게 계속 반복됐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몇몇 동료들과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과 인사를 받았다.

이제는 말버릇처럼 그 말을 쓰고 있다. “Ayala vida!”

회사 월간 미팅 모습. 공유사항을 나누고, 생일을 축하한다
회사 월간 미팅 모습. 공유사항을 나누고, 생일을 축하한다
동료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잠깐 쉬어가던 시간
회사 동료와 퇴근 후 맥주 한 잔